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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치유책이 필요한 이유는, 인간이 불안할 정도로 불합리한 존재라 흥미에 따라서 행동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많은 정보도 인간이 거부하면 무용지물일 뿐이다. 인간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해로운 결과를 가져다주는 행동을 정당화하는 기발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 인간은 자신의 못된 행동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도 거짓말을 하지만, 스스로에게 더욱 흥미롭고 강렬한 거짓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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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화란 용납할 수 있는 동기를 찾아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자기기만적인 시도이다. 다른 중요한 변명으로는 전위(displacement)가 있다. 우리는 아버지를 미워해서는 안 된다고 알고있다. 마음은 우리로 하여금 아버지 대신 아버지를 닮은 직장 상사를 미워하라고 한다. 퇴행(regression)도 있다. 우리는 자신의 현재 처지에 대처할 수 없어지면 정서적으로 낮은 성장 단계로 되돌아간다. 마치 집에 동생이 태어나자 다시 오줌싸개가 돼 침대에 지도를 그리는 아이처럼 말이다. 반동 형성(reaction formation)도 있다. 자신의 생각과 정반대되는 행동을 의식적으로 밖으로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반동은 따돌림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동성애적 성향을 숨기고 소리 높여 동성애를 혐오하는 사람에게서 눈에 띄게 발견된다.
로플린의 목록에 있는 자기변명 중 사회적 치유책과 가장 유관한 세 가지는 우리에게 친숙한 합리화, 퇴행, 부정(denial)이다. 이들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퇴행은 용납할 수 없는 정보를 의식에서 무의식으로 쫓아내는 것이다. 이를테면 실수로 집에 불을 지른 아이는 나중에 이 사건을 기억하지 못한다. 부정은 의식이 용납할 수 없는 정보는 없다고 주장하면서 그런 정보를 무리하게 처리해 버리려고 할 때 발생한다. 예컨대, ‘내 음주 생활에는 문제가 없어’라든지 ‘나는 원하면 내일 당장 담배를 끊을 수 있어’등이 그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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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로운 행동에 대한 정당화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극단적인 경우, 자신의 행동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이나 무엇으로부터 자신을 보호막으로 휘감게 된다. 그런 작용 중 하나가 인지부조화라 불리는 현상이다.
사회심리학자인 리언 페스팅거와 두 명의 동료 연구자들은 1954년 12월 21일에 지구에 홍수가 몰아닥칠 것이라고 예언하는 종말론 교파에 잠입했다. 교파의 리더인 도로시 마틴이라는 여성은 교인들에게, 홍수가 있기 전날 자정에 비행접시가 날아와 그들을 구원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클라리온이라는 행성으로부터 받았다고 말했다. 그들은 교외에 있는 그녀의 집 거실에서 만나 구원자가 오기를 기다렸다.
자정이 지났다. 우주선은 코빼기도 안 보였다. 세상의 종말은 오지 않았다. 기다리기 시작한 지 다섯 시간이 넘었을 때, 교파의 리더는 자신의 신앙심이 세상을 구했다는 새로운 계시를 받았다고 했다.
여러분은 마틴이 틀렸다는 사실이 증명되었으므로 교인들이 마틴에게서 등을 돌렸을 거라 생각할 것이다. 우주선이 올 것이라는 기대에 차서 직장을 그만두고, 재산을 기부하고, 가족들까지 데리고 왔기에 마틴에 대한 분노를 드러냈을 거라고, 그러나 페스팅거는 완전히 다른 예측을 했다. 예언의 샐피가 교인들의 신앙심을 강하게 만들 것이라는.
페스팅거가 옳았다. 단 두 명의 교인만이 마틴을 떠났다. 나머지 교인들은 남았을 뿐 아니라 더 활발하게 신앙생활을 펼쳐 나갔다. 이 교파는 예전에는 다른 사람을 개종시켜 본 적이 없었지만, 그날 이후로는 거리로 나가 신문사들과 접촉하며 새로운 신도들을 포섭하려 애썼다. 가장 열정적인 마틴의 추종자인 의사가 말했다. “저는 거의 모든 것을 포기도 해봤고, 모든 관계를 끊기도 해봤고, 배수진을 치기도 했고, 세상을 등지기도 했어요. 하지만 저는 의심할 수가 없었어요. 주님을 믿어야 했어요.”
페스팅거는 우리가 살펴본 바를 ‘인지부조화’라고 명명했다. 인간은 머릿속에 동시에 두 개의 상반된 생각을 품으면 불편하다고 느끼므로, 두 가지 생각이 양립할 수 있도록 자신의 신념을 바꾼다. 그런 신념이 강해질수록 그것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모든 것을 바치며, 다른 모든 정보들도 그런 신념과 부합되게 해석한다.
사회심리학자인 엘리엇 애런슨은 진정으로 상충하는 것은 신념과 신념이 아니라 신념과 생명과도 같은 자아상이라고 주장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진실하다고 생각하기를 원함에도 불구하고 거짓에 대한 구실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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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기만-예컨대 싸움을 회피하기 위해 달려들어 겁을 주는 행위-에 능한 동물은 먹이를 더 많이 구하고 교미도 더 많이 한다. 그러나 자기기만은 쉽지 않다. 포커꾼들이면 다 알고 있듯이, 사람들은 허세를 부릴 때 무의식적으로 탁자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는 행동등을 통해 불안을 드러낸다. 하지만 불안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도 있는데 자신의 자기기만적 행동을 진실된 행동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트리버스에 따르면 자기기만은 큰 장점이 될 수 있다. 그는 두 동물이 싸우거나 교미하기 전에 상대를 살필 때, 상대 동물의 자기기만적 자신감이나 의지를 보고 기가 꺾이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고 전한다. 자신감과 의지는 ‘선택적 망각 덕분에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선택적 자기기만은 자신감을 부풀리는 데도 효과적이다. 그 이유는 잠재적인 성 상대가 자신감이 많은 상대를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감이 높다는 것을 조금만 보여도 직장에서 성공하거나 성관계를 맺을 확률이 높아진다.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올바른 전략을 선택했다는 -하지만 잘못된- 느낌을 받으면, 무엇을 추구하더라도 더 열심히 노력하고 끈기를 발휘한다. 자기기만을 통해 실제로 고통과 스트레스를 적게 느낀다. 이런 느낌은 잘못된 느낌이라 할지라도 도움이 된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자신을 평균 미만으로 생각하는 아이가 없다. 트리버스에 따르면 학자들도 그렇다. 무려 94퍼센트의 학자들이, 자신이 상위 50퍼센트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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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화 말고도 사회적 치유책에 중요한 정교한 기법이 있다. 정체성 마케팅이다. 예를 들면 포르셰 자동차가 아니라 포르셰 운전자가 누리는 이미지를 판매하는 기법이다. 정체성 마케팅은 명품 업계와 개인용품 업계에서는 아주 흔한 일이다. 많은 자동차 광고들이 자동차 옆에 서 있는 아름다운 여성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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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보기엔 정체성 마케팅은 사회적 치유책을 실현하는 데 효과가 크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람들이 바라는 정체성은 다양하기 때문에, 정체성 마케팅은 행동 변화에 효과적이다. 상업적인 정체성 마케팅은 모든 사람들이 부유하고 아름답기를 원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다. 그러나 사회적 치유책은 더 깊이 들어간다. 부와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 저 너머에는 동료들과 유대 관계를 형성하고자 하는 욕구, 그들의 안정을 받고자 하는 욕구, 그들의 존중과 존경을 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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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테팅 담당자들이 요즘 부쩍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입소문 마케팅이다.
입소문 마케팅 전문가들은 소비자들이 단순하게 제품이 좋다고 친구들에게 문자나 전화나 이메일을 하지는 않는다고, 개인의 정체성에 영향을 미쳐야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말한다.
나 자신이 멋져 보이니까요. 즉 과시의 문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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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주제가 아니라 개인적인 감정의 문제, ‘어떻게 하면 멋져 보일 수 있느냐’가 중요하게 된 거예요.
자기들도 제품을 만드는 일원이라고 주장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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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신의 일부를 쏟아부은 활동에 더 많은 열정을 기울인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인지부조화 효과로, 자신이 ㄷㄴ이나 시간을 투자한 단체를 더 신뢰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사람들은 그런 활동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과도 접촉하게 된다. 러브라이프의 그라운드브레이커들은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이 건강한 생활에 대한 자신들의 결의를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알코올중독자 협회 역시 그런 사실을 증명하는 성공적인 사례다. 경력이 많은 회원들이 신규 회원들을 도우면서 스스로의 금주 결의를 다질 수 있고, 심지어 프로그램을 후원하는 사람들에게까지 그런 효과를 발휘함이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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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마케팅 전략들이 지닌 공통점은, 자회사의 제품을 구매하면 또래 집단으로부터 존중받고 열렬한 환영을 받게 된다는 발상을 판매한다는 점이다. 앤디 세르노비츠가 말했다. “사람들을 어떤 행사에 모이게 하려면, 행사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를 도와주는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마케팅 담당자와 행사 주최자들은 많지 않습니다.” 행동 변화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들보다 더 그런 고민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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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동료와의 관계이며 그것은 변화를 지휘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관계의 힘은 강력할 뿐 아니라 재주도 많다. 우리를 고독한 삶이나 건강한 삶으로 이끌 수 있고, 우리를 범죄자로 만들거나 건전한 시민이 되게 할 수 있다. 텔레비전에 파묻혀 살게 할 수 있고, 깨어 있는 사고를 갖게 할 수 있다. 이런 사회적 치유책은 제대로 작동하면, 행동의 문제와 전혀 상관 없어 보이는 문제까지 해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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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을 마칠 무렵 가장 중요한 사실을 알아냈다. 중국계 학생들은 일부 시간은 혼자 공부하지만 밤에는 모여서 동급생들과 같이 공부한다는 사실이었다. 반면 흑인 학생들은 혼자서만 공부하고 학교에서의 삶과 사회적 삶을 완전히 구분했다.
상이한 양상을 보이는 건 중국계 학생들은 집단을 중시하는 문화에서 자랐기 때문일 수 있다. 아니면 흑인 학생들은 혼자 공부하는데 익숙하기 때문일 수 있다. 버클리에 다니는 많은 흑인들은 고등학교 시절 외톨이였다. 백인 고등학교를 다니는 드문 흑인 학생이거나, 공부가 ‘백인 행세’로 비쳐지는 소수민족 중심 고등학교에서 몇 안되는 우수생이었다. 그런 학생들은 자신과 집단을 분리해야 했다. 그들은 자신만의 노력으로 버클리에 합격했고, 외부의 도움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못 미더워했다.
이런 일상적인 공부 습관의 차이가 매우 중대한 결과의 차이를 빚었다.
중국계 학생들은 스터디 그룹을 통해 수학을 효율적으로 배웠고, 서로 생각을 나눴다. 또한 질문도 많이 했다. 하지만 흑인 학생들은 40명의 토론 분반 멤버들 앞에서 바보처럼 보일까 봐 질문하지 않았고, 조교들에게만 질문했다. 그런 방법으로 공부를 한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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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차 고메즈가 말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신진 학자 프로그램을 통해 성적이 향상되지만, 특히 소수민족 학생들이 훨씬 좋아집니다.” 그녀는 트레이스먼이 운영하는 프로그램의 학생이었고, 후에 수학 박사 학위를 받아 위스콘신 주립대학교에서 교수로 일하며 자신이 직접 2009년까지 신진 학자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소수민족 학생들은 대학에 들어오면 자신을 고립시키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스터디 그룹을 만들 가능성이 적어요. 고등학교 시절 혼자 공부해서 성적을 잘 받았고, 그런 공부 방식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죠. 또한 백인 환경에서 스터디 그룹을 만들면 환영받지 못할 거라는 생각도 작용할 겁니다. 그들은 상담 시간에 교수나 조교를 찾아가려 하지 않아요. 저도 그랬기에 그들의 생각을 알아요. 소수민족 학생들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려 하지 않아요. 도움을 청하면 바보로 여겨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죠. 그래서 본인이 닥친 상황을 타인이 눈치채는 것조차 원하지 않아요. 하지만 신진 학자 플고그램은 모든 학생들에게 질문을 하라고 요구해요. 학생들은 조교와 교수를 찾아가 질문하기 쉬워지고, 질문을 하면 똑똑하다는 말을 들어요. 게다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문제는 원래 어려운 문제라는 걸 알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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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치료’라는 낙인이 찍히면 학생들의 성적이 나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치료 교육이 효과가 없다면 다른 무언가가 그를 대신해야 한다. 주요 교과 과정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실력이 없고 준비도 안 된 학생들을 그런 수업에 넣었다간, 그들은 살아남지 못한다. 해결책은 치료 교육보다 독창적인 것이어야 한다. 연구자들은 머리와 공부만이 대학에서의 성공을 결정짓는 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거듭 증명하고 있다. 대학에서의 성공에는 많은 요인들이 작용한다. 좋은 공부 습관, 시간 관리 능력, 대학의 일원으로 느끼게 만드는 사회적 모임, 교과목의 방향을 잡아 나가는 요령을 제공해 주는 네트워크, 어느 정도의 행복감 등이 그것이다. 혼자 공부하는 데 익숙하고, 교수를 멀리하고, 유행에 민감한 또래 네트워크가 없는 흑인 학생들은 아무리 똑똑하고 공부를 열심히 해도 낙제해서 대학에서 쫓겨날 수 있다. 그런 학생들에게는 치료 교육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치유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