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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선택과 결단이 유혹을 이길 수 있게 한다
요셉은 유혹에 대한 분별력이 있는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유혹에는 두 종류의 유혹이 있습니다. 하나는 싸워서 이겨할 유혹이 있고, 또 하나는 피해야 할 유혹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유혹은 싸워야 하고 정복해야 합니다. 탐욕을 타고 찾아오는 유혹들이나 물질과 명예와 권세와 같은 유혹들은 싸워야 합니다.
그러나 피해야 할 유혹은 성적인 유혹입니다. 성경은 이 점에 대해서 명백하게 선을 그어 줍니다. 바오로 사도는 “불륜을 멀리 하십시오. 사람이 짓는 다른 모든 죄는 몸 밖에서 이루어지지만, 불륜을 저지르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1코린 6,18)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를 다음 절에서 설명합니다. “여러분의 몸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성령의 성전임을 모릅니까? 그 성령을 여러분이 하느님에게서 받았고, 또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님을 모릅니까?”(1코린 6,19)
바오로가 사랑하는 영의 아들 티모테오에게도 같은 권고를 합니다. “청춘의 욕망을 피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받들어 부르는 이들과 함께 의로움과 믿음과 사랑과 평화를 추구하십시오.”(2티모 2,22) 청춘의 욕망과 싸우라고 권고한 것이 아니라 피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자기에게 찾아온 유혹이 싸워야 할 것이 아니라 피해야 할 것임을 알았습니다.
유혹을 보는 것과 듣는 것을 피하라
요셉은 보는 것과 듣는 것을 피함으로 유혹을 극복했습니다. 창세기 39장 7절에서 여자가 요셉에게 눈길을 보냅니다. 눈은 마음의 창입니다. 사람은 언어의 대화보다 눈의 대화를 더 많이 합니다. 모든 유혹은 보는 데서 출발하게 됩니다. 유혹을 이기는 길은 보는 것을 주의하고 선택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잘못도 우리야의 아내가 목욕하는 것을 보는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포티파라의 아내의 눈길을 피할 줄 아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요셉은 그 여자의 눈길 대신에 하느님의 눈길을 의식했고 자신의 눈을 하느님의 눈에 고정시켰습니다. “이 집에서는 그분도 저보다 높지 않으십니다. 마님을 빼고서는 무엇 하나 저에게 금하시는 것이 없습니다. 마님은 주인 어른의 부인이십니다. 그런데 제가 어찌 이런 큰 악을 저지르고 하느님께 죄를 지을 수 있겠습니까?”(39,9)
요셉은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산 사람입니다. 하느님 앞에 살고 있다는 거룩한 영적 훈련을 쌓았던 사람입니다. 요셉은 유혹하는 여자를 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말을 듣지도 않았습니다. “그 여자는 날마다 요셉에게 졸랐지만, 요셉은 그의 말을 듣지 않고, 그의 곁에 눕지도 그와 함께 있지도 않았다.”(39,10) 요셉은, 인간의 유혹이 보는 것과 듣는 것을 통해서 들어온다는 사실을 알았던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성적인 유혹을 받는 생각을 피하라
요셉은 자신의 생각을 정복함으로 유혹을 피했습니다. 보이는 것 자체를 어찌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인간의 성욕 자체도 죄는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세우신 가정에서 건전한 부부간의 성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집 밖으로 넘어갈 때 문제가 됩니다.
성욕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다스리느냐가 문제입니다. 어떤 범죄든지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성적인 범죄가 한 순간에 이루어질 수 있는 위험이 있기도 하지만 사실은 생각의 씨앗을 미리 심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 생각을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생각의 중요성과 위력을 아시는 주님께서는 마태오복음 5장 27-28절에서 “‘간음해서는 안 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더러운 생각이 씨앗을 가슴에 품지 마십시오. 악한 생각을 빨리 없애야 합니다. 이솝은 “악의 씨앗을 없애지 않으면 그것은 당신이 파멸에 이를 때까지 자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생각을 검열해서 잘못된 씨앗들을 뽑아 내지 않으면 그 생각은 무서운 힘을 가지고 우리를 공격하게 될 것입니다. 생각은 스스로 연출하고 그 연출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고자 하는 무서운 힘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요셉은 성적인 생각을 피하고 하느님께서 주신 꿈을 생각했습니다. 하느님을 생각했습니다.
유혹의 장소를 피하라
창세기 39장 10절을 보면 “그 여자는 날마다 요셉에게 졸랐지만, 요셉은 그의 말을 듣지 않고, 그의 곁에 눕지도 그와 함께 있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또 12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때 그 여자가 요셉의 옷을 붙잡고 ‘나와함께 자요!’ 하고 말하자, 요셉은 자기 옷을 그의 손에 버려둔 채 밖으로 도망쳐 나왔다.”고 합니다.
요셉은 이 여자와 함께 있는 것도 거부했습니다. 자기 옷을 버리고 도망쳐 나왔습니다. 성적인 유혹은 씨워서는 이길 수가 없습니다. 너무나 강하기 때문에 피해야 합니다. 도망가야 합니다. 기도를 부탁하지 마십시오. 성적인 유혹 앞에 있다면 기도로도 안 됩니다. 주님께서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신 것처럼 우리가 유혹에 빠지기 전에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일단 성적인 유혹을 받고 있다면 기도하지 마십시오. 기도보다는 도망가는 것이 훨씬 지혜롭습니다. 철저하게 피해야 합니다.
다윗이 바쎄바의 유혹을 받고 그와 동침하던 날에 기도했겠습니까? 안 했겠습니까? 다윗은 분명히 기도했을 것입니다. 기도하고, 묵상하고, 선교를 하면서도 이런 유혹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겸허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유혹의 문제에 관한 한 성인이 따로 없습니다. 오직 한 가지 길만 있습니다. 피하는 것입니다. 성적 유혹의 문제에서는 성직자 수도자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이것에 관해서는 누구도 스스로를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철저히 하느님을 의지하고 하느님의 눈길을 의식하면서 매일 매일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 한 승리는 쉽게 보장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미리 선택하고 결단하라
요셉이 단호하게 유혹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평소에 그렇게 살기로 선택하고 결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성적인 범죄가 하느님 앞에서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았습니다. 죄가 하느님 앞에서 가공할 만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요셉은 이집트 사람의 문화에 따라 죄를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입장에서 죄를 보았습니다. 9절 말씀을 다시 보십시오. “이 집에서는 그분도 저보다 높지 않으십니다. 마님을 빼고서는 무엇 하나 저에게 금하시는 것이 없습니다. 마님은 주인 어른의 부인이십니다. 그런데 제가 어찌 이런 큰 악을 저지르고 하느님께 죄를 지을 수 있겠습니까?”
요셉은 그의 주인에게 의리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주인의 은혜를 잊지 않았습니다. 또한 요셉은 하느님께 의리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주인의 은혜를 잊지 않았습니다. 또한 요셉은 하느님께 의리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은혜를 잊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그의 범죄가 하느님 앞에 큰 악임을 알았습니다. 사람들의 평가나 기준보다는 하느님의 평가와 기준을 따라 살았습니다. 잠언 14장 12절은 “사람에게는 바른길로 보여도 끝내는 죽음에 이르는 길이 있다.”고 합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바른길처럼 보이는 유혹을 요셉은 극복했습니다.
헌신이라는 것은 뜻을 정하는 것입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가 그랬습니다. 뜻을 정하고 궁중 음식과 술을 먹지 않기로 했습니다.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에 자신의 몸을 더럽히지 않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헌신의 결과로 오는 어떤 대가라도 지불하기로 결정하고 그럴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죄악의 결과가 가져다 줄 미래를 전망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헌신된 사람은 사람을 두려워하기보다는 하느님을 두려워합니다. 요셉은 포티파르의 아내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도 재상들과 총독들의 모함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하느님을 경외했습니다. 그 결과는 승리요 축복이었습니다. 잠언 29장 25절은 “사람을 무서워하면 그것이 올가미가 되지만 주님을 신뢰하면 안전해진다.”고 합니다. 요셉은 포티파르의 아내의 손에 빠지는 것보다는 하느님의 손에 빠지는 것이 더욱 좋은 것임을 알았습니다.
옷을 잃는 것이 양심을 잃는 것보다 낫다
요셉이 유혹을 거절한 결과로 오해를 받고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어려운 길을 선택했습니다. 요셉은 어려운 길을 선택했습니다. 죄악에 빠지기보다는 하느님께 빠지기를 원했습니다. 요셉은 외투 한 벌을 잃는 것이 그의 꿈을 잃는 것보다 나은 것임을 알았습니다. 요셉은 두 번째 옷을 빼앗겼습니다. 요셉의 선택은 잘한 것이었습니다. 매튜 헨리는 “선한 양심을 잃는 것보다 좋은 옷 한 벌을 잃는 것이 낫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순결에 대한 대가는 무엇이었습니까? 감옥에 갇히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평소에 유혹이 오기 전부터 그의 삶의 방식을 선택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삶의 가치 기준에 따라 산 사람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삶의 방식을 선택하며 살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있습니다. 사람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순수하게 형제와 자매와 같이 사랑하고 존경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유혹의 대상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하루아침에 살이 찔 수는 없습니다. 하루아침에 살이 빠질 수도 없습니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세워진 것도 아니고 하루아침에 망한 것도 아닙니다. 가장 무서운 붕괴는 우리 밖에서 오기 전에 우리 안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행동으로 나타나기 전에 생각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상대방이나 환경을 탓하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은 잘못해 놓고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서 그랬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탄의 유혹이 집요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였다면 그 죄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져야 합니다.
요셉의 승리는 자기와의 싸움에서의 승리입니다. 유혹을 이기기 전에 자신을 이겼습니다. 자신을 정복했습니다. 그는 이집트를 정복하기 전에 자신을 정복했던 사람입니다.
하느님께서 꿈꾸는 요셉을 유혹으로부터 지켜주셨다
요셉이 어떻게 포티파르의 아내의 유혹을 이길 수가 있었을까요? 가장 소중한 비결은 하느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많은 것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만 우리가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할 사실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요셉은 유혹의 현장에 홀로 서야 했습니다. 그의 곁에서 그를 도와주고 방향을 잡아 줄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그의 곁에 계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그와 동행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요셉과 함께 계셨으므로, 그는 모든 일을 잘 이루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자기 주인인 이집트 사람의 집에서 살았다.”(39,2)
41장 38절에서는 파라오가 요셉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파라오는 자기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이 사람처럼 하느님의 영을 지닌 사람을 우리가 또 찾을 수 있겠소?’” 하느님의 성령의 감동을 따라 요셉은 살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을 뿐 아니라 요셉도 하느님과 동행하셨습니다. 이것이 승리의 비결입니다. 요셉은 육의 욕망을 따라 행한 것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 행동했습니다. 갈라티아서 5장 16절에서는 “내 말은 이렇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육의 욕망을 채우지 않게 될 것입니다.”라고 합니다. 요셉은 성령의 감동 속에 살기를 자원했습니다.
성령께서 도우실 때 우리는 하느님을 경외할 수가 있습니다. 이사야 11장 2절에는 성령을 가리켜 “주님의 영”이라고 말씀합니다. 요셉은 하느님을 경외했습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했습니다. 하느님의 눈길을 의식하며 살았습니다. 이렇게 하느님을 경외하는 사람을 향한 약속이 시편 34장 7절에 나옵니다. “주님의 천사가 그분을 경외하는 이들 둘레에 진을 치고 그들을 구출해 준다.”
요셉은 자신의 지혜를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지식과 경험을 의지한다 할지라도, 하느님을 의지하고 하느님을 경외하는 것을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잠언 3장 5-7절의 말씀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신뢰하고 너의 예지에는 의지하지 마라. 어떠한 길을 걷든 그분을 알아 모셔라. 그분께서 네 앞길을 곧게 해 주시리라. 스스로 지혜롭다 여기지 말고 주님을 경외하며 악을 멀리하여라.”
우리의 지혜나 예지에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전에 유혹을 잘 이겼기 때문에 이제는 괜찮다고 하는 방심은 금물입니다. 사탄은 우는 사자와 같이 믿는 자를 삼키려고 합니다. 유혹은 단순히 성적인 유혹만이 아닙니다. 물질일 수도 있고, 명예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것이든 올가미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잘 알고 있다는 것이 바르게 살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잘 알고 있다는 것과 그렇게 살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항상 깨어서 기도하고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꿈은 우리 자신들만의 꿈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 가족과 우리 교회와 국가와 민족, 그리고 이 세계에 기여해야 할 꿈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꿈을 항상 생각합시다. 꿈이 우리를 사로잡도록 꿈꾸는 시간을 매일 갖도록 합시다. 항상 깨어 하느님께 기도합시다. 사탄의 유혹을 이길 수 있도록 하느님의 갑옷을 매일매일 입도록 합시다. 말씀 묵상을 통해서 생각을 무장하고 마음을 무장합시다. 성경은 모든 것이 기도와 말씀으로 거룩해진다고 합니다.
도색 잡지와 포르노 비디오와 도박에 빠져 있는 분이 계십니까? 그 습관을 버리십시오. 가까이 가지 마십시오. 성령의 도우심을 따라 보는 것과 듣는 것과 생각하는 것을 훈련하도록 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귀한 그릇으로 사용하기 원하십니다. 하느님 앞에 깨끗하게 쓰임받는 그릇이 되도록 하십시오. 우리의 의지와 노력과 결단만으로 부족합니다. 요셉처럼 하느님을 의지하십시오. 하느님과 동행하십시오. 요셉처럼 성령의 감동을 받아 사십시오. 하느님의 은총으로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
나의 주변을 맴돌고 있는
탐욕의 유혹....
잠시 잠깐이라도 방심하면
언제라도 덮쳐올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어느 누군가의
기도가 필요하고
스스로 말씀 묵상으로
생각을 무장하고,
마음을 무장하며
하느님을 의지하고
하느님과 동행하며
하느님의 은총으로 승리하고 싶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신뢰하고
너의 예지에는 의지하지 마라.
어떠한 길을 걷든 그분을 알아 모셔라.
그분께서 네 앞길을 곧게 해 주시리라.
스스로 지혜롭다 여기지 말고
주님을 경외하며 악을 멀리하여라.”(잠언 3,5-7)
아멘.
아~~멘.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근데 유혹은 항상..나를 살아있게 만들고,
내가 살아있음은 유혹과 싸우기 위해서 이고
지금도 유혹과 씨름하고 있습니다..
아멘.
아멘.
아~~멘.
"가장 무서운 붕괴는 우리 밖에서 오기 전에
우리 안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 말은 이렇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육의 욕망을 채우지 않게 될 것입니다.”(갈라 5,16)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