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을 복원하라는 말은
백두대간을 복원하고 또 보전하자는 것은, 백두대간과 정간·정맥을 가로지르고 있는 모든 도로를 무조건 폐쇄하고 산줄기를 복원하라는 말이 아니다. 이 말은 백두대간, 장백정간, 낙남정맥 등을 공식 용어로 먼저 채택하는 것으로 전통 지리관의 회복을 선언하고, 지도와 교과서, 그리고 모든 공사(公私) 문서에 사용할 것을 주장하고 요구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리고 자연환경과 생태계의 복원 및 보전을 우선으로 계획하고, 개발제한구역(green belt)의 설정과 관리, 수자원(水資源)의 확보 등을 위한 인간의 활동이 친환경적으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론으로 산경의 원리를 이해하는 안목을 가지고 생각할 것을 제안하는 것이다. 백두대간을 보전하자는 말은 백두대간뿐만 아니라 정간·정맥과 그 부속 산지와 하천을 함께 보호·보전해야 한다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국토를 이해한다는 것은 국토의 지형과 지세를 이해한다는 것이다. 국토의 지형과 지세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국토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과학적 체계가 필요하다.
백두대간과 정간·정맥은 이 땅의 지형과 지세를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과학적 체계이다. 백두대간을 알고 이해한다는 것은 곧 산경의 원리를 깨닫는다는 것이며, 산경의 원리란 이 땅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도록 과학적으로 체계화되어 있는 우리의 전통 지리관이다.
백두대간은 옛부터 우리 선조들이 그렇게 불러오던 이름이므로 백두대간이라고 불러야 한다. 우리 선조들은 산줄기를 그렇게 인식하고 있었고, 그렇게 인식하는 것이 각종 지리정보를 가장 쉽고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하고 전달할 수 있는 길이므로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쳐야 한다. 땅 이름은 여러 천년을 두고 불러내려 온 것이며 산줄기에 대한 인식과 그 이름도 그만큼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은 이미 230년 전에 산줄기 분류체계를 확립했고, 200년 전에 산줄기 이름을 명명한 『산경표』를 만들어 후세에 전하고 있었으니, 그 전통적 지리관의 맥을 잇고 그 산줄기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통일을 준비해야 하는 이 시기에, 우리 선조들이 확립한 가장 명확한 지리 인식체계를 모르고 산다는 것은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며, 정보화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에게 이것을 가르치지 못한다면 이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후손들에게 죄를 짓는 일이 될 것이다. 마땅히 우리 아이들의 교과서와 지도에 백두대간·장백정간·낙남정맥을 실어주고 그 인식체계를 가르쳐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우리 고유의 지리관을 회복하고 그 학문적 정체성을 재정립해야만 한다.
백두대간과 정맥과 강줄기를 그려 넣은 산경도(山經圖)를 들여다보면 전국의 산과 강이 한 눈에 들어오고, 고구려·백제·신라 3국의 지도가 저절로 나타난다. 진흥왕 순수비가 왜 마운령과 황초령에 세워졌는지, 천리장성이 왜 그러한 선으로 축조되었는지를 알게 되고 저절로 고개를 끄덕거리게 된다. 그리고 방언, 민요, 가옥 구조, 식생활, 풍습 및 식생의 분포, 철 따라 남하하는 단풍, 꽃이 피고 지는 선은 모두 이 대간·정간·정맥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지도를 통하여 역사와 문화와 풍습과 식생과 기후를 이해하는 것은 지리학의 출발이요 목표라 할 수 있다. 지형적 특성에 따라 생활 양식과 문화가 다름을 알며, 기후와 풍토에 따라 적응하고 발전한 그 지방 특유의 생활 모습을 발견하고 이해하게 되는 것이야말로, 나라의 땅과 그 위에 터잡아 살아가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지름길이라 할 것이다.
자동차나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면서 비가 내리는 지역과 내리지 않는 지역을 동시에 통과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비가 내리는 지역과 내리지 않는 지역의 경계는 무심코 지나쳤던 작은 고개였다는 것을 산맥체계로는 설명할 길이 없다. 그것은 대간·정간·정맥, 곧 ‘산경’을 이해하면 저절로 풀리는 자연의 법칙이다.
백두대간을 이해하고 산경의 원리를 깨닫고 나면 환경보호론자가 된다. 어느 산에 올라 떨어뜨린 작은 과일 껍질이나 휴지조각 하나가 능선의 어느 편에 떨어지느냐에 따라 더러워지는 강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