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수능 치는 날 도시락은 감자스프로 해 주셔요!
현미채식안내자 이영미
매일 아침에 다섯 식구가 일어나서 움직이니 집이 꽉 찬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이 차지하는 공간과 기운이 크게 느껴지네요.
열흘 전까지는 네 식구가 직장으로 학교로 갈 준비를 하느라 바삐 움직였는데 이제 다섯 식구입니다.
(개 세마리도 밥을 먹고 사니 여덟식구네요)
얼마 전 대한민국에서 제일 유명한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딸이 드디어 고등학교 3년 동안의 기숙사 생활을 접고 집에서 통학하기 시작했거든요. 조금 전 딸이 옆에 와서 제 얼굴을 보여주며 “엄마, 내 얼굴 많이 좋아졌지?” 합니다. “그래, 엄마가 해 준 집밥의 효과야!” 라고 말했지만 딸의 얼굴이 좋아진 건 무엇보다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를 안 받아서일 수도 있겠죠. 어제는 그냥 노래처럼 ‘엄마’를 부르더군요. 맘이 편안해서이겠죠.
아이도 엄마도 가슴이 떨리는 수능 치던 날 새벽에 일어나 도시락 준비를 했습니다. 딸은 수능 한 달 전에 수능 날 점심 도시락으로 감자스프를 해 달라고 했었습니다. 감자를 삶는 동안 당근을 다졌습니다. 현미가루를 약한 불에 올리고 저으면서 끓이다가 삶아서 으깬 감자와 다진 당근을 넣고 다시 조금 더 끓였습니다. 죽염으로 간한 감자스프를 보온도시락에 담고 검은깨와 잣을 뿌렸습니다. 같이 먹을 나물 반찬도 몇 가지 챙기고, 현미채식하시는 지인이 농사지으신 포도도 후식으로 챙겼습니다. 도시락을 준비하면서 내내 가슴이 두근두근하는데 딸은 몇 배나 더 했겠지요.
드디어 수능 시험을 끝낸 딸은 온 가족과 참으로 오랜 만에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엄마, 나 ‘힐링키친(퓨전 채식 레스토랑)’ 데려가 주셔요!”
“이제 시험을 위한 공부는 그만하고 싶어요. 진짜 인문학 공부를 하고 싶어요!”
“엄마, 떡 맛있어요!” 하면서 딸 수능 날이 마침 결혼 20주년이기도 해서 멥쌀 현미와 찹쌀 현미가루에 조린 사과를 넣고 만든 현미설기떡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점심시간에 친구들이랑 잔디밭에서 햇볕 쬐며 도시락 먹으니 참 좋았어요!”
“지금 제일 하고 싶은 건 가장 단순한 거 박스 포장 같은 거에요!”
딸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이 쨘했습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과 대학입학만을 위한 시험공부 위주인 학교생활에서 과감하게 나오는 아이들도 있지만 현재 대다수의 대한민국 학생들이 그런 것처럼 딸은 그 안에서 제 나름으로 무진 애를 쓰며 열심히 살았던 거지요.
몇 년 만에 여유롭게 초등학교 때 자신이 길에서 데려온 강아지와 그 강아지가 자라서 낳은 강아지 두 마리-개 세 마리의 밥을 주러가기도 하고, 구들방 아궁이에 나무 넣으러 가기도 하고, 두 동생들과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도 나누는 딸은 겨울방학하면 산에 나무도 하러 갈 거라고 큰 소리 칩니다. 물론 엄마가 김장 담그는 것도 도와준다고 합니다.
엄마는 딸이 시험공부만 하는 것 같은 학교에서 나오길 원했지만 딸은 다시 대학교에 들어갑니다. 어떤 공부를 하든 그 공부가 진정으로 나에도 남에게도 이로운 공부를 하기를 기도합니다. 학교 안에서든 학교 밖에서든 이 세상에서 스스로 잘 살면서 더불어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2014.11.26 울산저널
첫댓글 대한민국에서 수능이란 단어가 없어지는 그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합니다 ^^;
딸과의 정을 얼마남지 않은 시간동안 진하게 즐기시기를...
요즘 나무하러 가자고 연락없는 이유를 알겠네요ㅎ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4.12.08 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