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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부문 | 등급별 시상인원 및 상금 | |||||
장원 | 차상 | 차하 | 참방 | 계 | ||
합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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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인,310만원 | |
작시 | 1인×30 | 1인×20 | 1인×10 | 9인×5 | 12인,105만원 | |
외워 쓰기 | 소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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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인,205만원 |
대학, 일반 | 1인×30 | 1인×20 | 1인×10 | 15인×5 | 18인,135만원 | |
중고등학생 | 1인×10 | 1인× 5 | 1인× 3 | 16인×2 | 19인, 50만원 | |
초등학생 | 1인× 5 | 1인× 3 | 1인× 2 | 10인×1 | 13인, 20만원 |
○ 채점기준 : 각 부문별 요령 참조
○ 답안작성시간 : 당일 개회식후 10시 30분부터 12시 까지
접수하는 곳에 제출 (90분)
○ 감독 및 고선 : 한시관련 경험 있는 분 위촉
○ 참가신청 : 2018. 10. 15일까지 전화, 휴대폰 문자 등 신청 접수
다음 중 편리한 곳
- (사)한국한시협회 춘천지회 회장 신대선 010-6370-8591
- 동 부회장 손호정 010-8813-2992
- 동 사무국장 박정근 010-8587-3233
*신청자의 상황에 따라 각 부문 간 시상인원 조정
*참가안내문은 각 학교 및 관련학원에 이미 우편으로 요강발송 및
다음카페 “소양한시회”에 게재
○ 시상금품 수여 : 시상금은 수상자의 은행계좌에 입금을 원칙으로
하되 고등학생 이하 학생부는 문화상품권으로 수여
○ 시상식 : 대회 후 빠른 시일 내 시상일정 추후 통지
-학생부는 해당학교에 보내 전수
-일반부(대학생 포함)는 차하까지 춘천문화원에서 시상하고,
참방은 개별 통지
○ 응시자 유의사항 : 답안의 한자는 해서 정자로 정확히 작성
-답안지는 현장에서 배부함
-참가 시 본인임을 확인할 수 있는 신분증 지참(학생증 등)
제5회 한시 외워 쓰기 및 작시대회 참가 신청서
(접수번호 : )
주소 :
소속 : 학교 (학과) 학년 (반) |
성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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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번호(휴대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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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이 본 대회에 참가하고자 신청합니다. 2018. . . 성명 (싸인) 춘천문화원장, (사)한국한시협회 춘천지회장 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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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화나 휴대폰 문자로 할 경우 본인 싸인 불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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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작문 요령】
[방침]
- 7언 절구로 주어진 시제와 운에 따라 제한시간 내 작시 제출
- 시제는 (사)한국한시협회 춘전지회에서 위촉하는 고선위원이 출제
- 시운은 제1구와 제2구는 미리 지정하고, 제4구는 현장에서 추첨제시
- 평가 기준은 한시협회고선준칙 적용
[시제와 운]
- 시제 : 鳳儀金秋(봉의산의 가을)
- 운 : 제1구紅, 제2구功, 제4구□(현장추첨 제시)
[평가기준]
- 違題(제목과 다른 시)와 簾不合(각 聯句간 黏對의 평측이 어긋난
것)은 평가 제외
- 다음사항은 감점(감점기준은 고선위원회에서 별도 정함)
· 皆平皆仄頭(각구의 첫 자가 모두 평성 또는 측성인 것)
· 節株(각구의 제2자, 제4자, 제6자)부분의 평측착오
· 孤平孤仄(각구의 제4자를 기준으로 평측이 홀로 외로운 것)
· 下三連(각구의 꼬리부분 3자가 모두 평성 또는 측성 인 것)
· 疊字疊意(같은 글자가 두 번 이상이거나 의미가 같은 것, 다만 같은
구내에서는 무방)
- 고선위원은 시의 내용이 제목에 합당하고, 어법과 율격에 맞으며, 앞뒤(기승전결)가 잘 어울려 감동을 줄 수 있는 시를 만점으로 하여 우열에 따라 점수를 부여한다. 총 등급의 순위는 2인 이상 고선위원의 합계 점수가 높은 순서로 순위를 정한다.
제5회 한시대회 작문 답안지
結句 | 轉句 | 承句 | 首句 | 본
문
해
석 | 豫韻 | 詩題 | |||||
漢字 | 音 | 漢字 | 音 | 漢字 | 音 | 漢字 | 音 |
鳳 儀 金 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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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電話 | 姓名 | 住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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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功 | 공 | 紅 | 홍 | ||||
計座番號 | 雅號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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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시 외워 쓰기 요령】
[외워 쓰기 및 평가]
〇 외워쓰기 할 시 : 총 14수(⓵ ~ ⑭번 시 참조)
- 초등학생 : 3수(오원절구 3수 : ⓵ ⓶ ⓷번 시)
- 중고등학생 : 5수(오언절구 3수와 7언절구 2수 : ⓵ ⓶ ⓷ ⓻ ⓼번 시)
- 대학생 및 일반인 : 총 14수 중 현장 추첨 7수
· 5언절구 6수 중 3수 현장 추첨(첨부 ⓵ ~ ⓺번 시)
· 7언절구 6수 중 3수 현장 추첨(첨부 ⓻ ~ ⑫번 시)
· 율시 2수 중 1수 현장 추첨(첨부 ⑪ ~ ⑫번 시)
〇 외워쓰기 평가방법
- 제한된 시간 내, 한자 해서체로 또박또박 쓴 글씨 중
- 잘못 쓴 글자가 적은 답안, 먼저 제출한 답안 순으로 순위 결정
[오언 절구] 6수
⓵ 與隨將于仲文(여수장우중문) 乙支文德(을지문덕)
수나라 장군 우중문에게
神策究天文(신책구천문) 신기한 계책은 천문에 통달하고
妙算窮地理(묘산궁지리) 기묘한 헤아림은 지리를 다하였네
戰勝功旣高(전승공기고) 싸움에 이기어 공이 이미 높으니
知足願云止(지족원운지) 만족함을 알고 그만 두기를 바라노라
*전국한문교사모임, 『2009개정교육과정중학교한문통합교재』, 대교173, 2014.
*고려 명종 때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 부록, 「백운소설」. 조선 성종 때 서거정 등이 편찬한 『동문선』 제19권에 원문이 실려 있다.
*을지문덕(생몰연대 미상) : 고구려 영양왕 23년(서기 612) 수나라 30만 대군의 장수 우중문에게 위와 같은 오언시를 보내 희롱하였고, 평양까지 왔다가 회군하는 틈을 이용하여 살수대첩으로 크게 무찔렀다. 이로써 수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한 장쾌한 시이다.
⓶ 獄中見櫻花有感(옥중견앵화유감) 韓龍雲(한용운)
옥중에서 벚꽃을 보는 감회
昨冬雪如花(작동설여화) 지난겨울에는 눈이 꽃 같더니
今春花如雪(금춘화여설) 이봄에는 꽃이 눈 같구나
雪花共非眞(설화공비진) 눈과 꽃이 모두 참이 아니거늘
如何心欲裂(여하심욕열) 어찌하여 내 마음 찢어지려 하는가
*만해사상실천연합회, 『한용운시전집』, 2006.
*한용운(1879고종 16∼1944.): 승려·시인·독립운동가. 본관은 청주(淸州). 본명은 정옥(貞玉), 아명은 유천(裕天). 법명은 용운, 법호는 만해(萬海, 卍海). 충청남도 홍성 출신. 아버지는 응준(應俊)이다. 6세 때부터 향리 서당에서 10년 동안 한학(漢學)을 익혔다. 14세에 고향에서 성혼의 예식을 올렸다. 그 자신의 술회대로 넓은 세계에 대한 관심과 생활의 방편으로 집을 떠나 1896년 설악산 오세암(五歲庵)에 입산하여 처음에는 절의 일을 거들다가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그 후 1919년 3·1독립운동 때 백용성(白龍城) 등과 함께 불교계를 대표하여 참여하였다. 1944년 6월 29일 성북동의 심우장(尋牛莊)에서 중풍으로 별세하였다. 저서로는 ≪조선불교유신론≫, ≪불교대전 佛敎大典≫, ≪십현담주해 十玄談註解≫, 시집으로 ≪님의 침묵≫, 장편소설 <흑풍 黑風><후회 後悔>,<박명 薄命>등이 있고, 많은 한시를 남겼다.
⓷ 登鸛雀樓(등관작루) 王之渙(왕지환)
관작루에 올라
白日依山盡(백일의산진) 밝은 해는 산에 기대어 지려하고
黃河入海流(황하입해류) 황하는 바다로 들어 흘러가네
欲窮千里目(욕궁천리목) 천리 먼 곳을 다 바라보려면
更上一層樓(갱상일층루) 다시 한 층 더 올라가야지
*전국한문교사모임, 『2009 개정교육과정 중학교한문통합교재』, 전국한문교사모임, 2014. 및 아슬(雅瑟) 주편, 『당시삼백수』, 북경, 신세계출판사, 2011. 참조
*왕지환(688~742) : 중국 당나라 초기의 관리이자 시인이다. 진양(晉陽, 지금의 山西 太原市) 사람으로 자는 계릉(季陵)이다. 개원(開元) 초에 기주(冀州) 형수현주부(衡水縣主簿)를 맡았다가 모함을 당하고 격분하여 관직을 버렸다. 호방불기(豪放不羈)하여 항상 칼을 치며 시를 읊었다. 시를 잘 지었는데, 대개 당시 악공들이 지은 노래에 실려 많이 가창(歌唱)되었다. 시는 대부분 망실되어 『전당시(全唐詩)』에 「양주사(凉州詞)」와 「등관작루(登鸛雀樓)」 등 겨우 6수가 실려 있다.
⓸ 詠半月(영반월) 黃眞伊(황진이)
반월을 노래하다
誰斲崑山玉(수착곤산옥) 누가 곤륜산의 옥을 잘라다가
裁成織女梳(재성직녀소) 직녀의 머리빗을 만들었나
牽牛一去後(견우일거후) 견우가 한번 떠난 후에
愁擲碧空虛(수척벽공허) 수심에 쌓여 푸른 하늘에 던졌다네
*시의 제목을 소호당집에는 <咏初月>이고, 고등학교한문교과서 [《다락원96》, 2009]에는 <詠半月>, 김상홍 『한시의 이론』, 2007. 에도 <詠半月>로 되어 있다. 머리빗이 초승달 보다는 반달 모양과 가까워 여기서는 <詠半月>로 한다. 번역도 김상홍의 위의 책을 따른다.
*황진이(생몰년 미상): 조선 중기의 명기(名妓). 본명은 진(眞), 일명 진랑(眞娘). 기명(妓名)은 명월(明月). 개성(開城) 출신. 확실한 생존연대는 미상이다. 중종 때의 사람이며 비교적 단명하였던 것으로 보고 있다. 황진이가 지은 한시에는 <박연 朴淵>·<영반월 詠半月>·<등만월대회고 登滿月臺懷古>·<여소양곡 與蘇陽谷> 등이 전하고 있다. 시조 작품으로는 6수가 전한다.
⓹ 春曉(춘효) 孟浩然(맹호연)
봄날의 새벽
春眠不覺曉(춘면불각효) 봄잠에 새벽 오는 줄 몰랐더니
處處聞啼鳥(처처문제조) 곳곳에서 새소리 들리는 구나
夜來風雨聲(야래풍우성) 밤새워 내린 비바람 소리에
花落知多少(화락지다소) 꽃들이 얼마나 떨어졌을까?
*孟浩然(맹호연698~ 740): 자는 호연이며 호북성 양양(襄陽)사람이다. 일찍이 고향 녹문산(鹿門山)에 숨어 지내다가 나이 40에 벼슬길을 찾았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의 글재주는 널리 알려졌다. 이 시는 성당에 들어와 완성된 오언절구의 명작으로 자연을 보는 눈에 개성이 있고 시정이 신선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전국한문교사모임,「중고등학교 漢文 통합교재」,2014. YBM99, 김학주,「唐詩選」,명문당, 2011. 95쪽, 雅瑟主編,「唐詩三百首」, 北京 新世界出版社, 2012. 52쪽
⓺ 遊子詩(유자시) 孟郊(맹교)
떠도는 아들의 시
萱草生堂階(훤초생당계) 원추리는 고향집 섬돌에 피어 있겠지
遊子行天涯(유자행천애) 나그네 되어 머나먼 곳을 떠도네
慈親倚堂門(자친의당문) 어머니는 집 문에 기대어 계시겠지
不見萱草花(불견훤초화) 여기는 원추리도 보이지 않는데
*최일의, 『중국시의 세계』, 신아사, 2012.
*맹교(751년 ~ 814년): 당나라 호주(湖州) 무강(武康) 사람. 자는 동야(東野)고, 장적(張籍)이 내린 시호는 정요선생(貞曜先生)이다. 곤산(昆山)에서 태어났고, 젊어서 숭산(嵩山)에 은거했다. 성격이 결백 분명했고, 한유(韓愈)와 가깝게 사귀었다. 45살 무렵에야 진사 시험에 합격하여 율양위(溧陽尉)가 되었다. 정여경(鄭餘慶)이 동도유수(東都留守)가 되었을 때 불려 수륙전운판관(水陸轉運判官)을 지냈다. 나중에 정여경이 흥원(興元)에 주둔할 때 참모가 되었다. 시를 잘 지었고, 가도(賈島)와 이름을 나란히 해서 ‘교도(郊島)’라 불렸다. 시풍(詩風)은 수경(瘦硬)하여 ‘교한도수(郊寒島瘦)’라 하였다. 가정적으로도 불우했고, 빈곤 속에서 죽었다. 한유의 복고주의(復古主義)에 동조하여 작품도 악부(樂府)나 고시(古詩)가 많았는데, 외면적인 고풍(古風) 속에 예리하고 창의적 감정과 사상이 담겨 있다. 북송(北宋)의 강서파(江西派)에 영향을 끼쳤고, 저서에 『맹동야시집(孟東野詩集)』 10권이 있다.
[칠언절구] 6수
⓻ 送人(송인) 鄭知常(정지상)
님을 보내며
雨歇長堤草色多(우헐장제초색다) 비개인 긴 언덕에 풀빛이 푸른데
送君南浦動悲歌(송군남포동비가) 그대를 보내는 남포에서 슬픈 노래 부르네
大同江水何時盡(대동강수하시진) 대동강 물 어느 때나 마를까?
別淚年年添綠波(별루년년첨록파) 이별의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에 더하는 것을
*서거정(徐居正) 외, 『동문선(東文選)』 제19권, 허균(許筠),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제25권, 성수시화(惺叟詩話), 한국고전DB. 『고전번역서』 . 참조.
*정지상(미상~1135 인종13) : 고려 중기의 문신으로 호는 남호(南湖)이다. 서경(평양) 출신으로 서울을 서경으로 옮길 것을 주장해 김부식(金富軾)을 중심으로 한 개경 세력과 대립하였다. 서경을 거점으로 묘청 등이 난을 일으키자, 적극 가담해 금나라를 정벌하자고 주장하며 칭제건원(稱帝建元)을 하였다. 그러나 김부식이 이끄는 토벌군에게 패해 참살되었다. 그는 뛰어난 시인으로서 문학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⓼ 早發白帝城(조발백제성) 李白(이백)
아침에 백제성을 나오다
朝辭白帝彩雲間(조사백제채운간) 이른 아침 오색구름 감도는 백제성을 하직하고
千里江陵一日還(천리강릉일일환) 천리 길 강릉을 하루 만에 돌아왔네
兩岸猿聲啼不住(양안원성제부주) 삼협의 양안 원숭이 울음소리 멈추지 않는데
輕舟已過萬重山(경주이과만중산) 가벼운 배는 이미 만 겹의 산을 지나왔다네
*李白(이백701~ 762): 자 태백(太白) 호 청련거사(靑蓮居士)이다. 이백은 만년에 영왕(永王) 이린(李璘)의 거병에 가담하였는데, 이린의 거사가 실패하자 그도 체포되어 지금의 귀주성 서북부의 야랑(夜郞)으로 유배되었다. 야랑으로 가는 도중에 백제성(白帝城)을 지나면서 이백은 자신의 사면 소식을 접하였고, 자유의 몸이 되어 강릉으로 돌아가면서 이 시를 지었다. 백제성은 사천성 펑제현동쪽의 백제산에 있는 산성이며, 강릉은 호북성 장령현으로 두 곳의 거리는 양자강의 물길로 약 300㎞이다. 양안(兩岸)은 무산(巫山)과 협산(峽山)의 양쪽 언덕을 가리키며, 그 사이로 양쯔강이 흘러가는데 강폭이 좁아 유속(流速)이 최고 시속 24㎞에 이를 정도로 빠르다고 한다. 또 이곳은 원숭이들이 많은 지역이다. 이백은 자유의 몸이 된 기쁨을 빠른 물살처럼 경쾌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두산백과』, 2015. 早發白帝城과 靑木正兒「李白」(한시대계제8권), 1983. 257쪽에는 제3구 끝자가 ‘盡’으로 되어 있으나, 百度百科 baike.baidu.com/ 2015와 早发白帝城原文|翻译|赏析_李白古诗_古诗文网 www.gushiwen.org/GuShi/ 2015에서는 ‘住’로 되어 있어 이를 따르기로 한다.
⓽ 盤陀石(반타석) 李滉(이황)
반타석
黃濁滔滔便隱形(황탁도도편은형) 도도한 탁류 속에 얼굴 문득 숨겼다가
安流帖帖始分明(안류첩첩시분명) 고요히 흐를 때면 비로소 나타나네
可憐如許奔衝裏(가련여허분충리) 어여쁘다 이 같은 거센 물결 속에서도
千古盤陀不轉傾(천고반타부전경) 천고에 반타석은 구르거나 기울지도 않았네
*『퇴계선생문집』 제3권, 시(詩), 도산잡영(陶山雜詠) 병기(幷記)
*한국고전번역원, 권오돈 외 (공역), 1968. 고등학교한문교과서, 《교학사161》, 2009.
*이황(1501연산군 7∼1570선조 3):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진보(眞寶). 자는 경호(景浩), 호는 퇴계(退溪)·퇴도(退陶)·도수(陶叟). 시호는 문순(文純)이다. 주자의 사상을 깊게 연구하여 조선 성리학 발달의 기초를 형성했으며, 이(理)의 능동성을 강조하는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주장하였다. 주리론(主理論) 전통의 영남학파(嶺南學派)의 종조(宗祖)로 숭앙되고 있다. 주요관직은 단양군수, 풍기군수, 성균관대사성, 대제학, 지경연을 지냈으나 관직보다는 학문에 뜻이 있어 모두 사직하고 학문연구와 후학의 가르침에 전념하였다. 주요저서로는 『심경후론』, 『역학계몽전의』, 『성학십도』, 『주자서절요』, 『자성록』, 『송원이학통록』 등이 있다.
⓾ 采蓮曲(채련곡) 許蘭雪軒(허난설헌)
연밥따는 노래
秋淨長湖碧玉流(추정장호벽옥류) 가을 빛 깨끗한 긴 호수에 푸른 물 흐르는데
荷花深處係蘭舟(하화심처계난주) 연꽃 핀 깊은 곳에 목란 배 매어두었지
逢郞隔水投蓮子(봉랑격수투련자) 임을 만나 물 건너 연밥을 던지다가
剛被人知半日羞(강피인지반일수) 이내 남이 알까 반나절 무안했네
*許蘭雪軒(허난설헌1563~ 1589): 호 난설헌(蘭雪軒). 별호 경번(景樊). 본명 초희(楚姬). 강릉(江陵) 에서 출생하였다.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許筠)의 누나이다. 이달(李達)에게 시를 배워 8세 때 이미 시를 지었으며 천재적인 시재(詩才)를 발휘하였다. 15세의 나이에 김성립(金誠立)과 결혼하였으나 원만하지 못했다고 한다. 연이어 딸과 아들을 모두 잃고 오빠 허봉이 귀양을 가는 등 불행한 자신의 처지를 시작(詩作)으로 달래어 섬세한 필치와 여인의 독특한 감상을 노래했으며, 애상적 시풍의 특유한 시세계를 이룩하였다. 허난설헌이 죽은 후 동생 허균이 작품 일부를 명나라 시인 주지번(朱之蕃)에게 주어 중국에서 시집 《난설헌집》이 간행되어 격찬을 받았고 1711년 분다이야 지로[文台屋次郞]에 의해 일본에서도 간행, 애송되었다. 선조 22년(1589년) 27세로 요절하였으며 유고집에 《난설헌집》이 있다.
*전국한문교사모임,「중고등학교 漢文 통합교재」, 2014. 교학사155. 장원교육84. 한국고전DB, 『고전번역서』, (성소부부고제26권 학산초담), 2015.
⑪ 江南春(강남춘) 杜牧(두목)
강남의 봄
千里鶯啼綠映紅(천리앵제녹영홍) 천리에 꾀꼬리 울며 녹음 빛에 붉은 꽃 어우러지고
水村山郭酒旗風(수촌산곽주기풍) 강마을 산성에 주점의 깃발 나부끼네
南朝四百八十寺(남조사백팔십사) 남조 시대 사백팔십 절
多少樓臺煙雨中(다소누대연우중) 수많은 누대에는 아련히 가랑비 끼었네
*장립민(張立敏) 편주, 『千家詩』, (북경) 中華書局, 2012. 손호정 역.
*남조(南朝): 420~ 589년간 중국 강소성 남경일대에 부침하였던 송(宋), 제(齊), 량(梁), 진(陳) 4개 봉건왕조를 총칭하는 말. 남조시대에는 불교를 좋아하여 널리 사원을 지었는데 당나라 시대까지 전하는 강남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두목(803년 ~ 852년): 당나라 경조(京兆) 만년(萬年) 사람. 자는 목지(牧之)이고, 호는 번천(樊川)이다. 문종(文宗) 대화(大和) 2년(828) 진사가 되었다. 무종(武宗) 회창(會昌) 연간에 고공낭중(考功郎中)과 지제고(知制誥), 중서사인(中書舍人)을 역임했다. 당시 유종간(劉從諫)이 택로(澤潞)를 지키고, 하진도(何進滔)가 위박(魏博)에 진을 치고서 아주 교만해져 법도를 무시하고 있었다. 이에 『죄언(罪言)』을 지어 조정에 용병(用兵)의 계책을 진언했다. 나중에 택로가 평정되었는데, 대략 그의 말과 같았다. 또 일찍이 『손자병법(孫子兵法)』에 주석을 달기도 했다. 문장과 시에 능했으며, 이상은(李商隱)과 더불어 ‘이두(李杜)’로 불렸다. 작풍이 두보(杜甫)와 비슷해서 소두(小杜)로도 불린다. 대표작으로 「아방궁부(阿房宮賦)」 외에 「강남춘(江南春)」과 『번천문집(樊川文集)』20권 등이 있다.
⑫ 仲秋月(중추월) 蘇軾(소식)
추석의 달
暮雲收盡溢淸寒(모운수진일청한) 저물녘 구름 다 걷히자 맑고 찬 기운 가득하니
銀漢無聲轉玉盤(은한무성전옥반) 은하수는 소리 없이 옥쟁반을 굴리네
此生此夜不長好(차생차야부장호) 이렇게 생긴 달 이 밤에도 오래지 않을 텐데
明月明年何處看(명월명년하처간) 밝은 달 내년에는 어디에서 볼거나
*은한(銀漢): 은하수. *옥반(玉盤): 둥근 달을 비유. *不長好: 不長久
*장립민(張立敏) 편주, 『千家詩』, (북경) 中華書局, 2012. 손호정 역
*소식(1037년 ~ 1101년): 북송 미주(眉州) 미산(眉山) 사람. 자는 자첨(子瞻) 또는 화중(和仲)이고, 호는 동파거사(東坡居士) 또는 설당(雪堂), 단명(端明), 미산적선객(眉山謫仙客), 소염경(笑髥卿), 적벽선(赤壁仙) 등을 썼으며, 애칭으로 파공(坡公) 또는 파선(坡仙)을 썼다. 소순(蘇洵)의 아들이고 소철(蘇轍)의 형으로 대소(大蘇)라고도 불렸다. 송나라 최고의 시인이며,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이다.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이 실시되자 구법당(舊法黨)으로 신종(神宗) 희녕(熙寧) 중에 그 불편함을 지적한 글을 올렸다가 항주통판(杭州通判)으로 전출되었다. 이후 신법당과 구법당 사이의 알력으로 여러 번 좌천 되고 해남도(海南島)에 유배를 가기도 하였다. 항주지주(杭州知州)로 있을 때에는 서호(西湖) 주변에 30리의 제방을 증축하여 주민들의 편리를 도모했다. 그의 시풍은 당시(唐詩)가 서정적인 데 대하여 철학적 요소가 짙었고 새로운 시경(詩境)을 개척했다. 대표작 「적벽부(赤壁賦)」는 불후의 명작으로 널리 애창되고 있다. 시서화(詩書畵)에 모두 뛰어났다. 저서에 『동파칠집(東坡七集)』과 『동파지림(東坡志林)』, 『동파악부(東坡樂府)』, 『구지필기(仇池筆記)』, 『논어설(論語說)』 등이 있다.
[율시] 2수
⑬ <下席破嶺泊新淵江口(하석파령박신연강구)> 申欽(신흠)
석파령을 내려가 신영강 입구에서 자다
下嶺沿江口(하령연강구) 재를 내려 강어귀 따라가다가
移舟入古墟(이주입고허) 배를 옮겨 옛 성터 들어왔구나
弊城存貊跡(폐성존맥적) 낡은 성엔 맥국의 자취 남았고
遺俗似秦餘(유속사진여) 끼친 풍속 진 나라 여풍 같다네
野接孤山逈(야접고산형) 들녘은 먼 고산에 닿았고
天連二水虛(천련이수허) 하늘은 텅 빈 두 강에 이어져 있네
誰知白司馬(수지백사마) 그 누가 알았으랴 백 사마가
垂老托匡廬(수로탁광려) 늘그막에 광려산에 의탁할 줄을
*한국고전번역원, 송기채 (역), 1994
*맥국 : 고구려의 전신(前身)인 부족국가의 이름임. 예국(濊國)과 함께 병칭되는데 예국은 강릉(江陵)에, 맥국은 춘천(春川)에 자리하였다.
*끼친 …… 같다네 : 춘천 지방에 옛날의 순박한 풍속이 남아 있다는 것임. 진 나라는 한(漢) 나라의 입장에서 말한 전조(前朝)의 뜻으로서, 조선에서는 고려로 이해된다.
*그 누가 …… 줄을 : 백 사마는 당 나라 문장가 백거이(白居易)를 말하고 광려산은 강서성(江西省)의 여산(廬山)임. 백거이가 태자좌찬성(太子左贊成)으로 있다가 재상의 미움을 받아 강주사마(江州司馬)로 좌천되어 있던 중 46세 때인 원화(元和) 12년(817) 3월에 여산의 향로봉(香爐峯)과 유애사(遺愛寺) 중간에 세 칸의 초당(草堂)을 지어 놓고 이듬해 11월까지 거기서 생활하였다. 상촌이 조정에서 쫓겨나 산중에서 귀양살이를 하게 된 것이 그와 비슷하므로 한 말이다. 《白氏長慶集 卷43 草堂記》 《白香山詩集 年譜》
*신흠(1566,명종 21∼1628,인조 6):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경숙(敬叔), 호는 현헌(玄軒)·상촌(象村)·현옹(玄翁)·방옹(放翁). 송인수(宋麟壽)와 이제민(李濟民)의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1586년 승사랑(承仕郎)으로서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99년 선조의 총애를 받아 그의 장남 익성(翊聖)이 선조의 딸인 정숙옹주(貞淑翁主)의 부마로 간택되어 동부승지에 발탁되었다. 1601년 『춘추제씨전(春秋諸氏傳)』을 합찬(合纂)한 공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승자되고 곧 예문관제학이 되었다. 1613년 계축옥사가 일어나자 선조로부터 영창대군(永昌大君)의 보필을 부탁받은 유교칠신(遺敎七臣)인 까닭에 이에 연루되어 파직되었다. 1616년 인목대비(仁穆大妃)의 폐비 및 이와 관련된 김제남(金悌男)에의 가죄(加罪: 죄를 더함)와 함께 다시 논죄된 뒤 춘천에 유배(4년 반 동안 삼천동 홍료도)되었으며 1621년에 사면되었다.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좌의정으로서 세자를 수행하고 전주에 피난했으며, 같은 해 9월 영의정에 올랐다가 죽었다. 이정구(李廷龜)· 장유(張維)· 이식(李植)과 함께 조선 중기 한문학의 정종(正宗) 또는 월상계택(月象谿澤: 月沙 이정구, 象村 신흠, 谿谷 장유, 澤堂 이식을 일컬음)으로 칭송되었다. 강원도 춘천의 도포서원(道浦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 및 편서로 『상촌집』·『야언(野言)』·「현헌선생화도시(玄軒先生和陶詩)」·「고려태사장절신공충렬비문(高麗太師壯節申公忠烈碑文)」등이 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⑭ <春望(춘망)> 杜甫(두보)
봄날의 바램
國破山河在(국파산하재) 나라가 무너져도 산하는 그대로 있고
城春草木深(성춘초목심) 성에 봄이 오니 초목만 우거졌구나
感時花濺淚(감시화천루) 시절이 가슴 아파 꽃을 보고도 눈물 뿌리고
恨別鳥驚心(한별조경심) 이별이 한이 되어 새소리에도 놀라네
烽火連三月(봉화연삼월) 봉화가 석 달이나 이어지니
家書抵萬金(가서저만금) 집에서 오는 편지는 만금이나 나가고
白頭搔更短(백두소갱단) 흰 머리는 긁을수록 더 짧아져
渾欲不勝簪(혼욕불승잠) 도무지 비녀를 견디지 못할 듯하네
*전국한문교사모임,『중고등학교 한문통합교재』, 2014. 및 김학주,『당시선』, 명문당, 2011. 258쪽, 진재지(陳才智) 편저, 『두보』, 북경 오주전파출판사, 2005.
*두보(712~ 770) : 중국 성당 때의 시인으로서 자는 자미(子美), 호는 소릉(少陵)이다. 시인인 두심언(杜審言)의 손자로서 어릴 때부터 시를 잘 지었으나 과거에는 급제하지 못하였고, 각지를 방랑하며 이백, 고적 등과 교유하였다. 이 시는 ‘안록산의 난’이 일어난 지 2년(757)에 두보가 반란군에게 함락된 장안에 홀로 잡혀 있으면서 지은 시이다. 두보는 이후 탈출하여 숙종(肅宗)의 행재소에 달려가 좌습유(左拾遺)의 관직에 올랐으나 지방관으로 좌천되고, 극심한 기근이 겹쳐 관직을 그만두었다. 그 후 사천성 성도에 가서 엄무(嚴武)의 도움으로 공부원외랑(工部員外郎)의 직에도 있었다. 완화계(浣花溪)에 초당을 세워 거처하며 많은 시를 지었다. 이후 여러 곳을 거쳐 고향으로 돌아가다가 동정호에서 죽었다. 그의 시는 인간사를 사실적으로 표현하여 시의 역사(詩史)라고도 하며, 특히 율시는 시상과 규칙적인 율격 등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그를 시성(詩聖)이라 하였다. 『두공부집』 20권에 1.400여 편의 시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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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시 가로쓰기) 시 제목(한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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