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있을진저 말씀 / 마태복음 23:1-39 요절 / 마태복음 23:13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오늘 말씀은 외식하는 지도자들의 결국이 어떻게 될 것인지 말씀해 주십니다. 이것은 바리새인들과 종교지도자들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21장 22장에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종교 지도자들은 어떠합니까? 또 서기관 처럼 말씀을 전하는 우리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까? 오늘 말씀은 외식에 대하여 철저히 책망하십니다. 무지하고 분별없는 종교지도자들에게 대하여 철저히 책망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화가 미칠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우리는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1절에 보면 이에 예수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이유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그리고 율법사들이 예수님을 죽이고자 모의하여 여러가지 논란이 되는 질문을 한 것을 두고 말씀하신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의도를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들은 알기 위해 질문을 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사망의 덫에 걸리도록 하기 위해 질문을 하였습니다. 매우 교묘한 질문이었습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부활이 있다는 증명을 해 보십시오. 가장 큰 율법이 무엇입니까? 등을 질문해서 어찌하든지 예수님이 질문의 낚싯바늘에 걸려 들어 난처하게 만들고 그래서 예수님으로 미친 선지자쯤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심하면 유대 사회에서 죽여 매장시키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선한 사역을 질투하여 도리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것과 관련하여 무리와 제자들에게 경계의 말씀을 들려 주셨습니다. 그것이 오늘 말씀입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자신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으면서 백성들에게는 온갖 율법을 지키도록 강요했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십니다.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의 삶을 본받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실제 율법의 무거운 짐을 하나도 지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은 지키지 않으면서 일반신도들에게는 안지키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협박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신앙생활을 매우 잘하는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사람들에게 보이고자 왼손과 이마에 붙이는 말씀을 크게 써서 붙였습니다. 또 옷 술도 크게 했습니다. 옛날 양반들이 폼내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겉으로만 서기관이지 속으로는 전혀 서기관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전혀 바리새인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부합니다.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아버지라는 칭호도 함부로 사용하지 말고 지도자라는 말도 함부로 사용하지 말라. 너희는 섬기는 자가 되도록 하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처럼 자신을 높이려 하지 말고 자신을 낮추는 자가 되라고 당부하십니다. 랍비가 되기 위해 나를 따르는 사람이 되지 말고 섬기는 사람이 되기 위해 나를 따르라는 말씀이셨습니다. 대단한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성경을 공부하고 신학을 하고 학위를 따느냐고 책망합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섬기는 사람이 되기 위함임을 예수님은 지금 제자들에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못된 예를 들어 당부하십니다. 우리가 큰 자가 되려면 반드시 자기를 낮추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13절 부터 시작되는 ‘화 있을진저’는 예수님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 대하여 얼마나 화가 나셨는지 보여 주시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백성들의 선생이요 지도자라고 일컬음 받는 이들이 도리어 나쁜 것만 다 보여주고 또 진실되지 못한 것을 가르치는 것을 볼 때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으셨습니다. 그들은 참 하나님을 가르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외식을 지적하셨습니다.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예수님이 그토록 미워하시는 외식이란 무엇입니까? 겉은 닦되 속은 닦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하는 신앙생활입니다. 신앙인인척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은 콩밭에 가 있습니다. 겉으로는 거룩한 옷을 입지만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는 거룩함을 내팽개치고 마음대로 행합니다. 거룩함을 사모하지 않고 쾌락을 사모합니다. 하나님 나라보다 이 세상의 물질을 백배 천배 더 사모합니다. 죽음을 두려워 하고 이 세상에서 천년 만년 살고자 온갖 탐욕을 부리는 것이 신앙인들에게는 외식입니다. 홀로 있을 때 기도하지 않고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에서 큰 소리로 폼 나게 기도하는 것을 외식이라고 합니다. 어찌하든지 높은직함을 얻고 어찌하든지 높은 자리에 앉고자 하는 것이 외식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철저히 외식을 주의하라고 경계하십니다. 예수님은 물질적인 십일조는 잘 하지만 율법의 중한 것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지키지 않는 것이 외식이라고 하셨습니다. 교회생활은 잘 하지만 사회생활을 영 엉망인 신자가 있다면 그것이 외식하는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약자에 대하여 정의와 긍휼을 베풀지 않고 하나님께 대하여 믿음을지키지 지키지 않는다면 그는 외식하는 신앙인입니다. 그는 신자가 아닙니다. 그는 화를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회칠한 무덤입니다. 겉은 아름다우나 그 속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 곧 탐욕과 방탕이 가득합니다. 외식은 참으로 악한 것입니다. 사람을 속이라고 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속이라고 하는 악한 행위입니다. 이것은 믿음도 아닙니다. 믿음이란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지 밖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외식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했을 뿐만 아니라 무엇이 참된 것인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이는 그 마음에 물질을 사모하는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6절에서 22절까지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눈먼 인도지라고 지적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눈이 멀어 분별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가르치기를 성전보다도 성전의 금을 더 중시했습니다. 그들의 말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이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반드시 지켜야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또 제단으로는 상관없지만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반드시 지키라고 했습니다.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는 그들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물질을 더 중시하는 그들의 무의식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꼴입니다. 마침내 구덩이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또 어떤 외식을 하였습니까? 29,30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그 비석을 꾸미며 말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예수님은 이 말을 하는 그들을 향해 이 말이 그들이 바로 선지자를 죽인 자의 후손임을 증명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선지자의 비석을 닦으면서 자신들은 마치 그런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인 것처럼 행하지만 실은 지금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를 죽으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의인을 사랑하는 척했지만 현실에서의 행위는 의인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마침내 잡아 죽이려 했습니다. 결국은 의인을 십자가에 매달아 그들의 조상의 죄의 분량을 더 채우게 되었습니다. 외식은 결국 하나님을 속이고 하나님의 사람을 핍박하고 죽이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에게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 사이에서 죽은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외로운 피가 다 그들에게 돌아가리라 하시면서 책망하시고 심판하셨습니다. 그들은 뱀과 독사의 새끼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이루시는 심판을 다 알 수 없지만 유대인들에 대한 역사적 심판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이 아닐 수 없을겁니다. 이 무서운 심판을 우리는 거저 인류 역사의 한 사건으로만 보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유대는 AD 70년 완전한 파멸을 당했고 또 20세기초에도 철저히 심판을 당했습니다. 무섭고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교훈이 우리에게도 적용되지 않도록 깨어 믿음으로 살아야겠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이 보시는 것처럼 행해야겠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회개치 않고 자리만 지키고자 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다시 한 번 더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외식과 형식주의를 회개하고 참 신앙인으로 살기를 촉구하셨습니다. 회개치 않을 때 무서운 심판이 임할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무리들과 제자들에게도 바른 신앙의 삶이 무엇인지도 가르쳐주셨습니다. 우리도 이 시대에 외식을 회개하고 참 믿음으로 살아야겠습니다.
요절을 읽고 마치겠습니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경주 UBF 이모세 2020. 10.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