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교육이란 자신의 내면을 바르고 건전하게 가꾸고 타인, 공동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을 기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을 말한다.” 오는 7월부터 시행되는 ‘인성교육진흥법’ 제2조 1항에 명시된 인성교육의 정의이다. 이 법의 시행을 앞두고 국회에서는 이 법을 위한 시행령 제정 작업으로, 교육청과 교육관련 국책기관들은 인성교육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과 교사연수 자료 개발 준비로 한창이다. 우리 학교 현장의 위기 의식이 고조되자, 국회에서는 인성교육진흥법까지 제정해 학교교육에서 인성교육을 의무화하게 되었다. 이는, 오랫동안 학생들의 학업능력(시험대비 능력)을 키우는 데에 치중해 있던 학교교육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인성교육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사회가 강조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는 매우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법제화가 학교와 교사들에게 더 큰 부담을 주고, 인성교육의 주요 역할을 담당해야 할 학부모가 자녀의 인성교육을 학교의 책임으로 치부해 버리지 않을까 하는 염려들도 적지 않게 들린다. 지금 우리 모두는 형식적인 눈가림식 교육이 아닌, 학생과 교사 모두의 마음과 행동의 성장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진정한 인성교육을 위해,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성찰하며 철저히 준비하여야 할 것이다. 본 칼럼에서는 인성교육 의무화 시대에, 참된 인성교육의 실현이라는 목표를 바라보며 재도전의 출발선상에서, 교직원뿐 아니라 교육정책, 교사교육, 인성교육 프로그램 개발 등을 담당하고 있는 모두가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할 것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인성교육은 교사의 마음의 회복부터 학교 현장에서 인성교육을 실행하게 될 주체는 매일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교사들이다. 필자가 만난 여러 교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많은 교사들이 공교육 현장의 현실 속에서 지쳐있고, 학생들, 학부모, 관리자, 또는 동료 교사들로부터 상처받고, 무기력해 있거나 지쳐있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학교 교육의 문제를 교사들의 열정과 사명감 결핍과 학생에 대한 무관심 때문이라고 비난하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사명감과 열정, 학생에 대한 애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힘들고 지쳐있는 교육현장의 교사들을 만나는 것이 어렵지 않다. “교사상처” 라는 책에서 김현수 교장은, 대한민국의 공교육제도 안에서 교사로 살아가는 이들은, 개인의 역량이나 성향에 따라 정도는 다르지만, 그 환경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누구나 다 받게 되는 상처가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상처의 원인으로, 저자는 교사의 협력자로서 가정과 가정에서의 인성교육 역할 약화, 열정을 가지고 배우고자 하는 학생의 감소, 배움의 본령으로서의 학교의 권위 약화, 교육정책의 일관성 부재 등이 있을 것이다. 이렇듯 지치고 무기력해져 있는 교사들에게 인성교육을 법으로 의무화하고, 인성교육을 위한 직무 연수를 받게 하고, 자료들을 제공해 주는것만으로 효과적인 인성교육이 일어날 수 있을까? 인성교육을 준비하고 실행하기에 앞서, 한국 교육의 시스템과 학교 현장의 현실 속에서 교사들이 받은 상처들을 개개인의 문제로 덮어두고 쉬쉬하거나 이를 교사 혼자 알아서 해결해야 할 문제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공동체, 나아가 한국교육체제의 문제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새기며 함께 치유하고 회복해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관계 중심의 공동체 문화 만들기 회복적 생활교육 전문가 박숙영 교사는, 교사들이 학교현장에서 겪고 있는 고통을 “단절의 고통”으로 본다. 자신의 내면과 분리됨의 단절, 교사와 학생간의 단절, 동료교사들과의 단절, 경제적 가치로 점철된 교육풍토 속에서 느끼는 교육의 본질적 가치와의 단절 등으로부터 큰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관계의 단절”과 “공동체성의 상실”을 교육현장의 가장 큰 문제로 본다. 많은 학생과 교사가 모여있는 학교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경쟁 위주의 학교문화 속에서 학생-학생, 학생-교사, 교사-교사, 교사-교장의 관계가 단절되어 있는 경우가 허다하고, 물리적인 공동체는 있되, 신뢰를 바탕으로 한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공동체가 없다는 것이다. 진정한 변화를 학생들에게서 이끌어 내는 인성교육을 하기를 원한다면, 학교현장의 고통 속에서 아파하고 있는 교사들부터 먼저 회복시켜야 한다. 그리고, 관계의 단절과 공동체성의 상실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먼저 상처부위를 드러내 놓고, 통증에 대해 의사와 환자가 먼저 소통을 해야 하는 것이 우선이듯, 교사들의 회복은 먼저 이 상처를 드러내 놓고 보여주고 동료 교사, 학교장, 교육 전문가들과 나누어야 한다. 누군가와 자신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공감받을 때, 특별한 해결책이 주어지지 않더라도 우리 안에는 회복, 즉 힐링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단절의 문화 속에서 계속 파 묻혀 신음할 것이 아니라, 같은 아픔을 가진 이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비난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들어주며, 마음을 만져주며 소통하고 연대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공동체 의식이 형성될 것이다. 따라서, 인성교육을 하기에 앞서, 학교를 학생과 교사들이 생활하고 있는 물리적 공간만이 아닌, 공감, 소통이 일어나는, 마음과 마음을 나누는 정서적 공동체로 만들어가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오랫동안 뿌리 박힌 경쟁 중심의 학교 문화를 관계 중심의 정서적 공동체로 만들어가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 교사의 정서적 지원자로서 학교장의 리더십 정서적 공동체로서의 학교, 관계 중심의 학교 문화를 만드는 데는, 학교 구성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 어느 누구보다도 학교장의 리더십과 그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많은 연구들이 뒷받침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미국에서 발표되는 여러 연구들에 의하면,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가 높고 교사들의 만족도가 높은 학교의 학교장들은 공통적으로, 교사들이 학생들을 잘 가르칠 수 있는 정서적 지지기반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학생들과 교사와의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 것이었다. 필자가 미국에서 박사논문을 위해 연구 관찰해온 뉴욕시의 한 초등학교에서도 이러한 학교장의 역할의 중요성이 발견된다. 뉴욕에서 총기사고가 빈번히 일어나는 저소득층 지역에 위치해 있고 학교 시설도 열악해서 과거에는 교사들이 근무하기를 두려워했던 이 학교에서는, 새로운 교장의 부임과 함께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물리적인 위치와 학교의 허름한 외관과는 달리, 학교에 들어서며 만나는 경비원의 눈웃음과 말씨에서는 다른 공립학교들에서 느낄 수 없는 따듯한 온기가 느껴졌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연구를 위해 만나는 교사들의 입에서는 공통적으로 학교장에 대한 찬사가 끊이질 않았다. 그것은 바로, 교장 선생님이 그들에게 얼마나 정신적으로 든든한 지원자인가 하는 내용이었다. “She always listens to our opinions. (우리 교장 선생님은 늘 우리의 의견에 귀 기울여 주세요)” “She is always there to help me, whenever I have any issue or problem. (내가 어떤 문제나 고민이 있을 때마다 항상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그런 분이에요).” 그리고, 그 교사들은, 학교의 열악한 환경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그 학교에서 일하는 것에 매우 만족하고 있었다. 이 학교의 교사 한 사람 한 사람을 존중해 주고 그들의 고민과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며, 그들을 정서적으로 지지해 주는 학교장의 역할의 중요성을 시시해 준다. 미국의 교육리더십 전문가인 휘태커(Whitaker) 교수는, 그의 책 ‘What Great Principals Do Differently? (훌륭한 교장들은 무엇이 다른가?)’ 에서 “훌륭한 교장들은 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교육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라고 했다. 좋은 교육과정이나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실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이를 실행하는 주체인 교사를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인 것이다. 교사의 상처 치유와 열정의 회복, 그리고 성장을 바라며 인성교육이 의무화되는 이때, 교사의 상처를 돌보고, 정서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학교장의 역할과 리더십이 그 어느 때 보다 요구된다. 그리고, 학생들의 인성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기에 앞서, 학생들에게 인성교육을 실행할 교사들이 내면의 상처로부터의 회복되고, 학생들과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그들의 내면의 동기부여에 힘쓰는 일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사람을 우선시하고 관계 중심의 학교문화를 만들어 가기 위해 힘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인성교육의 본질일 것이다. 한국의 교육현장의 힘든 현실 속에서, 모든 교육자들이 상처로부터 회복되고 열정을 되찾고 함께 연대하여 나아가기를 바라면서, 파커 파머의 글을 떠올려본다. 참고문헌 • 김현수(2014). 교사상처: 고단한 교사들을 위한 치유 심리학. 에듀니티. • 박숙영(2014). 회복적 생활교육을 만나다. 좋은교사. • Todd Whitaker (2011). What Great Principals Do Differently: Eighteen Things That Matter Most. Routledg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