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고 충성된 종말씀 / 마태복음 25:1-30요절 / 마태복음 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하고 오늘 말씀은 그날, 곧 마지막 날을 기다리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들려주시는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입니다. 이 비유의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이 우리들에게 들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마지막 날 곧 인자가 영광중에 오시는 그날을 기쁨과 즐거움으로 맞이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그 다시 오실 주님으로부터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받아야겠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고 말씀하시면서 그 대를 대비해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제자들과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본문에 보면 신랑이 신부 집으로 감으로 혼인잔치가 시작 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정말 개방된 사회입니다. 누가 누군지 금방 아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시대는 참 오래 전의 시대입니다. 그 때의 유대인의 결혼 풍습을 모르면 오늘 말씀을 혹 오해 할 수 있습니다. 예비 신랑 신부는 혼인이 정해지면 1년 뒤에 결혼식이 이루어 진다고 합니다. 그 사이에 신랑 집에서는 새 신랑신부를 위한 처소를 준비하고 신부는 신부수업을 받는다고 합니다. 1년의 기간이 정해지면 신랑이 신부 집으로 가고 마을 어귀에서 신랑이 왔음을 알리고 잔치가 시작된다고 합니다. 신부 집에서는 대략적인 결혼 잔치의 날짜는 알지만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본문에 나와는 열 처녀들이 새 신랑을 기다리는 장면은 바로 이런 상황을 이해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잔치가 끝나고 신부는 신랑 집에서 우리가 말하는 첫날 밤을 보내고 다시 신랑 집에서 혼인잔치를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두 번의 결혼 잔치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 전에 그렇게 했을 것 같습니다. 결혼이 그 만큼 주요하니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만은 세월이 지난 후에 유대 사회에 결혼 풍습이 생겼을 겁니다. 유대인의 결혼이라 하면 꼭 지붕 위의 바이올린이란 오래된 영화가 생각납니다. 변화는 시대에 결혼의 풍습도 바뀌는 바뀌는 그런 영화였습니다. 거의 100년 전의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결혼은 어쩌면 한 사람의 제 2의 탄생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중대한 사건을 예수님은 지금 비유의 말씀으로 사용하고 계십니다. 열 처녀 중 다섯 처녀는 신부의 신랑의 오는 시점을 나름대로 생각하고 등불을 예비했지만 신랑의 오는 시점은 그들의 생각과 다른 시점에 왔습니다. 결국 준비한 기름은 다 떨어져 신랑을 제대로 맞이할 수 없었고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가서 잔칫집에 돌아왔지만 잔칫집 문은 닫히고 말았습니다. 이 다섯 처녀는 그만 혼인 잔치에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멋진 이벤트가 없었던 시절에 중요한 행사에 참여하지 못한 것은 여간 큰 수치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혼인 잔치에 참여하여 큰 즐거움을 가지고 참여했지만 그들은 왕따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다른 슬기고운 다섯 처녀는 기름이 떨어질 것을 예상하여 다른 기름을 준비하여 등불을 예비하고 기다려 마침내 멀리서 오는 신랑을 맞이하여 함께 혼인잔치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이 다섯 처녀들은 참으로 지혜롭고 준비성이 철저했습니다. 신랑이 언제 올지 아무도 모름을 이 처녀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리 여분의 기름을 준비했습니다. 저녁에 올지 한 밤중에 올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이것이 그 시대의 풍습이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예비하는 사람이요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비유의 결론을 말씀하십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신랑의 아버지 외에는 혼인이 이루어 질 날짜를 알 지 못한다고 합니다. 요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요즈음 이런 식으로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는 이렇게 신랑을 맞이하여 혼인잔치를 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마지막 날도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치밀하게 생각하지 않고 준비하지 않을 때 천국의 문은 닫히고 천국잔치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번 문이 닫히면 울어도 소용없고 그 무엇을 하더라도 소용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깨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날과 그 시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기름이 우리들에게 무엇입니까? 미련한 다섯 처녀들은 기름을 예비하지 못해 큰 낭패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다섯 처녀는 등불의 기름이 떨어질 것을 대비해 기름을 예비했습니다. 그래서 밤늦게 온 신랑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에는 어떤 기름이 필요할까요? 말씀의 기름 기도의 기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말씀을 늘 가까이 한다면 분명 마지막 날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기도의 기름도 말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기도할 때 마지막 심판의 때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날을 어떻게 기다려야 할 지 가르쳐주시는 비유를 통해 다시 어떻게 깨어 있어야 하는 지 배우게 됩니다. 항상 마음 속에 심판의 임박성을 새기고 살아야겠습니다. 마냥 이 세상의 낙을 천년 만년 누리고 살 생각을 한다면 이는 어리석은 사람의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일이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살아야 함을 배웁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임을 믿습니다.
마지막 날에 살게 될 제자들에게 주신 두 번째 비유는 무엇입니까? 14절을 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누구나 그 소유가 많이 지기를 원합니다. 그 소유가 점점 줄어들기는 원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한 면도 없을 겁니다. 성경의 기본적인 개념 그러면서 중요한 개념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축복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달란트 비유를 말씀하신 이유는 마지막 시대를 사는 제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지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이제 심판의 날이 예비되었으니 산에나 들어가 숨어 그 날만을 기다리며 살아라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깨어 기다리되 주어진 사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특히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제자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사명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는 일은 열 두 제자 아니 모든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남겨진 반드시 감당해야 할 사명입니다.
사실 금 다섯 달란트는 어마어마한 액수의 금액입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금 한 달란트는 오늘날 약 20억 정도의 돈이라고 합니다. 다섯 달란트라면 100억원의 돈입니다. 그 주인이 타국으로 떠나면서 종들로 하여금 재산을 관리하도록 한 사람에게는 100억원을 또 한 사람에게는 40억을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에게는 20억을 맡겨주고 떠났습니다. 정말 많은 돈입니다. 오늘날에도 이 정도의 돈이라면 무엇이라도 하고 싶어지는 돈입니다. 첫번째 종은 100억원을 가지고 다시 100억을 벌어 200억을 만들어 그 주인에게 드렸습니다. 주인은 이 종을 매우 칭찬하였습니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두 번째 종도 마찬가지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는 주인으로부터 40억을 받아 두 배를 남겨 80억을 주인에게 보여드렸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종은 20억을 받아 땅에 감추고 두고 그 주인이 왔을 때 그렇게 하여 지금 20억을 그대로 잘 보관하여 드린다고 했습니다. 혹 잃어 주인의 미움을 살까봐서 그렇게 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주인은 이 사람에게 몹시 화를 냈습니다. 본전을 받으려면 차라리 은행에 맡겨 이자라도 받았으면 본전보다는 더 많은 돈을 불렸을 것이라고 이 사람을 매우 책망하였습니다. 무익한 종이라고 하였습니다. 첫 번째 두 번째 종은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하면서 자신의 즐거움에 함께 참여할 것이라는 약속을 주었지만 이 세번째 종은 무익한 종, 다시 말해 쓸모없는 종이라고 하면서 그 받은 달란트를 빼앗고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하였습니다. 그는 내어 쫓김을 당하였습니다. 그 직분을 빼앗기고 응어리 진 삶을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세 번째 종은 주어진 달란트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사용해 보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인의 마음을 전혀 이해 하려 않았습니다. 주인이 원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만 했습니다. 그는 주인에게는 매우 무익한 종이었고 결국 내침을 당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왜 이 비유의 말씀을 들려 주셨습니까? 돈을 많이 벌라는 말씀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복음을 장사하여 이익을 남기라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예수님께서 마지막 유언적인 말씀을 하셨지 않습니까?
비유를 통해 보면 최소한 우리들은 20억원 정도가 되는 재능을 선물받고 태어났습니다. 분명 최소한 일겁니다. 아마 그 이상의 이상 일겁니다. 이 재능을 사용하여 생명을 구원하는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최소한 두 배 이상의 이익을 남겨야 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더 복음을 팔아야겠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이유를 남겨 그 주인의 마음에 동참해야겠습니다. 그리고 그 주인의 즐거움에 동참해야겠습니다.
21 절 요절을 읽고 마치겠습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하고. 경주 UBF 이모세 2020. 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