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흥미있는 영화관련 기사를 읽었다.‘오마이뉴스’ 김형욱 기자가 쓴 짐 자무시의 2017년도 작품 <패터슨>에 대한 글이었다. <패터슨>은 버스 운전기사가 직업인 아마추어 시인의 이야기다. 그의 아내 역시 아마추어 예술가인데, 그림도 그리고 기타를 치는 평범한 주부이다.
아마추어 예술가는 생활이 우선되기 때문에 급한 일이 생기면 시고 미술이고간에 우선 목전의 급한 일부터 해결해야한다. 그런 후 한가할 때 다시 예술활동을 한다. 그러니까 첫째는 먹고사는 생활이고 예술활동은 부차적이라는 말이 되겠다. 아마추어 시인, 소설가, 화가, 사진가 등등 뭐 우리 주변 어데서고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 아닌가?
패터슨 부부의 일상 역시 우리의 평범한 일상과 하등 다를바 없다. 밥먹고 출근해서 버스 운전하고, 운전하는 틈틈이 시상에 잠기거나 남의 이야기를 듣곤한다. 그러고 다시 퇴근해서 아내와 함께 외출도 하고, 짬이 나면 술도 한 잔 마시고 뭐 그런 식이다. 그러니 이들의 생활이 전혀 특별할게 없다.
나의 하루는 어떠한가. 7시쯤 세수하고 아내가 준비한 고시텔생들 식사를 식당으로 나른다. 8시30분쯤 식당의 밥통과 국통을 들고 집으로 온다. 그런후 아내와 식사를 하고 함께 커피를 마신다. 커피 한 잔하면서 이런얘기 저런얘기를 좀 나누다 9시쯤이면 독서실 사무실로 간다. 오전 근무가 시작된다. 뭐 근무라고해봐야 여기저기 청소 좀 하고, 독서실 둘러보는정도다. 그러다 점심때가 되면 다시 국통 밥통 식당으로 나르고, 아들과 교대한다. 오후는 낮잠, 트럼펫 연습 잠깐 하고나면 오후 6시가 된다. 아들과 교대하고 저녁근무가 시작된다. 도중에 저녁식사하고 다시 사무실 근무, 11시쯤에 교대하고 집으로와서 세수하고 테레비 보다가 12시쯤 잠이든다.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한 달 후도 전혀 달라지지 않을 것 같은 반복된 생활패턴이다. 시시하기 짝이없는, 누구나 할법한 평범한 생활의 연속아닌가? 다만 하나 남들과 다른게 있다면 나는 사무실에 있을때나 집에 있을때나 어김없이 책을 손에 들고 있고, 언제든 글쓰기를 하려고 한다. 내가 읽는 책은 대부분 소설류인데, 머릿속은 하루종일 작품속 등장인물이 맴돈다. 다음은 어떤 책을 읽지? 또 다음은.....식으로 생각한다. 와중에 하루 한 번 반드시 트럼펫 연습을 한다.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려면 단 하루도 연습을 거르면 안 된다.
그러니까 나는 하루종일 일상은 일상대로 치루면서 다른 한 편으로 문학과 음악, 영화를 생각한다. 어찌생각하면 현실보다 예술을 생각하는 시간이 더 많은것 같다. 엊그제 아내에게 그랬다. 나는 몸이 하나지만 정확히 두 개로 분리되어있는 것 같아. 하나는 현실, 하나는 예술. 그래서 양쪽을 보면서 생활을 하는데, 일상을 하는 순간순간에도 어김없이 문학과 영화, 음악을 한시도 잊은적 없거든.
나는 아직 이 영화를 안 봤으니 지금부터는 ‘오마이뉴스’ 기자의 글 <일상이 예술로, 짐 자무쉬 감독만 줄 수 있는 특별함>으로 대신하겠다.
“패터슨도 다를 바 없겠지만 그에겐 '시'가 있다. 하루 일과의 순간순간, 행간과 자간을 촘촘히 잇는 시상이 그의 하루를 풍성하게 한다, 특별하게 한다. 그가 갖고 있는 모든 것, 그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이 시가 되기에 그 특별함은 다시 평범함으로 치환된다. 삶이 예술이 되는 순간이다.
나에게도 패터슨의 시와 같은 게 있다. 책과 영화, 내 평범한 삶을 특별하게 해주는 것들이다. 그것들 또한 어느새 내 삶의 패턴 안에 자리잡아 평범함의 하나가 되었지만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특별할 것이다. 패터슨도 그러할 테고, 영화에서 패터슨이 존경하는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도 그러했을 테다. 그는 평생 의사로 일하면서 역시 평생 시를 썼다.
버스 운전기사가 시를 쓴다는 설정이지만 너무나 현실적인 이 영화에서도 영화적인 부분이 있다. 심지어 패터슨이 존경하는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가 상징주의를 배제한 객관주의로 명성을 떨친 와중에도 말이다. 패터슨이라는 캐릭터를 조금만 더 뜯어보면 '시인'이 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는 눈을 뜨는 그 순간부터 정확히 정해진 대로의 하루를 살아간다. 전날 아내가 챙겨둔 옷을 입고, 매일 똑같은 아침을 먹고, 산책길 같은 출근길을 걸어가며, 완벽히 정해진 행선지를 돌고 돌며, 아내가 챙겨준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고, 다시 산책길 같은 퇴근길을 걸어오고, 아내와 얘기하는 시간을 갖고, 반려견과 저녁 산책을 나가고, 바에 가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맥주를 마신다.
거기에 루틴 안에서 생각할 어떠한 거리도 없다. 그의 몸은 정해진 대로 움직이며 그의 정신은 모두 '시'로 향해 있는 것이다. 특히 그는 버스를 운전하며 눈으로는 매순간 똑같은 듯하지만 완전히 다른 풍경을 보고, 귀로는 그가 천착하는 일상의 언어로 된 대화들을 들을 수 있다.
패터슨과 로라가 보여주는 아마추어 예술가로의 일상성이 우리에게 힘을 주고 격려와 함께 위로를 보내는 것 같다. 비록 패터슨의 하루가 최적의 조건으로 꽉 짜여 있다고 해도, 우리 손에는 그런 조건이 쥐어지지 않는다 해도, 예술은 일상과 함께 하는 것이기에 일상에서 비롯되는 것이기에 누구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패터슨>을 보며 삶이 언제, 어떻게 예술이 되는지 알기란 어렵지 않다. “
* 윌리엄스에게 일상은 시의 소재이지만 패터슨에게 일상은 시의 일부이다. 윌리엄스의 시는 일상과 거리감이 있다. 하지만 패터슨에게 시란 부수적이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삶 자체다. 현대미술가 요셉 보이스가 베를린 시에 나무를 심었던 행위를 자신의 미술작품이라고 말했던 것과 같은 차원이다. 우리가 본 패터슨의 일주일 그자체가 그가 쓴 시였던 것이다. 윌리엄스는 시인이었고 패터슨은 시 자체인 것이다. 따라서 그가 노트에 적었던 시가 사라졌다 할지라도 진정 그의 시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은것이다. 그 자신이 지상에서 완전히 소멸되기전 까지는. 노트가 없어진 후 잠시 실의에 빠져있던 그는 한 일본인과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문득 그 사실을 깨달았다. 덩달아 우리도 이 영화의 주제를 명확히 알게됐다. 모든 행위가 시였던 그의 삶이 지향하는 시인의 삶이란 무엇인가. 시를 쓰는 일이란 소박하고 정성스럽게 최선을 다해 그저 일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길이 아니고 무엇인가. - 정재형(동국대 교수)의 글 <나느 '시다'>/ 21028년 2월호 르몽드 디플로마크 (한국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