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 이야기
양정용 선교사
전북 김제의 가난한 농부의 집안에서 5형제 중 넷째로 태어났다. 부모님께서는 딸을 원했는데 아들이 또 태어나서 실망을 하셨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출생환경 가운데서 태어났지만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성장하였다. 부모님께서는 농사일을 하기에
논으로 밭으로 매일매일 바쁘고 피곤한 삶을 사셨다. 그래서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부모님의 일을 도와서
일을 하면서 학교를 다니고 공부를 해야 했다. 학교를 다녀와서는 소를 끌고 나가 풀을 먹이는 일을 해야
했고 소 밥을 끓이고 밥을 주는 일을 하면서 부모님을 도우며 성장하였다.
어려서부터 일이 몸에 베어 있어서 그런지 지금도 일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초등학교 때부터 일을 한 생활이 중학교와 고등학교 대학을 다닐 때까지 집안 농사일을 도와야만 했다. 농사일은 몸이 매우 피곤한 일이다. 김제 호남평야의 그 넓은 들에서 일을 하며 성장한 나는 몸이 피곤하였지만 마음은 늘 평안함이 있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는 면 단위에서 읍 단위 시내에 있는 중학교에 들어가게 되어서 자전거로 학교 통학을 하였다. 중학교를 다니면서는 신문배달을 하기도 하였고 영어과외수업을 받기도 하면서 공부에 열심을 다했다. 그렇지만 부모님의 기대만큼 공부를 잘 하지 못하여 부모님이 원하시는 상업고등학교 진학을 못하고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내 인생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고등학교 학생이 되어서 이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교회를 다닌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 1학년때 중, 고등부 여름수련회에서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개인적으로
영접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 이후 나는 교회가 좋아졌고 예배드리는 일요일이 기다려 졌다. 매일 성경을 읽게 되었고 학교 수업이 마치면 교회에 들려서 기도하고 집으로 왔다. 정말 열심 있는 교회생활을 하게 되었다. 고 3학년이 되어서 나의 인생을 설계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 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기도원에 가서 물도 마시지 않는 단식기도를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세상의 직업을 가질 것인지
성직을 가질 것인지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기 원했다. 왜냐하면 고등학교 때 내 별명이 양목사님이었기
때문이다. 3일 동안 거의 죽음의 시간을 보내면서 마지막 순간에 마태복음 28장 19절 -20절 말씀으로
확신을 주셨고 목회자가 되는 것을 결정하였다.
그래서 대학은 일반대학을 진학하였고 대학원을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하기로 하고 대학생활을 하게 되었다. 대학생활에서는 CCC활동을 하면서 김준곤 목사님의 메시지를 들었으며
심천수련회에서 선교사로 헌신하기를 초청하셨을때 “누가 선교사로 나갈 것인가?” 라는 질문에 내가 라고 대답을 하였고 선교사의 꿈을 꾸면서 대학생활을 하였다. 대학생활 하면서 군복무를 마쳤고 캠퍼스 복음전도와 CCC활동에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신학대학원 진학을 준비하였다. 그렇지만 부모님의 소원 대학졸업을 하고 돈을 벌어서
가정살림에 도움을 주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효도를 하고자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신대원에 들어가지 않고
직장을 구해 직장생활을 1년정도 하였다. 그러는 중에 일본에
노동자로 돈을 벌러 가는 기회가 있어서 일본에 갔다. 공항에 도착하여 이민국 심사를 받게 되어 줄을
서고 함께 갔던 동료들은 다 통과해서 입국이 되었고 맨 마지막에 서있었던 나는 이민국 직원에 걸려서 공항감옥에서 하룻밤을 지새우고 다음날 첫 비행기로
추방을 당하였다. 일본에서 입국거절당한 것이 신학교를 가야 하는 확증으로 알고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음을
깨달았다.
이후 김제에서 서울로 상경하여서 형님 집도 있었지만 여러가지 직업을 찾아 돈을 벌려고 하여 몇가지 직장생활 경험을
하였으며 이태원에서 신문배달을 하면서 보급소 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어려운 생활을 할 때 형님이 다니는 교회 목사님께서 신문보급소에서 고생하지 마시고 교회로 오라고 해서 교회에서
중,고등부 교사로 섬기면서 목사님께서 다니신 신학교 신대원에 입학하였다. 신대원 다니면서 신학생 사례비 10만원 가지고 생활이 어려웠다. 그래서 새벽기도를 마치고 강남에 있는 아파트 주민들 차량세차를 하는 알바를 하면서 신학교를 다녔는데 너무 피곤하고
수업을 잘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신학공부도 안되고 돈도 벌기 힘들었다. 결국 신학교를 포기하였다.
이렇게 사는 것을 보는 주변사람들이 중매를 서기 시작하여서 지금의 아내를 선을 보아 만나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존귀한 아내임을 확신하고 결혼을 29살에 하게 되셨다.
결혼하여서 1년후에 아들을 낳게 되었으며 교회에서 전도사로 봉사하면서
선교훈련을 2년동안 받게 되었고 주말부부생활을 하면서 힘든 선교훈련을 받게 되었다.
선교훈련을 마치고 33세에 필리핀 선교지로 파송을 받아 나오게 되었다. 신대원 2학년 1학기
중간에 그만두어서 필리핀에서 신대원을 계속 공부해서 목사 안수를 받아야만 하였다.
필리핀에 와서 영어를 공부하였고 신대원에서 공부하면서 2년동안 또
주말 부부를 하였고 아내는 두 아이의 엄마로서 필리핀대학교에 입학하여 공부를 하였다.
이런 모든 어려운 과정들을 통과하면서 신대원을 졸업하고 목사안수를 드디어 받게 되었고 그렇게 원하던 목사선교사가
되었다.
신대원을 다니면서 필리핀신학교 교수이자 총회장님이신 현지목사님이 추천해 준 불리한 실랑 지역에 집을 렌트 하여
교회를 시작한 것이 필리핀선교사역의 시작이었다.
그 이후 교회를 개척하고 신학교를 세우고 교회당을 짓고 하면서 필리피노들과 함께 23년의 세월을 살고 있다.
결혼 28주년 그리고 나이 56세를
살면서 뒤돌아보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간섭하심이 나의 인생에 주인이 되어주셨음을 고백한다.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해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오늘도 주님의 제자사역을 위하여 하루하루 승리하며 살아가고
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