4월 23일 토요일 CJ나눔재단의 후원 하에 <2인3각 자신감 회복 산행>을 다녀왔습니다.
산행 이후 천종호 판사님께서 쓰신 글입니다. 즐감하시기 바랍니다.
꼴찌로 천왕봉 등반하기
<2인3각 자신감 회복 산행>
위기청소년 22명을 이끌고 4월 23일 토요일 당일치기로 천왕봉에 올랐는데 꼴찌로 올랐습니다.
네 번 등반한 적이 있는 지리산 천왕봉을 2004년 이후 12년 만에 다시 오르게 되었지만 산을 타면서 꼴찌로 오르기는 난생 처음입니다.
전문 산악인이 아닌 사람은 등반팀의 후미보다는 선두에 서서 자기 페이스에 따라 등반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쳐서 중도에 포기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먼저 도착한 사람들은 충분히 휴식할 수 있으나 후미는 휴식지점에 도착해도 얼마 안 있어 선두가 다시 출발해 버리기 때문에 휴식할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와 22명의 소년들, 22명의 멘토들(만산산악회 회원들), 몇 명의 스텝들이 중산리를 거쳐 순두류에서 오전 10시 30분에 등반을 시작했습니다.
멘토 1명과 멘티 1명이 한 팀이 되어 차례로 출발해 나갔습니다. 저는 가장 마지막에서 출발했습니다.
이유는 제가 맨 뒤에 서야 아이들이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정상에까지 갈 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상대로 등반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한 아이가 배가 아프다며 오던 길을 되돌아 가 버렸습니다.
그 이후 3명의 여자아이들이 땅바닥에 주저앉더니 등산을 못하겠다며 내려가게 해 달라고 하기에 허락할 수 없으니 계속 올라가자고 했습니다.
몇 분간의 실랑이 끝에 다시 등반을 시작하였으나 아이들은 50m도 가지 않아 또 땅바닥에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너희들이 안 가면 나도 안 가겠다며 땅바닥에 주저앉아 버텼습니다. 그러자 그 아이들은 마지못해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러한 실랑이를 20여회 반복한 끝에 정오 무렵에 법계사 아래에 있는 노루목산장에 겨우 도착했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저는 페이스조절에 실패하여 벌써 지치기 시작했습니다.
도착해 보니 선두 중에는 이미 식사를 끝낸 팀이 있었는지라 그들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급히 식사를 마쳤습니다.
식사 후 컨디션이 좋지 않음을 느껴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밀려들었으나 제가 포기하면 많은 아이들이 낙오할 것 같아 마음을 추스르고 등반을 시작했습니다.
법계사를 거쳐 오르다보니 오전에 함께 걸었던 여자아이 2명을 포함해 4명의 여자아이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아이들을 정상까지 데려가다가는 등반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일정에 지장을 초래할 것 같다는 판단이 들어 그 아이들은 그냥 두고 다시 최후미에 서서 등반을 시작하였습니다.
걷다보니 다시 여자아이 2명이 못 올라가겠다며 주저앉았습니다.
그래서 오전과 같은 방법으로 그 아이들을 걷게 만들었습니다.
그러기를 20여회 반복하자 드디어 정상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정상에 오르는 마지막 계단에 서자 아이들은 갑자기 앞서기 시작하더니 단숨에 정상에 올랐습니다.
저는 숨을 거칠게 내쉬며 걷다 쉬다를 반복한 끝에 오후 3시경 겨우 정상에 설 수 있었습니다.
가장 마지막에 정상에 오른 탓에 등정기념 단체사진과, 이날 함께 등산한 큰딸과의 기념사진도 찍지 못했지만 22명 중 17명의 아이들을 정상에 서게 하였다는 자부심에 잠시 피로를 잊었습니다.
최후미에서 걸은 하산길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다리가 풀려 발목을 삔 아이들을 데리고 내려오는 길은 정상으로 올라가는 것만큼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가지 않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기에 마음고생은 산을 오를 때보다는 적었습니다.
게다가 다행히도 예정된 시간에 맞춰 등반을 마칠 수가 있었습니다.
꼴찌들이 걷는 길은 힘들고 포기하기 쉬운 길입니다.
그들과 함께 걷는 길은 힘이 들고 인내가 따르는 길입니다.
하지만 꼴찌들에게도 격려하며 동행해 주는 페이스메이커(pacemaker)가 있다면 그들도 그들의 인생길을 완주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번 산행에 보폭을 아이들 수준으로 낮추어 걸어 주신 만산산악회 멘토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꼴찌에게도 박수를!
첫댓글 수고 많으셨습니다.
멀리서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