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보리심 발원
신묘하신 대비주의 법문을 듣고
찰나에 보리의 꽃이 활짝 피어
불퇴전의 지위를 증득하신 관세음보살님처럼
저희들의 보리심도 그와같이 도약하기를 발원합니다.
-4072일의 붓다로 살자-
대승불교가 가지고 있는 가치 중 하나는
깨달음의 여정을 지도화하여 공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자칫 부작용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데,
그것은 얻지 못한 이가 스스로 얻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큰 이득이 되기도 하는데,
수행자가 겪게 될 여정과 주의점 등을 미리 알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이기 때문이죠.
대승불교에서 이렇듯 깨달음과 그 과정을 논할 때
흔히 불자들은 이런 생각을 하고는 합니다.
'이것은 나중 일이야! 지금의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아!'
대승불자의 공통서원인 사홍서원의 첫 구절에서 말하는 중생은 바로 이 마음입니다.
흔히들 중생심이라고 표현하는 이 마음은 스스로를 너무나도 과소평가합니다.
과대평가하는 것 보다 낳다구요?
과대나 과소나... 둘 다 고통을 낳는 마음일 뿐입니다.
스스로를 중생으로 여겨
수행과 행복을 뒤로 미루는 것을 합리화하는 이 마음은
대승불자의 수행을 방해하는 큰 독입니다.
언제든 작은 이해와 깨달음 그리고 큰 깨침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마치 죽음이 삶의 어느순간에 찾아오든 완벽한 순간이듯 말입니다.
죽는데 순서 없는 것처럼
깨치는데도 순서 없습니다.
그러니 스스로를 너무 과소평가하지 마세요.
스스로의 마음에게 쪼그라 들라고, 주눅들라고 강요하지 마세요.
대승불자는 보리심을 일으킨 붓다의 고귀한 아들이고,
그렇다면 그 가문에 어울리게 어깨를 피고 당당해지세요.
부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중생은 이미 모두 부처님입니다!"
중생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는 과정이 바로 대승불자의 수행입니다.
스스로 중생이라고 주장하는 중생심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미 부처님인 금강심의 논쟁과정인 것이죠.
다른 누구에게도 증명할 이유는 없습니다.
다른 누구에게도 잘 보일 필요 없습니다.
다른 누구를 구할 것도 없습니다.
오직 스스로의 중생심을 붓다의 마음이 설득해낼 때
그 마음을 완전히 정복 받은 고귀한 용자인 붓다가 되는 것이고,
이 과정에서 다른 이들을 구하고, 다른 이들에게 사랑 받으며, 다른 이들에게 증명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일어날 일일 뿐입니다.
그냥 1+1이죠.
오늘도 전 스스로의 중생심을 조복받기 위해 이 글을 써봅니다.
나른한 오후 커피 한잔과 함께 번뇌를 깨우기 위한 이 시간이 좋습니다.
깨어난 정신으로 다시 가행정진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함께 해요 행복의 길.
첫댓글 감사드립니다 _()()()_
밝게 깨어있기 나무아미타불
스님과 함께 할 수 있어 감사드립니다_()()()_
밝게 깨어있기 나무아미타불
감사드립니다
스님
밝게 깨어있기
나무아미타불.()()().
스님
감사드립니다
밝게 깨어있기
나무아미타불
_()()()_
밝게 깨어있기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