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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론 머스크(Elon Reeve Musk, 1971년~ )
미국의 기업인으로 PayPal의 전신이 된 온라인 결제 서비스 회사 X.com, 로켓 제조 회사 겸 민간 우주 기업 스페이스X,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회사 뉴럴링크, 훗날 GPT-3을 개발한 인공지능 회사 OpenAI를 설립했고, 초고속 진공 열차 하이퍼루프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또한 지하 운송 시스템 더 보링 컴퍼니를 설립했으며, 시가 총액 기준으로 전기자동차 회사 테슬라를 세계 최대의 자동차 메이커로 만들었다.
1971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프리토리아에서 엔지니어인 아버지와 모델인 어머니 사이에서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머스크의 외할아버지는 미국에서 태어난 캐나다인이며 할머니는 영국과 독일계 혈통이다. 아버지 에롤 머스크는 엔지니어였으며 어머니인 메이 머스크는 모델 겸 영양사였다. 에롤은 현재에도 남아공에 거주 중이며 메이는 노년의 나이에도 아직까지도 현역 모델로 활동 중이다.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남아공으로 이민했던 백인 가정의 후손들 중 다수가 재산이 많았던 것도 있고, 아버지인 에롤이 남아공에서 최연소로 기술사 자격을 취득한 우수한 전기 기술자여서 어린 시절 머스크의 집은 상당히 부유했다고 한다. 에롤은 젊은 시절 에메랄드 광산 채굴권을 헐값에 구입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디펜던트지#에 의하면 에롤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 당시 우리는 매우 부유했습니다. 돈이 너무 많아서 금고의 문을 닫을 수도 없었습니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애슐리 반스가 쓴 《일론 머스크:미래의 설계자》에 따르면 "어린 시절 머스크의 집은 프리토리아에서 가장 큰 집 중 하나였고 에롤은 가족들과 자주 해외여행을 갔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머스크는 에롤 덕분에 현재의 자신이 될 수 있도록 만든 여러가지 장점들을 얻었다. 컴퓨터에 흥미를 가졌던 10살 때 5kb짜리 RAM을 가진 가정용 컴퓨터를 살 수 있었고 또한 십대 초중반에 아버지로부터 전기와 폭발물 관련 지식을 익힐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능력적인 부분과는 별개로 머스크는 에롤과의 사이가 매우 나쁘다. 머스크의 부모는 머스크가 10대일 때 이혼했는데 아버지와 같이 살겠다고 했던 것을 훗날 매우 후회했다. 평전의 인터뷰에서 그는 아버지에 대한 인터뷰를 아예 거부했다. 또한 일론의 동생들도 아버지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은 적이 많다. 최근 한 인터뷰에선 아예 "내 아버지는 악마이자 끔찍한 인간 말종이다. 당신들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악행과 범죄를 다 저질러본 사람이다."고 말하면서 인터뷰 도중에 울기까지 했다. 이에 에롤이 "철 좀 들어라"고 다시 아들을 공격하는 등 부자 사이가 완전히 틀어진 듯.
머스크가 자세히 밝히진 않았으나 동생인 킴벌의 말에 따르면 에롤은 상당히 괴팍하고 폭압적인 성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에롤은 자기 의붓딸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가지기도 했는데 아이를 가질 당시 그의 나이는 72살이 넘었고 이 의붓딸의 친모인 전 부인과는 현재 이혼 상태이며, 친딸은 아니라곤 하나 기혼이었을 적에는 4살 때부터 자기가 키웠던 딸이었다. 또한 에롤은 요하네스버그에 있는 자신의 집에 침입한 3명의 사람들을 총으로 살해한 뒤 정당방위를 선고받은 적도 있다.
12세의 머스크는 삶의 의미와 목적이 무엇인지 의문을 갖고 우울함을 겪은 후 니체나 쇼펜하우어 같은 철학서로 극복을 시도했다.# 그러나 니체와 쇼펜하우어는 훗날 성인이 된 머스크가 "어린 10대에게는 추천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부정적"이었고 대신 대안으로 판타지나 공상과학 소설을 통해 긍정적인 극복을 했다고 한다. 본인의 언급으론 가장 좋아했던 책이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와 반지의 제왕, 파운데이션 시리즈였으며 특히 파운데이션 시리즈의 경우 수십 년에 걸쳐 상당한 영향을 주었는데, SpaceX와 중년의 머스크가 추구하는 인류의 다행성종족(Multi-Planet Species)화라는 개념은 해리 셀던이 만든 단체 파운데이션에서 착안한 것이다.
어린 머스크는 프로그래밍에도 흥미를 가졌다. 12살 때 프로그래밍 언어를 독학해Blastar라는 이름의 게임을 동생과 함께 만들고 이를 게임 잡지에 500달러(현재 가치로 1,200달러)에 판매했다. 또한 모형 로켓 만드는 데도 취미가 있어 가솔린과 각종 화학 약품을 혼합하여 로켓 연료를 만들곤 그걸 자작 로켓에 넣어 시험 발사한 적도 있었다.
남아공의 학교에서 그는 몸이 허약한 데다 독특했기 때문에 주변 애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건 기본이고 폭행과 괴롭힘을 당했다. 한번은 계단에서 밀려 굴러떨어진 뒤 의식을 잃을 때까지 맞았다고 한다. 이때 코의 재건 수술을 했으며 후유증이 지금도 남아있어 호흡기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
이후 청소년 시기를 지난 머스크는 냉전이 끝난 90년대는 미국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해서 미국에서 유학하고 정착하는 걸 목표로 삼는다. 그런데 당시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징병제를 시행 중이었고, 남아공 국적자였던 머스크도 입영 대상자였다. 머스크는 아파르트헤이트 등 인종갈등이 만연하며 하인을 부리고 퇴폐적인 남아공의 귀족적 백인 사회에 경멸감을 느꼈고 군 복무를 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다행히 캐나다 시민권자였던 어머니의 도움으로 캐나다의 시민권을 취득해 군대를 가지 않을 수 있었다. 머스크는 중년이 된 최근에도 남아공의 군대에 입대하지 않은 것에 대해 양심적이고 좋은 선택이었다고 회상한다.
머스크가 17세가 됐을 때 부모 중에 한 사람만이라도 시민자이면 태어날 때부터 캐나다 시민권을 줄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되었다. 캐나다는 미국과 지리와 문화적으로 근접한 데다가 미국 영주권 혹은 시민권을 취득하기 용이하므로 머스크는 1년간의 절차를 거쳐서 캐나다 정부로부터 입국을 허가받는다.
그리고 캐나다로 떠난 18세의 머스크는 엄청난 고생을 하게 된다. 머스크가 에롤과 멀어지고 난 후 어머니인 메이 쪽은 돈이 별로 없어서 타국으로 떠나는 머스크에게 돈을 대줄 수가 없었고 종조부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던 몬트리올의 집엔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다. 알고보니 몬트리올의 친척들은 머스크가 오기도 전에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이민했던 것이었다. 때문에 1년 동안 노숙자처럼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공장의 유독한 보일러 폐기물을 치우거나 전기톱으로 통나무를 자르는 등 인력시장의 궂은일을 하며 살았다.
2년 동안 온타리오에 위치한 퀸즈 대학교에서 물리학을 전공하다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교로 편입, 2년 동안 물리학 학사를 받기 위한 학점을 이수하고 이후 1년 더 머물러서 와튼 스쿨에서 경제학 학점까지 이수하여 펜실베니아 대학교에서 물리학과 경제학 복수전공으로 학사를 끝마친다. 이 와중에 아르바이트로 게임 제작사에서 잠깐 일하기도 했다. 90년대 중반에 짧게 존재했던 로켓 사이언스 게임스(Rocket Science Games)라는 회사로, 이 회사가 만든 Loadstar와 Rocket Jockey 등의 게임 크레딧에 실제로 머스크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 간단한 프로그래밍 등을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재료과학 전공으로 1995년 스탠퍼드 대학교 박사과정에 합격하였으나, 창업의 길로 들어서기로 결정하면서 입학도 채 하기 전에 합격 통지만 받고 등록을 하지 않아 자동 제적되었다.
3. 창업가로서의 역사
대학을 자퇴한 이후 1995년 ZIP2 창업을 시작으로 X.com(페이팔 전신회사)를 설립한 후 매각하여 젊은 나이에 2,000억 원대의 억만장자가 된다. 이후 스페이스X를 설립하고 테슬라의 경영에 뛰어들면서 개인 자산의 대부분을 투자한다. 하지만 설립 후 많은 문제들이 연달아 발생하는데 2000년대 중후반 테슬라 로드스터의 배터리와 변속기에서 문제가 발생해 변속기를 처음부터 재설계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정식 출시일을 지키지 못해 고객과 언론에게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또한 스페이스X의 팰컨 1의 1~3차 발사가 모두 실패하면서 막대한 재정난을 겪었다. 또한 이 시기에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겹쳐서 자금 조달이 매우 어려웠다(하지만 머스크는 테슬라 로드스터의 추가 투자금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마찬가지로 테슬라 모터스도 2007~2009년 사이 테슬라 로드스터의 생산 차질로 파산 직전까지 갔었다. 2008년 중순 스페이스X 팰컨1 4차 발사가 성공하면서 나사와의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고 2012년 테슬라 로드스터를 성공적으로 출시한다. 이후 모델S, X, 3 라인업의 출시가 성공하면서 폭발적인 성장을 한다.
1달러 프로젝트
그는 창업하기 전에 본인에게 얼마 정도가 필요한지 알아보기 위한 일종의 실험을 했다. 이른 바 `일론 머스크의 욕구 실험'이라고도 알려져 있는데 `하루를 1달러로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는 창업을 앞두고 혹시나 실패했을 때 뒤따를 가난을 감당할 수 있을지 고민했고, 1달러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일론은 대형마트에서 냉동 핫도그와 오렌지 30달러 어치를 사서 컴퓨터를 끼고 한 달 동안 매일 그것들만 먹고 생활을 했다. 돈이 없는 삶이 어떠한지를 직접 체험해 본 것이다. 한 달을 지내보니 살만 했다고 한다.
`어떻게 되든 (망해도) 한 달에 30달러는 벌겠지'라고 생각한 그는 곧바로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창업의 방향은 '인터넷, 우주, 친환경 에너지' 분야로 정했다. 이후 페이팔, 스페이스X를 창업함으로써 성공하게 된다.
머스크는 원래 에너지 사업에 관심이 있었으나, 실리콘밸리에서 발전 중인 인터넷 사업의 가능성을 보고 곧바로 인터넷 사업에 뛰어들기로 결정한다. 1995년 스탠퍼드에서의 수업이 시작된 지 이틀 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당시 퀸스 대학에서 역시 경영학을 전공하던 그의 동생을 실리콘밸리로 불러들여 그는 23살에 첫 회사인 집투 코퍼레이션(Zip2 Corporation)을 설립했다. 집투는 뉴욕타임스와 같은 미디어에 지도나 회사의 정보와 같은 지역 정보를 제공하는 회사였고, 1999년 2월 컴팩에 3억 700만 달러에 인수되었다. 그중에 당시 머스크의 지분은 7%로 2,200만 달러였다. 28살의 나이로 백만장자가 된 것.
하지만 정작 컴팩은 인수한 이 회사를 잘 운영하지 못했고, 닷컴 거품이 꺼지면서 큰 손실을 보고 이 회사를 폐업한다. 결국 컴팩은 일론 머스크에게 더 큰 사업을 벌일 수 있는 종잣돈만 퍼준 셈이 되었다.
여담으로 처음으로 뽑은 인턴이 한국인 엔지니어였다.
컴팩에 Zip2를 넘긴 1999년 일론은 친한 동료 3인방과 함께 온라인 은행 엑스닷컴(X.com)을 설립하고 이메일 주소를 이용해 송금을 하는 방법을 고안한다. 2000년 동일한 서비스를 개발 중이던 컨피니티(Confinity)라는 회사와 합병하고 회사명을 페이팔(PayPal)로 변경하였다. 이 두 회사는 서로 같은 건물에 있는 경쟁 관계였는데, 계속해서 경쟁만 하다가는 모두 망하게 될 것이라는 의견에 두 회사가 모두 동의하면서 전략적인 합병을 진행한 것이다. 여담이지만 컨피니티는 원래 엑스닷컴이 소유 중인 사무실을 빌려서 운영하고 있다가 사무실을 옮기면서 페이팔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그 이름이 합병한 회사의 이름이 되었다.
그러나 합병 후 구성원들과의 의견 갈등이 자주 일어났고, 결국은 머스크가 호주로 휴가를 간 사이 동료들이 이사회에 해임안을 올리는 바람에 CEO에서 잘리고 만다. 그래도 2002년 이베이가 페이팔을 15억 달러에 인수했을 당시 페이팔 지분은 약 11% 정도 가지고 있었기에 머스크는 약 1.7억 달러에 이르는 자본을 소유한 청년 사업가로 널리 이름을 알린다. 하지만 2020년 현재 실리콘밸리를 좌지우지 하는 소위 페이팔 마피아라는 인맥의 정점으로 여겨지고 있다. 일론 머스크를 해임한 당사자인 피터 틸과의 관계는 여전히 돈독한 것으로 보이며 피터 틸은 스페이스X와 오픈AI의 투자자로 참여 중이기도 하다.
최근 언급한 대로 나는 화성 수송 체계가 자리 잡기 전까지 스페이스X의 주식상장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인류가 화성에서 생활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스페이스X의 흔들리지 않는 사명입니다.
머스크가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 2013
페이팔로 인터넷 사업에서 성공을 거둔 이후 머스크는 관심 있던 분야인 에너지 사업과 우주 산업으로 눈을 돌렸다. 초등학교 때 접했던 SF 판타지 이후로 우주는 머스크가 평생동안 꿈꿔왔던 분야였다. 우주에 대한 그의 갈망은 성인이 되어서도 식지 않았으며, 펜실베니아대에 다닐 때도 지구 환경 문제와 폭발적인 인구 증가, 식량 부족으로 인한 인류의 종말을 우려하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사실 처음에 일론 머스크는 완전히 자기 손으로 화성까지 화물을 조금이나마 보낼 수 있는 로켓에 새턴 V급 초대형 행성 간 로켓 + 우주선 세트까지 만들 생각은 전혀 없었다. 2001년 당시 그는 화성 오아시스라는 이름으로 수분 보급용 젤에 작은 식물들을 채워 넣은 미니 온실을 나사를 통해 화성으로 보내 식물들의 성장을 공개 방송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다시 우주로 돌리고 나사의 예산을 증가할 수 있도록 하자는 발상을 하였다.
그런데 막상 나사와 기타 우주 산업체들의 자료를 뒤적거려 본 결과 일개 사업가에게는 절대 불가능한 금액이 튀어나와 전략을 수정, 아예 러시아의 핵탄두를 제거한 깡통 ICBM을 사서 거기다가 실어서 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인맥을 통해 기술자들을 끌어모으고 현찰 가방을 들고 러시아까지 갔으나 그대로 문전박대당하고 빈손으로 돌아온다.
러시아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그는 계산기를 두들겨보니 그냥 내가 로켓까지 다 만들어서 쏘는 게 낫겠다는 결론에 도달해 2002년 스페이스X를 설립한다. 우주 여행을 위한 로켓을 저렴한 가격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바로 이 회사의 목표. 머스크는 단순히 CEO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여기에 바쳤다. 테슬라와 솔라시티도 스페이스X에 비하면 부수적인 사업이다. 자신의 재산을 그야말로 쏟아부었고 로켓 디자인에도 상당 부분 참여하고 있다. 어릴 적부터 로켓에 관심이 많았던 데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게 큰 도움이 된 케이스이다.
초창기에는 비현실적인 아이디어 때문에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되었다. 로켓을 만들어 우주에 인공물을 쏘는 덴 엄청난 기술력과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국가 단위의 자금 지원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하며, 따라서 일개 민간 기업에선 로켓 제작을 할 수 없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던 터라 어찌 보면 세간의 손가락질은 당연했다. 실제로 유능한 공학자들을 다수 섭외하여 팰컨 1이란 로켓을 만들고 발사장까지 확보하여 실험을 했지만, 1~3번의 로켓 발사 시도가 모두 실패하는 쓴맛을 보았다. 일론을 포함한 로켓 공학자들은 멘붕에 빠졌지만 이를 극복하고 4번째 발사를 극적으로 성공시켰고, 그 후부터 많은 성공을 거뒀다. 이는 정부 기관이 아닌 개인 사업가로서 위성 발사를 성공한 최초의 기록이기도 하다.
이 성공으로 인해 스페이스X는 기술력을 인정받아 안정적인 투자도 받게 되고, 다양한 국가에서 수주를 받아 성공적으로 로켓을 쏘아 올리고 있다. NASA도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보급선을 보내고 싶으면 스페이스X를 이용하고 있다. 거기에 원래는 한 번 쓰고 버려지던 로켓을 다시 송환시켜서 연료만 충전시키고 재사용하는 아이디어를 2015년에 처음으로 성공시키면서 나사로부터 한화로 약 3조 원에 달하는 엄청난 지원금을 약속받게 된다.
아직은 흑자 전환을 하지 못해 적자 운영 중이다.# 사기업이다 보니 정확한 실적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2014년에 $1B 판매 실적에 영업 이익은 0.2%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건 운영 이익이고 순이익률 (net income)은 더욱 작을 것이다. 2015년에는 $0.95B 판매 실적에 운영 이익은 오히려 $260M(약 3,000억 원) 적자를 기록하게 된다. 물론 세계적으로 이 정도로 주목받고, 빠르게 성장하는 비상장 스타트업이 겨우 이 정도 적자밖에 기록하고 있지 않다는건 투자자 입장에서는 굉장히 우수한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스페이스X의 현 부사장이자 최고 운영 책임자인 엔지니어 그윈 숏웰(Gwynne Shotwell)이 일론의 오른팔로 통한다. 2000년대 후반 스페이스X가 연이은 발사 실험 실패로 휘청일 때, NASA나 여러 기업들과 로켓 발사 계약을 여러 건 따내 위기를 모면하는 기회를 만들었다. 이 때문인지 일론은 스페이스X의 신입 사원 면접 땐 반드시 직접 참여하여 난해한 질문을 많이 날린다고 한다. 다른 기업에서 우수한 인재를 헤드헌팅해 올 때도 그렇다고.
2016년 1월에는 드디어 처음 생각했던 화성 오아시스의 판을 키워 2025년까지 화성에 사람을 보내겠다는 폭탄 선언을 했다. 이쯤 되면 스페이스X의 야망이 단순한 우주 산업 틈새시장 공략이 아니라는 것이 와닿는다. 2016년 9월 27일 멕시코에서 열린 국제 천문 총회에서 연설을 통해 구체적인 계획안인 'Interplanetary Transport System'을 발표했다. 이 ITS는 2019년까지 현실적으로 여러 부분이 조정되었지만 기본적으로 새턴 V 수준의 크기를 가진 운송량 100톤급 초대형 로켓이라는 테마는 그대로 유지된 채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2010년대 전후로는 우주 탐사뿐만 아니라 국방부가 러시아 제재의 일환으로 군사 위성 분야에서 러시아 의존도를 줄이겠다고 발표하면서 군사 위성의 발사에도 한몫하게 될 것 같다. 머스크가 국방부의 높으신 분들 청문회에 끌려나가는 광경도 놀랍지 않다. 오히려 2014년 청문회에서는 ULA의 CEO의 면전에다 대고 “우린 완전 미국제에 가격도 저렴한데 이놈들은 러시아제 엔진 쓰면서 가격도 창렬이다”라는 디스를 날려 ULA 측을 완벽하게 털기까지 했다. 펜타곤뿐만 아니라 NASA 역시 많은 관계자들이 팰컨 헤비에 주목하며 ULA, 아리안스페이스 등의 경쟁자들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팰컨과 드래곤 시리즈의 재활용 시도는 이미 전 세계의 차세대 발사체, 우주선 연구에서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었다.
2018년 2월 6일에 발사된 팰컨 헤비의 발사 성공으로 그의 능력을 다시 한번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또 2020년 5월에는 세계 최초의 민간 유인 궤도 우주선인 드래곤 V2의 유인 우주 비행에 성공하는 쾌거도 이루었고 2019년 중반부터는 2018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프로토타입 건조가 시작된 스타십 우주선을 SSTO로 테스트해 보겠다는 계획까지 진행하고 있다.
페이팔, 테슬라, 솔라시티는 모두 머스크의 여러 모습을 상징하지만 스페이스X는 머스크 자신이다. 성공이 그렇듯 스페이스X가 지닌 사소한 결점은 머스크에서 직접 비롯된다. 부분적으로는 머스크가 스페이스X의 일거수일투족에 지나칠 정도로 적극 개입하고 세세한 사항에 미친듯이 신경 쓰기 때문이다.
스타링크 (Starlink)
스페이스X에서 출범한 인공위성 인터넷 브랜드. 지구 저궤도상에 4만 개가 넘는 소형 인공위성을 배치해 지구상의 거의 모든 지역을 커버할 예정이다. 2020년 말부터 북미 지역에서 제한적으로 베타 서비스가 개시되며 2024년부터 전 세계 서비스가 시작된다.
테슬라 (Tesla, Inc.)
2003년 마틴 에버하드와 마크 타페닝이 공동 창업하였고 2004년 일론 머스크는 초기에 자금을 투자하여 최대 주주로 등극하고 법률, 회계사를 주선하고 모터 개발을 주도한 J.B. 스트라우벨 등의 엔지니어를 영입하는 등 간접적인 역할만을 하였는데 애초 계획에 비해 개발 비용이 불어나고 로드스터의 원가가 판매 가격 이상이라는 것이 밝혀져 2007년 마틴 에버하드를 CEO에서 해고하고 일론 머스크가 직접 CEO가 되었다. 이후 마크 타페닝 역시 회사를 떠났다. 이와 관련해 벌어진 법적 분쟁에서 초기 경영과 개발에 관여했던 이안 라이트, 일론 머스크, J.B. 스트라우벨까지 다섯 명이 테슬라의 공동 창립자 지위를 인정받았다.
하이브리드가 아닌 100% 전기 모터로 돌아가는 자동차를 만들어내고 있다. 테슬라 로드스터를 시작으로 모델 S 등이 대박을 치면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전기차 제조사로 꼽히는 중. 신생 회사다 보니 유명 자동차 브랜드에 비해 덩치도 많이 작고 덜 유명하지만 전기차를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2014년 6월 12일, CEO 일론 머스크는 블로그를 통해 테슬라 모터스의 특허를 모두 공개한다고 발표했다. 제목은 All your base are belong to us의 패러디. 이유는 전기차 시장을 키우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의 비범한 성격 때문인지 기존 자동차 회사의 패러다임에 도전하는 독특한 차량을 내세운다. 자동차 모델 이니셜을 모으면 SEXY가 된다거나, 무리수에 가깝지만 한눈에 봐도 미끈한 차량 디자인을 내놓는다거나. 혁신적인 디자인, 흥미로운 프레젠테이션, 사명 변경의 취지를 보면 애플이 떠오른다. 물론 경영 전략의 관점으로 봐도 신생 기업이 시장의 흐름을 완전히 따라 흔하디 흔하게 위치하면 그 자체로는 기업에 전혀 메리트가 없다. 만약 흔한 후발 주자로 참전한다면 그나마 내밀 수 있는 카드가 낮은 가격인데 이럴 바엔 틈새시장을 공략해 그 분야의 일류가 되자는 전략을 세운 듯.
그리고 그 전략이 성공해 2021년 1월 토요타를 추월해 전 세계 자동차 회사 중 시가 총액 1위에 올라 있다. 몇 차례나 파산 위기에 몰렸으나 고비를 모두 견뎌내고 자동차 시장에 큰 한 획을 그음과 동시에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평가를 들으며 테슬라의 주가는 급상승했다. 대주주인 머스크의 재산 역시 껑충 뛰었다.
솔라시티 (SolarCity)
2006년 머스크의 사촌인 린든 라이브와 피터 라이브가 공동 설립한 회사.
린든과 함께 네바다 사막에서 개최되는 버닝맨 페스티벌에 다녀오는 과정에서, 린든이 '좋은 일을 하는 사업을 하고 싶다'고 하자 태양광 발전 회사 설립을 제안했다고 한다. 린든이 이 제안을 받아들여 솔라시티를 창업했고, 머스크는 솔라시티의 최대 주주 겸 이사회 의장이 되었다.
초창기에는 거의 무료로 솔라판을 설치해 주면서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그린 에너지와 값싼 에너지 공급을 목표로 시작한 독자적인 사업이었지만, 좋은 기술력과 엔지니어가 있었음에도 사라진 다른 전기차 회사들과는 다르게 테슬라 모터스가 살아남게 한 숨은 공신. 사실 전기차라는 개념은 자동차 시장이 태동하던 때부터 가솔린 자동차와 대립하였으나 가솔린의 장점에 밀려 시장에서 잊혔다. 이후 잊힐 만하면 터지는 오일 쇼크 때마다 수많은 사업가들이 전기 자동차 사업에 도전했지만, 배터리의 용량의 한계로 인해서 주행 거리가 100km도 넘지 못하는 게 대다수였고 배터리를 한 번 충전하려면 몇 시간이 걸리는 것과 같은 문제 때문에 실용화가 번번이 실패했었다. 머스크는 전기차보다는 배터리를 값싸게 생산하는 게 전기차의 미래라고 판단, 태양 에너지가 주력이었던 솔라시티를 통해서 배터리 관련 사업에 직간접적으로 투자했다. 2014년경에는 기존의 방식에 비해 20% 더 효율적이고 가격은 20%만큼 줄인 배터리를 테슬라 차량에 탑재시켜 기존 가솔린 차량과 비슷한 가격에 판매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2016년, 워렌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가 소유한 NV에너지의 로비로 인해 솔라시티가 큰 타격을 입고 앞날이 불투명한 상황까지 내몰렸다. 머스크는 테슬라의 전기차 생태계 구축을 위해서는 솔라시티가 보유한 기가팩토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하였고, 이에 솔라시티를 인수하여 테슬라의 자회사로 편입하였다. 이 덕에 몇 년간 테슬라의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이 크게 증가했다.
현재는 테슬라의 전기차 대량생산 능력의 핵심 자산이 기가팩토리일 정도로 불확실성이 많이 해소된 상황.
최고 속도 1280km/h를 내며, 샌프란시스코에서 로스앤젤레스를 30분에 주파할 수 있는 가상의 교통수단. 일론 머스크가 미국의 서부 고속 철도 사업을 보고 효율성과 비용에 실망하여 고안한 아이디어. 테슬라모터스 블로그에서 자세한 디자인 스케치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일론 머스크는 벌써부터 다음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그가 준비 중인 다음 작품은 전기 비행기라고 한다. 초음속과 수직 이착륙 기술을 도입한다고. 수직 이착륙 항공기는 사실 예전부터 널리 회자되던 개념이라 전혀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당장 실제로 F-35 B형 모델이 수직 이착륙을 한다. 그러나 민간용으로는 헬기를 제외하면 개발이 더딘 상황. 만약 상용화될 경우 대도시로의 접근성의 발전, 빠른 속도와 연료 효율성이라는 세 가지 장점을 동시에 얻을 수 있다. 간단하게 비행기가 차량이나 기차에 비해 접근성이 떨어지는 이유가 공항 때문이다. 공항은 그 자체로 특수한 목적의 시설이기 때문에 주위에 높은 건물이나 비행기 운행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지형이 없어야 하고, 풍속, 호우 등 기상 상황도 고려를 많이 해야 하며 무엇보다 활주로가 필요하다. 당장 우리나라만 생각해봐도, 서울역은 사대문 안 서울 중심에 위치한 반면, 인천공항은 영종도에 위치해있다. 그런데 수직 이착륙 기술이 민간 분야에 도입되면 이론상 당장 헬기 이착륙이 가능한 빌딩 옥상에서도 비행기를 띄울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비행기가 타 교통수단에 비해 확실히 우위를 차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전기 연료 비행기는 2016년 태양광을 연료로 하는 비행기 솔라 임펄스의 성공 이후 상당히 투자도 늘고 있는 분야이다.
홍보용으로 로고가 박힌 모자를 5만 개 찍어내 팔았으며, 나중에는 2만 정 한정으로 화염방사기를 만들어서 팔았다. 이 화염방사기의 이름은 '화염방사기 아님(Not a Flamethrower)'이다. 홈페이지에도 아예 'FLAMETHROWER' 라고 항목이 따로 있기까지 하다. 이름답게 진짜 화염방사기라고 하기에는 무리인 성능이다. 실제로는 장난감 총 프레임에 들어있는 덩치 큰 토치로, 사정거리도 매우 짧아 코앞까지밖에 불길이 뻗지 않는다.
2018년 12월 18일(현지 시간)에 스페이스X 본사가 위치한 LA 남부 호손에서 LA 국제공항까지 잇는 보링 컴퍼니의 터널(길이 3.2km)이 공개되었다. 원래 계획인 시속 241km가 아닌 시속 64km로 운행되긴 했지만, 터널 시작에서 끝까지 불과 3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AP통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LA의 러시아워가 되기 직전에 도로로 올라설 때까지의 시간밖에 안 되는 셈. 다만 차량의 진동이 심하다는 점은 꼭 개선해야 할 부분.
그리고 2019년에는 아예 유도 바퀴 설치 방안도 폐기하고 그냥 자사 차량의 오토파일럿 기능으로 땜빵하는 것으로 대체했다. 유도 바퀴가 트랙에 직접 접촉하지 않기 때문에 기존에 문제점으로 지적된 진동 문제는 없어졌지만, 테슬라의 차량으로만 이용 가능해졌다. 이 버전에서는 시속 186km까지는 속도를 내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후 라스베이거스 컨벤션 센터와 호텔을 연결하는 시범 노선에서는 오토파일럿을 쓰는 자사 차량으로만 이용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일반 이용자가 자가용을 끌고 와서 이용하는 대신, 16인승으로 개조된 모델 X 혹은 모델 3을 셔틀용으로 터널 안에서 굴리는 방식으로 운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끔찍한 수준의 일 중독자로 유명하다. 머스크는 20대 초반에 동생과 창업을 시작할 때부터 밤낮 구분없이 일에 집착했고 페이팔을 만들어서 억만장자가 되었을 때도 피터 틸의 쿠데타와 격무로 인해 신혼여행조차 가지 못했다.
2000년 12월에 첫 번째 아내였던 저스틴과 모잠비크로 2주일 간 여행을 떠난게 알려진 공식적으로 유일한 장기휴가기록인데, 운 나쁘게도 아프리카에서 가장 치사율이 높은 열대열 말라리아에 걸려 열흘 이상 사경을 헤맸다.
당시 머스크는 체중의 20kg 이상을 잃었으며 머스크를 치료한 전문의는 하루만 늦었다면 치료제인 독시사이클린이 통하지 않고 죽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정말 죽을 뻔 했어요. 그래도 휴가에 대한 교훈은 확실하게 배웠죠. 휴가 가면 죽을 것이다."
-일론 머스크#
이 사건 이후 지금까지 20여년 동안 머스크는 1주일 이상의 장기휴가를 가져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머스크는 20여 년간 주당 80-100시간씩 쉬지 않고 일했다. 이는 일반적인 미국 직장인의 2배에 달하는 노동시간이며 휴일 없이 하루 12~14시간씩 일하고 있는 셈이다. 실리콘밸리에서 야근과 성실함이 중시되는 것은 널리 알려진 것이 사실이지만 머스크처럼 미친 듯이 일하는 사람은 드물다. 머스크의 첫 번째 아내인 저스틴은 머스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남편이 저녁 7~8시나 되어야 귀가한다고 불평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일론은 밤 11시에 집에 오는 데다가 그 이후에도 일을 했습니다.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일론처럼 사생활을 희생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저스틴 머스크, 2001
또한 머스크 본인이 80시간 근무를 예찬하는 것도 과로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 세상에 일하기 쉬운 곳은 많지만 1주일에 40시간 일해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선 주당 80시간 이상 일해야 한다."
"창업은 매우 고통스럽기 때문에 남에게 추천할 만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창업을 하게 된다면 2명이 40시간 일 하는 것보다 1명이 80시간 일 하는 것이 성공할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다."
-일론 머스크
모델3 생산문제를 겪던 2018년은 테슬라가 말 그대로 파산할 뻔한 위기였다. 당시 머스크는 주 120시간(단순계산으로 일 17시간) 이상 일했고 잠은 수면제에 의존했다고 한다.
47번째 생일날에도 하루 24시간 동안 일했으며 이틀 뒤 동생 킴벌이 스페인 카탈루냐에서 결혼식을 열어 신랑 들러리로 참석해야 했는데 전용기로 날아가 예식에만 참석하고 바로 테슬라 본사로 돌아와 모델3 차량 생산 문제에 매달렸다.
…사나흘 동안 공장 밖으로 나가지 않은 적도 있다… 공장바닥에서 쓰러져 잤다… 그러느라 아이들을 보지도 못하고 친구들을 만나지도 못했다… 잠을 아예 못 자거나 앰비엔을 먹거나 사이에서 선택해야 할 때가 많다.
-일론 머스크
120시간 과로로 점철된 2018년은 머스크가 인정한 생애 최악의 해였다. 심지어 세계금융위기를 겪던 2008년보다도 고통스럽다고 말했는데, 08년도의 머스크는 갓 낳은 아이가 병에 걸려 죽었고, 첫 번째 아내에게 이혼당했으며, 직원들 월급 줄 돈을 빌리기 위해 지인들에게 굽실대야만 했고, 꿈과 희망이 담긴 로켓은 모조리 폭발했으며, 전용기를 탈 돈 조차 떨어져 저가항공을 이용하던 상황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그런 고통을 겪는 장면을 보는 건 힘들어요. 그이는 벼랑 끝에 서있었어요. 이 남자가 심장마비가 와서 죽을 수도 있겠단 생각을 했어요. 일론은 몸에 통증을 느꼈어요. 끔찍한 악몽을 꾸고 내 몸에 기대와 자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털룰라 라일리, 2008년도의 머스크를 회상하며.《일론 머스크, 미래의 설계자》 중
이후 머스크 본인도 주 120시간 근무는 뇌와 심장에 심각한 무리가 오며 최악의 스케줄이라는걸 인정했다. 조 로건과 진행한 팟캐스트에 따르면 현재는 80-90시간 정도만 일하며 수면시간은 하루 6시간 정도로 늘렸다고 한다.
정치적 면에서 예외적으로 본래 리버럴 일색인 IT 산업계에서 한 발짝 물러난 성향을 보인다. 머스크가 추진하는 사업들에 대해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그의 발언이나 성향에 대해 알고 놀라는 일이 많을 정도. 머스크 본인은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대해 "반은 민주당 지지자, 반은 공화당 지지자"라고 묘사했다. "나는 그 둘의 중간에 있는 사람으로, 문화적으로는 자유주의자이며 경제적으로는 보수주의자"라고 말했으며, "미국은 지상에 존재했던 나라들 중 가장 최고의 국가"라는 의견을 밝히며 미국이 아니었더라면 지구상에 민주주의가 퍼질 수 없었을 것이라는 미국 예외주의 성향을 보였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에는 트럼프와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조언하겠다는 의사를 표한 것은 물론, 임명 이후 논란이 많았던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에 대해 "대단히 유능한 경영자"라며 대단한 국무장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트위터에서 밝혔다. 게다가 틸러슨은 화석 연료 산업의 대표 주자인 엑슨모빌의 CEO 출신이다. 테슬라나 솔라시티가 추구하는 미래상을 생각하면 쉽게 예상하기 힘들었던 일.
이런 행보에 대해서는 미국 태생이 아니기 때문에 우주 사업 등에서 미 의회의 견제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 미리 미국에 대한 충성심을 어필하며 숙이고 들어가는 전략이라는 평이 대세이다. 우주 산업과 친환경 산업이라는 정반대 정치 성향을 가진 분야에 큰손으로 있는 그로서는 민주당과 공화당 어느 한쪽에라도 밉보이면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2017년 6월 1일 트럼프가 파리 기후 협약에서 탈퇴를 선언한 것을 보고 "트럼프 자문단에서 탈퇴하겠다"고 트위터에서 밝혔다. 그렇지만 그 이후도 사이가 나쁜 건 아닌 것으로 보인다. 탈퇴 이후에도 2018년 머스크는 트럼프의 보호 무역을 지지한다고 밝혔고# 트럼프의 우주군 창설도 지지하였으며# 2020년 트럼프는 머스크에게 훌륭한 사업가, 에디슨이라며 극찬하였다. 또한 당일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최근 머스크와 로켓에 대해 대화했다고 말하였다. 2018년 머스크의 스페이스X 로켓 발사가 성공하자 트럼프는 축하 메시지를 보내기도 하였다.
2019년 8월 초에 2020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기본소득제를 대표 공약으로 내세우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앤드루 양을 지지한다고 트위터로 밝혔다. 일론 머스크는 오래전부터 기본소득제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여왔다. 앤드루 양이 경선에서 떨어지자, 갑작스럽게 카녜 웨스트를 지지하였다. 그리고 카녜 웨스트 선거 고문단으로 임명되었다. 다만 일종의 장난 혹은 트롤링으로 지지 선언한 것에 가까우며 카녜 웨스트가 실제로 출마하자 바로 지지를 철회하였다.
2020년 조 바이든의 당선 이후 바이든의 기후 변화 정책을 지지하며 바이든 정부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주당과 바이든 정부가 추진한 코로나 락다운에 극도로 부정적인 의견을 표했으며 사회적 거리두기는 파시즘이고 당장 거리두기를 중단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는 거리두기가 지속될 경우 테슬라 공장운영이 중지되므로 자동차 생산에 차질이 생겨 머스크 본인의 회사가 손해를 보는 것도 있지만,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하는 보수적인 공화주의자들이 락다운을 매우 싫어하는 것을 노렸다고도 볼 수 있다.
실제로 머스크는 기후변화 방지와 탄소중립을 주장하며 캘리포니아의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테슬라를 팔고, 미국 기업임을 강조하면서 애국을 중시하고 총기를 좋아하는 보수주의자들에게서 호감을 얻는다. 그러면서도 2021년에 테슬라가 중국 공산당의 제재를 받을 위기에 처하자 빠르게 중국을 칭찬하는 등 아찔한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 정치적인 면모로만 봤을 때 머스크는 서로 다른 집단들을 상대로 중립적인 스탠스를 유지하고 호감을 얻기 위해 대단히 치밀하게 행동한다. 또 말을 흐리거나 농담을 사용해 관심을 돌리는 일에도 능하다.
거의 완전히 무신론자이다. 머스크는 자신이 어떠한 신도 믿지 않으며, 어떠한 종교도 없고, 2001년 말라리아에 걸려 사망할 뻔했을 때도 신에게 기도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불가지론으로도 볼수있는 발언들을 자주했다.
아래는 머스크가 인격신에 대해 내놓은 견해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설계한 궁극의 지능이 있냐고 생각하냐고요? 저는 그런 게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그 궁극의 지능은 어디서 오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정말로 이것을 물리학의 기본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요소들로부터 생겨나는 복잡한 현상들 말입니다.
- 일론 머스크 종교발언
그가 기도를 했다고 유일하게 인정한 순간은 스페이스X가 발사한 크루 드래곤을 탄 우주 비행사들이 지구로 귀환할 때, 안부를 기원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때에도 자신이 비종교적임을 강조했다.
또한 일론 머스크는 닉 보스트롬이 주장한 시뮬레이션 우주론을 지지한다.
테슬라를 창업하기 전 20대에 맥라렌 F1을 타고 다닐 정도로 슈퍼카를 좋아하지만 2020년 들어서 자신이 집을 소유하지 않을 것이며 거의 모든 물질적 자산을 팔고 있다고 밝혔다. 트윗에 따르면 파트너인 그라임스가 자신에게 화났다고 전해 부동산 매각이 그라임스와 상의되지 않음을 시사한다.
2021년 1월 일론 머스크는 보유하고 있던 7채의 저택과 부동산을 모두 매각했다.## 때문에 현재 무주택자인 상태로 매각 이유에 대해서는 정서적 안정과 일에 집중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만 남긴다고 밝혔다. 현재는 Space X 사옥 부지 한켠에 조그만 조립식 주택 하나를 만들어 놓고 거주하고 있다.
다양한 분야의 수많은 기업들을 경영하며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인물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의 미친 기행을 보여주고 있다. 아니, 어쩌면 그에 걸맞은 기행일지도. 특히나 트위터를 통해 그야말로 똥글을 싸지르는 실력(shitposting)은 달인급. 본인이 펼치는 사업 계획과 중대 발표, 그리고 미래에 대한 원대한 비전을 담은 글들 사이로 뜬금없는 인터넷 밈 사진이나 막드립들이 수도 없이 끼어 있어서 보다 보면 굉장히 깬다.
한번은 쿠파 공주 코스프레를 보여달라'는 트윗에 동방 프로젝트의 이마이즈미 카게로 짤을 올리고서 "사실 난 고양이 소녀고 이게 내 셀카다"라는 답을 해서 화제가 되었다. 사실 고양이가 아니라 늑대인간인데 대충 비슷해 보여서 아무 짤이나 올린 듯. 그 전에도 "I ♡ anime"란 트윗을 올리거나, 하츠네 미쿠 콘서트에 못 가서 한숨 쉬는 트윗을 올리거나 비트코인 모에화 짤을 올리는 등 오덕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기어이 카케구루이 티셔츠를 입은 모습을 찍은 사진으로 인해 오덕 확정.
2016년 6월 2일에는 "미래 인류가 가상 세계가 아닌 진짜 현실에서 살 확률은 10억분의 1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2018년 5월에는 세계 3위 부자 워렌 버핏을 이기기 위해 사탕 회사를 만든다고 했다. 버핏은 머스크가 자신이 투자하고 있는 사탕 사업을 무너뜨리진 못할 것이라고 하자 이를 반격한 것이다. 버핏 vs 머스크 '사탕 싸움'
2018년 7월에는 여자친구 그라임스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K-POP 걸그룹 이달의 소녀의 신곡에 피처링을 했다는 트윗을 올렸는데, 이때 댓글에 뜬금없이 이달의 소녀를 샤라웃하는 트윗을 올렸다.
2018년 9월 7일 코미디언 조 로건이 진행하는 생방송 팟캐스트인 '조 로건 익스피리언스'에 출연해서 마리화나가 섞인 담배를 피우고 위스키를 마셔서 논란이 됐다. 단, 직접 불을 붙여서 태운 것은 아니며 진행자가 피우고 있던 마리화나를 권유에 의해서 한 모금 흡입한 게 전부다. 또한 머스크는 진행자에게 합법적인 것이냐고 물어보고 흡입했다. 해당 장소가 마리화나가 합법화된 주이며 미 서부에서 마리화나의 위치는 담배와 술이랑 크게 차이가 안 나는 수준에 속하긴 해도, 저명한 재계 인사가 공개적으로 마리화나를 피웠다는 사실만으로도 논란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머스크가 일반적인 기업 경영자였다면 가십거리 정도로 끝났을 일이지만, 문제는 그가 경영하는 스페이스X가 미국 공군과 사업 계약을 맺은 상태라는 점이다. 미군 규정에 따라 미군과 계약한 회사 직원은 마리화나 흡연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이 문제로 또다시 조사를 받아야 할 처지가 됐다. 그리고 결국 미 공군이 2021년부터 사용할 발전형 소모성 발사체(Evolved Expendable Launch Vehicle) 사업 계약은 스페이스X 대신 노스롭 그루먼의 오메가 로켓이 선정되었다. 블룸버그는 국방부가 스페이스X의 비밀 취급 인가를 재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2019년 2월에는 릭 앤 모티의 저스틴 로일랜드와 함께 PewDiePie의 'Meme Review' 영상에 출연하면서 인터넷을 한바탕 뒤집어 놨다. 이미 1월달에 이를 암시하는 트윗을 올리긴 했지만 당시는 다들 그냥 드립으로 넘어갔던 터라 다시금 머스크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행보에 혀를 내두르게 만들었다.
첫댓글 테슬라가 꿈꾸는 자동차는 인공지능 빅데이타 기반에 완전자율주행 자동차를 완성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인공지능이 도구(계산기)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라면 저는 하느님을 믿고 의지하겠습니다. 인간이 교만해져서 생기는 우환이 더 두렵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사람으로서 존중되어야 합니다. AI를 마구 찍어내는 기술은 경의롭지만 이를 잘못사용하면 인류에 엄청난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경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