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4일에 있었던 ‘어린이 놀이헌장’ 선포식에서 어린이 대표들이 발표한 선언문의 일부 내용이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어린이 놀이헌장이 전국 17개 시·도 교육감의 추진하에 제정되었다. 이 헌장은 아이들의 ‘놀 권리’와 놀이에 대한 가치 존중을 강조하며 이와 더불어 가정과 학교, 지역사회가 어린이들에게 놀 장소와 시간을 충분히 제공할 의무를 담고 있다.
아이들의 놀 권리를 지적하고 있는 법은 이 뿐이 아니다. 한국이 1991년에 비준에 동의한 “유엔 아동권리협약” 제31조에도 아동이 휴식과 여가를 즐기고, 자신의 연령에 적합한 놀이와 오락활동에 참여하며, 문화생활과 예술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권리’와 문화, 예술, 오락 및 여가활동을 위한 적절하고 균등한 기회의 제공을 장려”해야 하는 국가의 ‘의무’가 명시되어 있다. 유엔 아동권리협약을 지킬 것을 국가적 차원에서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아이들의 권리를 존중하지 못하고 있으며 국가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사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놀이에 대한 시각과 현대 놀이 풍속도
필자가 미국 시애틀과 뉴욕의 유치원과 초등학교, 주말 한국어 학교 등에서 교사로 일하면서 느낀 바에 의하면, 미국인 부모와 한국인 부모(여기서는 언급하는 한인 학부모는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이 아닌, 한인 1.5세 부모)는 교사와 아이들에게 어떤 방향의 질문을 하는지에 있어서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미국 부모가 방과후에 아이들을 데리러 와서 자녀에게 하는 질문은, “Did you have fun today? (오늘 재미있게 놀았어?), Who did you play with? (누구랑 놀았어?)”였다. 반면 대부분의 한국인 부모는 “오늘 뭐 배웠어? 무슨 공부 했어?”라고 물었다. 교사에게 묻는 질문도 이와 비슷하다. 물론 부모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었지만, 미국 부모의 주된 관심은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얼마나 잘 어울려 노는지, 즉 ‘사회성’에 관한 것이었던 반면, 한국 학부모의 주된 관심은 자녀의 ‘지능’이나 ‘학업능력’에 대한 것이었다. 한국 부모들의 공부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미국에서 더욱 대조적으로 부각되었다.
요즘 한국의 초등학교에서는 아이들이 놀면서 다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쉬는 시간에도 운동장으로 나가지 못하게 교실에 붙들어 놓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도 실내에서 조용히 앉은 채 할 수 있는 놀이만 하거나, 나가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며 창밖 만 내다보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학교에서뿐 아니라 방과 후에도 잘 놀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한창 뛰어 놀아야 할 나이에 학원으로 내몰리며 늦게까지 공부한다. 아이들의 놀이시간은 부모세대가 누렸던 놀이시간에 비해 급격히 줄었고 놀이공간은 자연 공간이 아니라 실내로 이동됐다. 친구들과 몸을 부대끼며 함께하는 놀이보다는 장난감, 핸드폰 또는 전자기기를 가지고 혼자 하는 놀이가 많다. 즉, 아이들이 충분하게 가져야 할 놀이 시간은 점점 공부로 채워지고, 놀이의 형태도 온몸으로 하는 것이 아닌 머리와 눈으로 하는 것으로 대체되고 있다. 이렇게, 우리의 아이들은 점점 병약해져 가고 있다.
안타까운 한국의 풍토 속에서 어린이 놀이헌장의 제정은 의미가 크다. 또한 최근 속속 등장하고 있는 놀이에 관한 도서의 등장은 우리 어른들에게 울리는 경종이다.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1) , “놀이터의 기적”2) , “놀이터 생각”3) 과 같은 책들은 아이들에게서 놀이를 박탈해 가고 있는 아이들로부터 놀 시간과 기회를 점점 더 박탈해가는 어른, 아동의 발달은 생각하지도 않은 채 공부만을 강요하는 어른, 아이들이 보이는 일탈행동과 폭력성, 우울증의 책임을 아이들에게만 돌려온 한국사회의 어른들에게 말이다.
(좌)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 편해문저, 소나무, 2012
(중) “놀이터의 기적”, 송현숙 외 2인 저, 씨앗을뿌리는사람, 2015
(우) “놀이터 생각”, 귄터 벨치히 저, 엄양선, 베버 남순 역, 소나무, 2015
아동발달에 있어 놀이의 역할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와 한국아동권리학회가 지난 해 서울 경기지역 초·중·고등학생 564명을 대상으로 조사 분석한 연구 보고서4) 에서는 현재 아이들이 느끼는 행복감은 유아기, 초등학교, 중학교 시기 등 과거 모든 시점에서 놀이와 여가를 충분히 경험했는지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즉, 사교활동과 바깥활동에 보내는 시간이 많은 아동일수록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뇌 과학자인 존 메디나 (Medina) 박사는, 신체활동을 많이 할수록 우리 몸에 필요한 ‘양분’이 더 많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운동을 하면 우리 뇌 속의 혈액의 양이 증가하고, 혈액이 공급하는 영양을 더 많은 뉴런이 받아먹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더불어, 두뇌에 공급되는 산소량을 늘리는 데에 중요한 것은 운동의 강도가 아니라 신체활동의 기회와 소요시간이라고 했다.5)
또한 얀시(Antronette Yancey)박사 는 학생들의 인지 능력과 사회성을 발달시키려면 더 많이 뛰어놀게 하고 체육 수업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라고 주장한다.6) 자신의 연구를 통해, 그는 신체활동을 꾸준히 하는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학교 수업에 훨씬 더 잘 집중하고 공격적인 행동도 훨씬 덜 하며 자신에 대해서도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자존감도 높고 우울감이나 불안감도 덜 느끼는 것을 발견했다. 그 이유는 신체 운동을 하면 ‘실행기능 (executive function)’이 향상되어 문제해결 능력, 주의력 그리고 정서적 충동을 억제하는 능력이 증진되며, 체력과 균형감각이 향상될 뿐 아니라 면역체계를 강화시켜 주며, 스트레스가 주는 해로움에 대한 완충장치가 되어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모든 연구와 전문가들의 주장은 아동에게 있어 충분한 놀이는 발달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놀이는 아동에게 그 자체로 훌륭한 학습의 과정이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또래들과 함께 놀면서 놀이의 규칙을 만들고 자신의 생각을 실행하는 능력을 기른다. 놀이를 통해 실패도 경험하고 성공도 해보면서 삶의 여러 기술을 연습한다. 또한 아이들은 놀이에서 발생하는 갈등 상황을 통해 협력과 화해의 기술을 익힌다. 어릴 때 놀이를 하며 다양한 갈등을 경험하고 문제를 해결해 본 아이들은 커서도 인간관계를 성숙하게 유지할 수 있다.
반대로 아이들에게 충분한 놀이시간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놀이 결핍’이 발생되면 어떻게 될까? 닭장 속에 갇혀 쉴새 없이 알을 낳도록 강요되는 닭들을 상상해 보라.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게 닭장 속에만 가두어 둔 닭들은 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옆에 있는 닭을 쪼아대며 서로를 괴롭히고 공격적인 증상을 보인다고 한다. 학교의 교실과 학원 강의실, 아파트의 실내에 갇혀 마음껏 뛰놀지 못하는 요즘의 아이들이 우울증, 분노조절 문제, 공격성, 낮은 집중력, 산만함, 친구에 대한 폭력성을 보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 아닌가? 근본적인 이유가 어디에 있는 지를 고려할 때, 이를 비정상적인 문제행동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최신의 교육법으로 아이들에게 피상적이고 단기적인 처치를 제공하더라도, 아이들의 결핍과 욕구불만이 해소되지 않는 한 그 방법이 충분한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은 자명하다. 예를 들어 학교폭력에 대한 대응책 혹은 한시적 단기 예방 프로그램만 내놓으면서 아이들의 폭력성이 저절로 사라질 것을 기대하는 것은 기복적인 행위에 가깝다. 그런 교육적 시도가 무의미하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우선적으로 아이들에게 결핍된 놀이시간과 놀이장소를 학교와 가정, 그리고 지역사회에서 제공해 주어 아이들의 욕구불만이 해소될 때, 우리 사회가 적지 않은 자원을 투자하며 공들이고 있는 인성교육과 학교폭력 예방교육이 비로소 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이것이 그간 우리 사회가 쏟았던 갖가지 교육적 투입이 효과를 내지 못했던 이유일 수 있다는 말이다.
맺으며
우리 몸이 자라는 데에 음식이 필요한 것처럼, 아이들의 성장에는 놀이가 필수적이다. 우리의 아동과 청소년이 전인적으로 건강한 시민으로 성장하게 하기 위해 기성세대가 해 주어야 할 일은 공부 독촉이 아니다.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안전한 공간과 편안한 시간을 충분히 확보해 주고, 함께 놀아주는 것이다. 학교는 인성교육을 위해서라도 더욱 놀이를 강조해야 한다. 이렇게 될 때, 아이들에게 그 책임을 전가해 온 많은 아동청소년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으리라. 앞서 소개한 책 제목이 시사하듯, 아이들에게는 “놀이가 밥이다.” 어느 때보다도 지금의 아이들에게는 아이들의 놀 권리를 존중해 주며, 자신들과 열심히 놀아주는 부모와 교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