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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수용과 강점 기반 교육
교사와 부모를 대상으로 한 강의에서 ’자존감’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때 필자가 자주 소개하는 『아나톨의 작은 냄비』1라는 그림책이 있습니다. 이 그림책의 주인공인 아나톨에게는 떼어내려야 뗄 수 없는 ‘냄비’가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아나톨은 평범한 아이가 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주인공은 자신의 약점(또는 장애)인 ‘냄비’ 때문에 받아야 하는 놀림과 피곤한 삶이 힘들어 세상으로부터 숨어버립니다. 그리고는, 점점 존재감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아나톨에게 어느 날 누군가가 찾아옵니다.
자신의 존재를 알아봐 주고 다가와 말을 걸어준 그 사람은, 자신에게도 아나톨이 가진 것과 비슷한 냄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는 그 약점과 함께 삶을 살아가는 방법들을 안내해 줍니다. 그는 냄비를 활용해 구덩이에 걸리지 않고 지나가는 방법과 냄비를 가지고 노는 법 등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그 냄비에 꼭 맞는 예쁜 가방도 선물해 줍니다. 그 어른을 만나고 난 후, 아나톨의 삶은 많이 변하게 됩니다. 아나톨의 냄비는 여전히 그대로였지만, 삶을 즐겁게 살아가는 방법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우리 모두에게 있는 약점
여러분에게는 아나톨과 같은 냄비(약점)가 있으신가요? 그 냄비는 무엇인가요? 그것을 사람들 앞에서 숨기기 위해, 아니면 없애버리려 애쓰며 살아가고 있지 않나요? 또 그런 자신의 모습을 가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미워하고 있지 않나요?
우리 모두에게는 자기만의 ‘냄비’가 있습니다. 그것이 신체의 질병이나 장애, 낮은 지능, ADHD, 가정의 아픔, 외적 또는 내면의 상처일 수도 있습니다. 그 냄비는 각기 모양이나 크기가 다를 수도 있고, 또는 눈에 보이고 안보이고의 차이가 있을 뿐이겠지요. 아무리 완벽하고 모든 것을 갖춘 것 같아 보이는 사람도 약점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냄비가 나쁘기만 할까요? 아나톨의 냄비가 때로는 구덩이를 건너고 공놀이를 하는 도구가 될 수 있듯, 어떻게 바라보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유익한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상처나 약점이 오히려 비슷한 아픔을 가진 사람을 더 잘 공감하고 이해하며 돌볼 수 있는 능력이 되기도 합니다. 제 주위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 지인 중에는, 고아로 보육원에서 자라며 수많은 어려움을 겪고 방황도 많이 했지만, 자신을 사랑해 주고 도와준 멘토들을 만나고 삶의 방향이 바뀌어, 이제는 사회적기업의 대표가 되어 보육원에서 자라서 퇴소한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멘토링도 하며 그들을 위해 불합리한 사회의 법을 바꾸는 데 영향을 주며 살아가는 이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어느 인터뷰 기사에서 말했습니다. ‘자신이 고아라는 것이 축복이었다고…’2
헨리 나우웬은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고 비슷한 아픔을 가진 이들을 돕는 이런 사람을 ‘상처입은 치유자(wounded healer)’3라고 불렀습니다. 아마도 앞에서 소개한 그림책 속 주인공 아나톨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알려준 어른도 상처입은 치유자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 사람을 만나 사랑을 입은 아나톨은 성인이 되어서 또 다른 ‘상처입은 치유자’가 되지 않았을까요?
자신의 강점으로 약점 껴안기
이들이 상처입은 치유자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의 약점이나 상처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과정과, 자신의 강점으로 약점을 껴안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행복을 연구하는 심리학 분야인 긍정심리학의 대가, 마틴 셀리그만4 박사는 ‘진정한 행복(authentic happiness)은 개인의 약점이나 정신적인 문제를 보완하려는 노력이 아니라, 개인의 강점을 찾고 계발하여, 삶 속에서 이를 활용함으로써 실현된다’고 했습니다.
긍정심리학 출현 이전의 심리학은 대부분이 인간의 이상행동을 연구하고 고치려는 노력을 해온 데 반해, 긍정심리학에서는 개인의 문제를 고치고 보완하려는 데에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기보다, 이미 가진 강점에 집중하고 이를 계발하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할 때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긍정심리학의 방향은 성인뿐 아니라,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학생들의 약점을 보완하려는 노력보다, 잘 하는 것에 집중하고 이를 활용하고 계발하도록 하는 교육을 ‘강점 기반 교육 (Strength-based Instruction)’이라고 합니다.
교사로서 부모로서 자녀와 학생들을 대할 때, 그들의 문제와 약점이 쉽게 고쳐지거나 나아질 수 있는 것이라면 보완해 주고 도와주려는 노력도 해야 하겠지만, 그 문제에만 집중하고 메몰되어 아이가 가진 강점이 활용되지도 계발되지도 못한 채 묻혀버린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일까요? 오히려 아이들의 강점을 찾아주고 가능하다면 그 약점이 오히려 강점이 될 수 있도록 돕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니, 자존감이 화두인 시대에, 자녀나 학생들뿐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그런 노력을 하며, 건강한 자존감을 키워나가야 할 것입니다.
성격 강점 찾기
사회성·감성교육에서는 학생들이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인식하는 ‘자기인식’ 역량을 키우고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태도를 기르는 ‘자기관리’ 역량을 계발시키는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강점 중에서도 재능뿐 아니라, 성격과 관련된 강점을 긍정심리학에서는 ‘성격(인격) 강점(Character Strengths)’이라고 합니다. 피터슨과 셀리그만5이 발견한 인간의 ‘성격 강점 25가지’에는 아래의 표에서 보는 것과 같이, 창의성, 호기심, 도전정신, 끈기, 자기조절력, 회복력 등이 포함됩니다. 이러한 강점은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진 과거부터 현재의 인물(테레사 수녀, 윈스턴 처칠 수상, 스티브 잡스, 간디 등) 수백 명을 연구하여 이들이 갖고 있는 특성들을 분석하여 찾아낸 것들이라고 합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이들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는 재능과 인격 강점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자신의 인격 강점을 찾고 자신의 강점에 집중하고 이를 계발하는 노력을 하시기를, 또한 우리 자녀와 학생들을 도울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