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듯,
눈 가려진 것을 치워내 보여주듯,
길 잃고 헤매는 자에게 방향을 알려주듯,
캄캄하게 어두운 곳에서 등불을 건네주듯,
부처님께서는 여러 가지 자비로운 방편으로
저희에게 행복의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윤회의 감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저희들은
이 목숨이 다 할 때가지 오직 삼보전에 귀의합니다.
거룩하신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지혜로운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청정하신 수행승의 참 모임에 귀의합니다.
-4087일의 붓다로 살자-
한 청년 법우가 묻습니다.
"스님, 부처님의 제자들이 부처님을 믿는다면서 왜 의심을 하나요?"
의심은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알고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스스로 모른다는 것을 알면
스승이 내가 모르는 지혜를 통해 행동한다는 것을 알기에 의심이 없습니다.
오히려 의문이 생길 뿐이죠.
지혜를 알고 싶으니까요.
하지만 스스로 안다는 생각이 있으면
스승이 자신의 앎과 다른 말을 할 때 의심이 생깁니다.
본능적으로 스승이 틀리고 자신이 맞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스승은 우리들과 다른 의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완전히 금강의 마음에 도달한 스승이라면
정말 부처님의 표현처럼 180도 완전히 다른 의식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스스로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스승의 의견을 의심없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죠.
사.사.건.건.
자신의 망상과 스승의 지혜가 반대처럼 느껴질테니까요.
그렇기에 불교의 진수는
믿음 없이는 결코 전달될 수 없습니다.
불교의 진수는
중생의 눈을 완전히 거꾸로 바꾸는 작업입니다.
끝날때까지 자아와의 끝 없는 충돌이 예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과연 이런 과정을
믿음의 요소 없이 견뎌낼 수 있을까요?
과연 이런 과정을
의심의 철가시를 품에 안은채 건너갈 수 있을까요?
부처님을 나의 가장 높은 곳에 모시고,
가르침을 눈으로 삼으며,
스님들과 스승을 가슴에 품고 사랑하며,
귀의하는 마음으로
헌신하고, 공양할 때
우리는 거꾸로 뒤짚어진 견해를 바로잡을 수 있는 가능성이 생깁니다.
스승의 자비로운 지혜의 한 마디 없이는
어쩌면 무한한 생을 살더라도
우리는 진리의 의식을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주 삼보를 생각하고,
자주 삼보를 사유하며,
자주 삼보에 감탄해보세요.
또한 자주 삼보를 공경하고,
자주 삼보에 예를 갖추며,
삼보에 헌신하고,
삼보에 공양해보세요.
이 삼귀의의 신심과 신행의 실천이
불자의 생명력을 건강하게 가꾸는 기본이 되니까요.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불자로써의 생명력이 건강해지는 것도 또한 중요합니다.
부디 건강해지시길_()_
첫댓글 오늘도 저의 하루를 밝혀 주시는 스님의 가르침에 감사합니다.
거룩하신 삼보에 귀의합니다.
밝게 깨어 있기 나무아미타불🙏🙏🙏
스님
금강의 가르침..
보석처럼 가슴에 새기어집니다_()()()_
밝게 깨어있기 나무아미타불
거룩하신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지혜로운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청정하신 수행승의 참 모임에 귀의합니다.
고귀한 법문 항상 두손모아 감사드립니다()()()
몸과 마음에 잘 새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행복한 저녁 보내세요~♡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밝게 깨어있기 나무아미타불
삼귀의의 신심과 신행의 실천으로 생명력있는 불자가 되리라 마음에 새겨봅니다.
감사합니다.
밝게 깨어있기 나무아미타불_()_
밝게 깨어있기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밝게 깨어있기 나무아미타불
_()_
깨어있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