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기에 좋았더라(창1:1; 31)
사랑하는 청지기교회 성도여러분 그동안 평안하셨나요?
역사상 초유의 일들이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다.
전쟁 통에도 닫지 않았던 교회의 문을 닫아야 하는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포로로 잡혀가서 더 이상 성전이라곤 존재하지 않았던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속에 진정한 성전을 지으시고, 에스겔, 다니엘 과 같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들을 구별하여 새로운 시대를 여신 것을
그 끝에 예수님께서 오셨듯이
이제 우리의 삶은 더 이상 어디에도 안전한 곳은 없으며
일상적인 재난의 시간을 살아가게 된 이 때에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진정한 피난처가 되시고
마침내 이 끝에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우리의 고단한 몸과 마음을 위로하시고, 인내로 예배한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칭찬과 상 주실 것을 분명히 믿는다.
도대체 이 세상은 왜 이리 피폐하게 되었을까?
내가 어렸을 때에만 해도 물을 사먹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제 물은 사서 먹거나, 정수해서 마셔야 하는 것이 되었다.
공기가 탁해져 숨을 쉬지 못하게 될 것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는 일 년의 반 이상을 마스크를 끼고 살아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마치 재난 영화의 실제를 보는 듯 한 현실이 되었음은 웬 일인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마태복음 24장에서 예수님께서 친히 마지막 때에 대해서 이야기하신 것처럼
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8.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11.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12.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13.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즉 마지막 때의 현상인 것이다.
이 때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영적으로 잠들지 않고 깨어 있는 것이다.
바로 다음장 25장에 나와 있듯이 계속되는 예배와 경건생활을 통하여 기름 준비하는 것이고, 주신 달란트를 사용하여 작은 일에도 충성하는 것이고, 옆에 있는 이들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 세상은 마치 고삐 풀린 망아지, 브레이크 고장난 폭주기관차처럼 달려가는데 원래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상과 하나님의 의도는 어땠을까?
우리가 오늘로부터 시작하여 33일간 진행되게 되는 창세기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상에 대한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분명한 목적과 의도를 알게 해주는 말씀이다.
성경은 특별히 창세기는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고 장엄하게 시작되고 있다.
이 어마 어마한 선언이 우리 존재의 이유이다.
이 말씀 한 구절에 우주의 기원이 담겨 있고, 역사의 시작이 담겨 있다.
이 말씀이 믿어지느냐 유무에 따라 인생이 바뀐다.
이 말씀을 믿는 자들에게 세상은 살아야 될 목적과 가치가 있는 곳이다.
그러나 믿지 못하는 자들에게 세상은 재수 없이 우연하게 들어서게 된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잘 살아야 될 이유도 전혀 없다.
과연 세상이 그럴까? 그렇게 막 살아도 되는 곳일까?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완벽하고 조화롭게 만드셨다.
7번 거듭되는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씀이 증명한다.
(다 같이 옆에 사람들과 함께 외쳐 보겠다. 보시기에 좋았더라 / 또 상대방 눈을 보면서 이렇게 말해주라 너는 하나님 보시기에 참 좋아!)
이렇게 완벽하고 조화롭게 만드신 창조의 절정이 사람이다.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하듯이 창조의 마지막에 사람을 만드셨다.
하나님께서는 왜 그렇게 하셨을까?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누가 나를 닮나? 내 자식이 나를 닮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신 이유는 하나님의 소유를 함께 나누고, 누릴만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자녀로서 만드신 것이다.
이렇듯 하나님의 창조 이유는 사명 이전에 사랑이 핵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복을 주시며 교제하시고 그에 걸맞은 일도 맡기셨다.
28절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과의 교제라는 복을 먼저 허락하시고, 그 다음에 생육, 번성, 충만, 정복, 다스림의 사명도 맡기신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나?
사람들은 하나님을 배신하여 떠나갔다.
즉 하나님과의 교제는 생략하고 자신들의 이기심과 욕망에 따라 생육,번성,충만, 정복, 다스림이라는 일만 하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원래 하나님의 청지기로서의 관리라는 본분은 망각한 채
자신들이 주인인 양 무분별한 개발로 말미암은 자연파괴 도 그에 따르는 온난화와 이상기후
또 사람들을 사랑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약육강식에 따라 이기심을 채우는 착취의 대상으로 삼아 빈부격차로 말미암는 사회적인 재난 상황으로 치닫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분명히 알게 되었을 것이다. 세상은 다 연결되어 있으므로 나만 살려한다고 살아지는 것이 아니다. 옆에 있는 사람을 살려야 나도 사는 것이고, 옆에 있는 사람을 높여야 나도 높아지는 것이다.
그런데 거꾸로 가고 있는 이 재난과 같은 세상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이 말씀을 이렇게 비유하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해서 결혼을 약속했다.
그래서 집을 장만하고, 그 안에 인테리어를 아름답게 꾸미고, 가구와 티비 냉장고 등을 채우고, 꽃과 아름다운 화초들, 어항에는 이쁜 물고기들을 가져다 놓고 드디어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을 하고 집에서 알콩 달콩 신혼살림을 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뿔싸 이 여인이 그만 바람나서 집을 나가고 말았다.
그 아름답고 온기 가득했던 집은 더 이상 기쁨을 주지 못하고, 이제 의미가 없어져 버린 공간에 집에는 거미줄이 쳐지기 시작하고, 꽃과 화초는 물을 주지 못해 시들고, 물고기들은 죽어갔다.
바로 이것이 지금의 세상이란 것이다.
우리는 이번 창세기 믿음행전을 통해서 이를 회복하기를 원한다.
먼저 하나님과의 사랑을 회복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더불어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도 회복하기를 원한다.
예수님께서 이 근본적인 사망의 현장에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
완전히 절망적인 이 세상에 참 소망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 주 예수님께서 오셨다.
주님께서 하신 일은 마치 알렉산더나 나폴레옹 히틀러 등과 같이 정복하고 다스림으로 당신의 세상 왕국을 세우는 방식으로 일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해서 세워진 하나님의 나라는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무너진 하나님 사랑, 사람 사랑을 회복하는 방식으로 아주 작은 생명의 씨앗을 심으시는 것으로 일하셨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던 초라하고 거친 시골 사람들을 부르셔서 제자라고 칭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우리도 그렇게 부르신줄 믿는다.
이 세상에 학식으로나, 부로나 훨씬 잘난 사람들도 많겠지만 하나님은 우리같은 연약한자를 들어서 강한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분이시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셔서 그들을 세우시는 방식으로 일하셨다.
막3: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15.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순서가 제일 먼저가 함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냐 예배다.
교회 사역의 제일 일순위가 있다면 단연 예배다.
우린 예배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리고 두 번째가 전도 즉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 번째가 귀신을 내쫓아 결국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고 이루게 하는 것이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인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칭하셨던 아름다운 세상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망각하고 하나님을 배신하여 자신들의 욕망만 붙잡은 사람들에 의하여 망가지게된 것이다.
이 세상에 지으신 모든 것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데
인간들만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배신하고 하나님 닮아 하나님과 함께 누리자고 주신 자유의지를 가지고 나의 욕망만 채우고, 불순종을 일삼았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태에서 치유되고 회복하여 하나님께서 원래 우리를 지으셨던 그 형상 그 모습대로 보기에 좋다는 칭찬을 들으려면 어떻게 하여야 하겠는가?
이 역전된 우선순위를 다시 바로잡아서
먼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그 다음에 그 사랑을 가지고 내게 맡겨주신 일도 잘 감당함으로 치유되고 회복되게 될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 죄악을 회개하고 다시 겸손과 순종의 자리에 서게 될 때에 그렇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현재 우리를 보시면서도 보시기에 좋다고 말씀하실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또한 사명도 맡겨주신 청지기로서
특별히 전 세계가 같이 신음하는 중차대한 이 때에 치유와 회복의 기도로 함께하길 원한다.
믿는 자의 중요한 사명 중에 하나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이 기간에 하는 헌금 중의 일부는 소외된 이웃들을 돌아보고 민족의 아픔에 동참하는데 쓰여야 될 줄로 믿는다.
특별히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은 지구적 재난과 이단, 사이비의 득세를 바라보며 회개하며 기도해야 하겠다.
그들을 탓하기 전에 우리가 하나님을 더 뜨겁게 사랑하지 못했고, 이웃을 뜨겁게 사랑하지 못했고, 진리에 목마르지 않았기에 생긴 일이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바라보시며 좋다고 말씀하실 때까지 중보의 손을 놓지 말아야 하겠다.
주님 우리의 죄악을 용서하시고 이 땅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첫댓글 79장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관찰) 1. 하나님은 무엇을 보시며 좋았다고 말씀하시나요?(31절)
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해석) 2. 6하 원칙에 의거해서 하나님의 창조를 묘사해 보세요.
누가: 하나님이, 언제: 태초에, 어디서: 하나님의 자리에서 , 무엇을: 천지를, 어떻게: 말씀으로 창조하심, 왜: 하나님의 사랑과 사명을 나누는, 즉 교제하는 자녀 삼으시려고
(적용) 3. 하나님께서 나를 보시며 좋다고 말씀하시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며 보시기에 좋았던 이유는 우주 만물이 말씀대로 순종하여 질서와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당연히 하나님 마음에 근심을 드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려고 노력하고, 다음에는 그 말씀에 순종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하나님께 기쁨을 드릴 것입니다.
면 풍부해도 빈곤해도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바른 믿음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