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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18편(여호와의 종 다윗의 시:여호와께서 다윗을 그 모든 원수와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날에 다윗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아뢰어 이르되)
27:주께서 곤고한 백성은 구원하시고 교만한 눈은 낮추시리이다
문득 집도 일터도 없고 가진 것이라곤 빚과 원통함과 억울함이란 괴롭고 쓰디쓴 환란뿐인 곤고한 백성들이
다윗을 따르겠노라고 왔을 때 다윗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윗의 그늘 아래 피해 온 곤고한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신 여호와께서는 다윗에게 부어진 기름부음의 능력을 따라
일하시는데 그 결과 아굴람 공동체를 탄생시키십니다
더불어 여호와께 피해 온 그들의 생명과 생계를 모든 원수에게서 지켜주셨습니다
시편 18:27절을 묵상하려니 다윗의 최대 위기였던 시글락 사건을 다시한번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글락 사건이라 함은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해 블레셋 가드 왕의 허락을 받아 거주하던 이방 땅 시글락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곳에 거주한지 일 년 사 개월될 무렵 블레셋의 모든 군대들은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위해 이스르엘로 총집결하게 됩니다
이 때 블레셋 가드 왕은 다윗도 출전할 것을 요구하고 다윗은 노인들과 처자식들만 시글락에 두고 이스르엘로 떠납니다
그런데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블레셋 군대들이 다윗을 알아보고 출전불가를 주장하니 가드 왕도 어쩌지 못해
다윗을 돌려보냅니다. 아무리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어 준 블레셋 가드 왕일지라도 다윗이 어찌 조국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길 위에 서게 된 것일까? 라며 그를 정죄 비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허나 여호와께서는 블레셋 군대들을 통해 다윗이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하지 못하도록 피할 길을 내주십니다
나아가 시글락에 두고 온 처자식들과 노약자들이 아말렉의 포로로 끌려 갔다는 걸 안 순간, 꺼져가던 등불에서
아예 등불이 꺼져 흑암 상태가 되어버린 다윗의 모든 백성들을 위하여 다시 또 등불을 켜주시는
주의 무량한 호의를 발견합니다
이 주의 무량한 호의를 온 맘으로 영접하는 자는 아무리 흑암위에 앉아 있을지라도 다시 등불을 켜주시는 여호와를
선포함에 용맹할 것입니다
처자식을 잃어버린 모든 백성들이 너무 슬픈 나머지 돌로 다윗을 치고자 합니다
이 때 다윗의 두 아내도 포로로 끌려간 상태인데다가 단 한 사람도 자신에게 던지려는 돌을 막으려 하지 않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까지 해야만 하는 다윗의 심정이야말로 흑암 가운데 앉아 있는게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그럼에도 다윗은 한 두 개 돌이, 무더기 돌들로 사납게 날아 오려는 그 다급한 순간에 등불이 켜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성경은 그 순간을 다윗이 자기의 여호와 하나님을 힘입어 용기를 얻었다고 증거합니다(삼상30:6)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다윗은 여호와께서 등불을 켜심이여!
내 흑암을 밝히시리이다!라며 화답할 수 있는 걸까요?
"다윗이 아히멜렉의 아들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청컨대 에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비아달이 에봇을 다윗에게 가져오니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이 군대를 추격하면 내가 미치겠나이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미치고 정녕 도로 찾으리라"삼상:30:7~8
사울을 피해 도망가던 다윗을 때마다 시마다 돕는 자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놉 땅의 제사장 아히멜렉이 있었습니다
사울은 아히멜렉이 다윗을 도와주었다는 것에 격분하여 신하 도엑을 시켜 놉 땅의 모든 제사장들과 백성들을 도륙하게
되는데 이 때 판결흉패가 있는 에봇을 가지고 다윗에게 도망온 자가 바로 그의 아들 아비아달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다윗이 다급한 순간 자기에게 피하여 도움을 청할 때 우림(빛)과 둠밈(완전함)을 둔 판결흉패를
통해 응답을 주십니다. 이런즉 다윗이 능히 다음의 노래로 여호와께 화답하지 않겠습니까?
"28 주께서 나의 등불을 커심이여 여호와 내 하나님이 내 흑암을 밝히시리이다
29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에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 넘나이다
30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정미하니 저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시로다
31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뇨
32 이 하나님이 힘으로 내게 띠 띠우시며 내 길을 완전케 하시며
33 나의 발로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를 나의 높은 곳에 세우시며
34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니 내 팔이 놋화살을 당기도다
35 주께서 또 주의 구원하는 방패를 내게 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들고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
36 내 걸음을 넓게 하셨고 나로 실족지 않게하셨나이다
37 내가 내 원수를 따라 미치리니 저희가 망하기 전에는 돌이키지 아니하리이다
38 내가 저희를 쳐서 능히 일어나지 못하게 하리니 저희가 내 발 아래 엎드러지리이다
39 대저 주께서 나롤 전쟁케 하려고 능력으로 내게 띠 띠우사 나를 치는 자로 내게 굴복케 하셨나이다
40 주께서 또 내 원수들로 등을 내게로 행하게 하시고 나로 나를 미워하는 자를 끊어버리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것은 다윗을 모든 원수와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셨을 때 여호와께서는
모든 원수들과 달리 다윗을 극도로 괴롭혔던 사울 왕은 끝까지 그의 손에 붙혀주시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속에서 우리는 하나의 사상(진리)을 발견해야 할 것입니다
곧 거룩한 주로부터 기름부음 받은 남녀종들과 성도끼리는 아무리 극단의 상황일지라도 서로 사랑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고자 하나 사랑할 능력이 없을 때는 사랑할 수 없는 내 옛사람의 연약함과 죄성을 날마다 십자가에 못박아야
할 것입니다
현대교회는 다시한번 내(우리)죄와 연약함과 질병을 친히 당신 몸으로 걸머지고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우리의 옛사람을
완전히 박살내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안에서 다시 살아난 새사람에게 촛점을 맞추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다윗의 시글락 사건을 놓고 다윗이 먼저 여호와께 묻지 않았다며 섣불리 판단 비판하려는 마음이 든다면 우리들이 얼마나
애매모호한 불합리와 부조리와 선악간에 뒤엉킨 혼돈한 세상에 던져진 실존적 존재인가에도 눈을 떠야 할 것입니다
이것만큼 우리를 겸손하게 하는게 있을까 싶을정도로 우리들의 실존 자체는 불확실/불투명합니다
그럴지라도 무릇 성도는 시글락 사건처럼 아무리 혼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을지라도 그것을 통해서도
능히 등불을 켜주시는 주를 믿고 곤고한 백성들의 흑암을 내 흑암으로 껴안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윗은 백성들의 흑암을 내 흑암이라고 여기며 여호와께 나아간 자입니다
하여, 마침내 주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 흑암을 밝히 비추시리라고 용맹하게 노래하는 자가 된 것은
우리도 그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길을 걸으라는 것이 아닙니까?
여호와께서 반드시 네가 따라 잡을 것이며 정녕코 다 찾아 오리라는 말씀의 등불을 켜주시는 순간
흑암 위에 앉아 있던 모든 백성들이 다시 빛의 사자들이 되어 지도자 다윗과 함께 일어나 적군을 향하여
달리는 광경을 상상해 보셨습니까?
이런 장면처럼 저를 흥분시키는 것은 없지 않나 싶습니다
영적 전쟁하기엔 너무나 어린 우리 자녀들을 사단은 약육강식이란 현대판 아말렉이란 사회 시스템을 통해
포로로 사로잡아 간지 벌써 오래이지 않습니까?
그 불쌍한 영혼들을 찾아 오기 위해 영적 전쟁을 하고자 한다면 지금도 주께서는 반드시 찾아 올 수 있다는 말씀을 주십니다
그 말씀은 우리들의 싸늘한 가슴을 다시금 뛰게 만들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일어나 다시 적군을 향해 달려가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흥분을 시킵니다
오늘 제 가슴에 뿌리 깊이 내리고 싶은 말씀은 35절입니다
"35 주께서 또 주의 구원하는 방패를 내게 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들고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
무엇이 다윗을 크게 만듭니까?
여호와의 온유함이 아닙니까?
자신의 부족함과 실수를 충분히 인식함에도 다시 여호와께 피하는 다윗!
그런 다윗을 품기에 주의 온유함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다윗은 주의 온유함이 자기를 크게 하였다고 합니다.
아버지!
제게 구원의 투구와 믿음의 방패를 주시며 진리의 허리 띠로 띠를 띠우심은
당신의 은혜이나이다
말씀대로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주께 나가오니 당신의 온유함과 겸손함으로 항상 저를 가르치사
오늘도 놋화살을 당길 수 있는 영적 근육과 성령 충만을 허락하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마라나타!
첫댓글 아메~~~엔!
“여호와의 온유하심을
큰 소리로 찬양!!!”
아멘
감사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