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자연 그대로가 아니라 인간이 이루어 놓은 유형, 무형의 산물이다. 문화는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사람이 바라는 삶의 목적 또는 이상을 실현하고자 사회 구성원에 의하여 습득·공유·전달되는 행동 양식이나 생활양식이며, 의식주를 비롯하여 언어·풍습·종교·학문·예술·제도 등 물질적, 정신적 산물의 총체이다.
그런데 문화는 지역과 사회 구조, 역사에 따라 각기 다른 특성을 지닌다.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 문화라고 하면 지중해 지역에서 그리스 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특정한 문화를 일컫는 것이다. 곧, 시대와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른 특징을 지닌 매우 다양한 문화가 있었고, 우리가 사는 오늘날에도 다양한 문화가 지구상에서 공존하고 있다.
이와 같이 지역이나 시대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을 문화의 다양한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있는 곳은 어떤 형태로든 문화가 있다는 그 자체는 모든 인간 집단에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왜냐하면, 다른 동물과는 달리 인간만이 문화를 만들고 그것을 전승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문화는 한 방향으로만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제각기 독자적인 방향으로 발전한다. 모든 인간 사회는 나름의 사회 문화적 체계를 지니는데, 개개의 사회 문화적 체계는 그 구조와 조직이 각기 다르다. 이러한 차이는 자연환경의 차이에서 유래할 수 있고, 언어나 도구의 제작과 사용 등 활동의 형태가 다른 데에서 올 수도 있다. 그렇기에 문화적인 차이는 어느 것이 더 낫다거나 못하다고 말할 수 없다. 각각의 문화는 그런 모습을 지니게 된 나름의 환경과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각각의 문화는 그 문화의 환경과 전통 속에서 이해해야 하며, 각각의 문화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문화 상대주의라고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세상에는 옳은 것도 없고, 그른 것도 없다.”라는 식으로 문화 상대주의를 잘못 이해하기도 한다. 문화 상대주의는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자는 태도이지 인류의 보편 윤리적 판단이 아니다. 즉,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인류가 보편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윤리와 이상이라는 측면에서 문화를 바라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전족이 특정한 시대, 특정한 지역에서 문화적 전통으로 전해 내려온 것이라고 해서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족은 인간의 존엄성과 양성평등이라는 보편 윤리적 관점에서 볼 때 장려되어서는 안 될 문화이기 때문이다. 즉, 오늘날과 같은 다문화 시대를 사는 우리는 편견 없이 서로 이해하여 각 문화의 고유한 가치와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인간 존중, 자유와 책임, 민주주의, 연대 의식 등과 같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함께 추구해야 한다.
개인들 사이에는 수많은 차이점이 존재한다. 이러한 차이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에서 후천적으로 습득되는 것까지 다양하다. 그런데 각 개인이 지닌 무수한 차이들 가운데는 사회적으로 그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차이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것들도 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대부분의 전문 용어, 즉 자유(自由), 평등(平等), 권리(權利), 인권(人權), 정의(正義), 민주주의(民主主義), 시간(時間), 공간(空間), 의무(義務), 책임(責任), 도덕(道德), 원리(原理), 철학(哲學), 사회학(社會學), 미학(美學) 등은 모두 일본 지식인들이 서양 문화를 수용하면서 번역해서 처음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말들이다.
사회 범주들 간의 분화는 차이를 기반으로 성립되지만, 하나의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은 개인으로서 지닌 차이들이 무시되고 동일한 존재로 간주되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즉 사회 분화 현상에서 차이와 공통성에 대한 인식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관계이다.
사회분화의 양상은 문화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어떤 문화에서는 매우 큰 비중을 지니는 사회분화의 차원이 다른 문화에서는 별다른 중요성을 갖지 못하기도 한다. 특정한 차이에 따라 분화되는 사회범주들은 종종 권력(power), 위신(prestige), 재산(property), 쾌락(pleasure) 등 ‘4P’라고 불리는 것들을 누릴 수 있는 기회 역시 다르다.
일반적인 사회분화 양상이 모두 그렇지만, 사회 불평등의 구체적 모습, 즉 사회 불평등을 발생시키는 요인이라든가, 그러한 요인들이 작용해서 생겨난 사회 불평등의 지표, 또는 사회 불평등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등은 문화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현대 한국이나 서구 국가들을 포함해 근대 이후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사회 불평등의 양상을 설명할 때 사용되는 핵심 개념은 사회계급(social class)이나 카스트(caste)에 따른 불평등 체계와의 비교를 통해 잘 설명될 수 있다.
봉건 시대 유럽 사회의 영주․농노 구분이나 조선시대 한국 사회의 양반·중인·상민·천민 구분에 따른 사회 불평등 체계를 신분제도라고 한다. 신분 제도 하에서 사회범주의 분화와 불평등은 정치·법률적 장치들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
이상에서 살펴보면 것처럼 개인들 간의 차이를 기반으로 발생하는 사회분화는 매우 다양한 차원에서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인간 사회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나이에 따른 사회분화 하나만을 보더라도 그 구체적 양상은 문화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이러한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강조는, 인류학자들이 사회 불평등 문제에 대해서도 세상의 모든 것을 나름대로 일리가 있기 때문에 용인되어야 한다는 식의 윤리적 상대주의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예를 들어 조선시대의 반상(班常) 차별이라든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최근까지도 존재했던 극심한 인종차별처럼 특정한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에게 일반적으로 가해지는 명백한 차별 대우까지도 외부인이 비판해서는 안 되는 그 사회의 고유한 문화적 관행이라고 생각하는가? 또 빈곤의 문화나 회원전용 사교클럽과 같은 현상을 분석할 때도 인류학자들의 목적은 단지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관조하는 데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그런 연구 주제를 선정 하게 되는 근본적 이유가 바로 그 현상들이 극복되거나 개선되어야 할 ‘문제’라고 보는 인류학자들의 가치 의식 때문이다. 다만 인류학자들은 그러한 현상을 연구하면서 연구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처해 있는 사회문화적 맥락을 최대한 충실하게 고려하고, 그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런 현상이 어떻게 보여지는지에 대해서도 파악하여 그 현상의 발생 및 존속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인류학자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보다 현실적인 실천 방안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차이와 불평등 문제와 관련해 인류학의 문화상대주의로부터 도출해낼 수 있는 태도가 있다면 ‘차이는 존중하되 차별은 배격한다’일 것이다.
오늘날 우리 문화의 안정을 위해 좋지 않은 조짐으로 보이는 상업적·사회적·학문적 생활의 특징은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유행을 따르는’경향이다. 무언가 새롭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다른 어떤 가치보다는 중요하게 여겨진다. 특별한 범주에 속하는 골동품을 제외하고는 무엇이 혹은 누군가가 오래 되었다는 사실은 여전히 그것에 남아 있는 가치가 어느 정도인가를 막론하고 패품더미라는 이미지를 불러일으킨다. 이 모든 경향은 오늘날 사업이건 계획이건 우리 생활에서 나타나는 극도로 단계적인 스케줄과 일관되어 있다.
문화는 경제와 정치가 조우하는 장이며, 상부상조가 토대를 재생산하는 장이다. 그리고 오늘날 가장 치열한 문화적·정치적 전투가 벌어지는 장은 ‘대중문화’이다. 대중문화의 장은 그것을 완전 장악하려는 자본과 지배의 힘과 이에 대해 저항하는 힘의 대결로 소란스럽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민주주의 시대에, 그리고 특히 오늘날, 정치는 대중문화의 일종이다.
대중문화가 문화 전면에 대해 지배권을 갖고 있다는 것은, 자본주의의 논리가 문화적 생산과 유통, 수용의 모든 면에서 지배권을 행사한다는 뜻이고, 사실상 그 바깥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중문화 내부의 경쟁과 투쟁, 그리고 그 분화로부터 사고를 시작해야 한다.
대중성과 대중문화에 대한 개념은 다음과 같은 견지에서 보충되거나 교정되어야 한다.
첫째,‘대중’이라는 말은 어떤 소비자나 수용자, 사회 구성원들을 한꺼번에 양적으로 뭉뚱그리는 데에만 필요한 말이다. 물론 어떤 사회 구성원의 ‘평균’이나 평균적 경향은 실재하며, 이를 그려내는 일도 가능하다. 그러나 대중성이 자본주의하에 존재하는 어떤 보편적인 경향을 지시함에도 불구하고 그 실제적인 내포는 계속 변화해 온 역사성을 품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둘째, 더욱더 중요한 것은 ‘대중’속에 계급과 세대, 지역, 계층, 젠더 등의 다른 사회 구성원의 집합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문화의 주체로서 행위하는 것은 이 집합들이다. 게다가 집합으로 환원되지 않는 ‘개인들’이 있다. ‘대중’이라는 편한 말로 계급과 세대, 지역, 계층, 젠더와 ‘개인들’의 차이를 무화하면 안 된다. 사회과학에서조차, 양적으로 환원되는 대중에 대해 꺼리기에 질적 연구와 질적 자료가 중요시 된다. 그리고 한국의 ‘대중’은 1990년대 이후에 더욱 그 구성이 복잡해졌다. 수많은 마니아와 동호인 집단이 생겨나고 이전에 상상하기 어렵게 사회적 발언권을 키워 정치와 대중문화의 주체로 행동하고 있다.
문화는 시공간을 통해 다양한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러한 다양성은 인류를 구성하고 있는 집단과 사회의 독특하고도 다원적 정체성으로 구현된다. 자연에는 생물의 다양성이 요구되듯이, 인류에게는 교류와 혁신과 창조성의 원천으로서 문화의 다양성이 요구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문화 다양성은 인류의 공동 유산일 뿐만 아니라,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를 위해 인정되고 보장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점차 다양한 사회로 변화해 감에 따라, 공동생활의 의지뿐만 아니라 다원적이고 다양하고 역동적인 문화 정체성을 지닌 개인과 집단 사이의 조화로운 상호 작용이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 모든 시민을 포용하면서 모든 시민이 참여하는 정책은 사회적 통합과 시민 사회의 생명력과 평화를 보장한다.
따라서 문화 다원주의는 문화 다양성의 실현을 보장하는 정책의 표현이다. 민주적 체계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문화 다원주의는 문화 교류에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공공 생활을 지탱하는 창조적 역량을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
문화 다양성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선택 범위를 넓혀 준다. 문화 다양성은 발전의 토대로서 경제 성장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한층 더할 나위 없이 지적이고 감성적이며 윤리적이고 정신적인 삶을 실현해 낼 수 있는 수단으로 이해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