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게 빛나는 색채의 나날들
1964년생. 일리노이 공과대학 핵 물리학박사. 국립공주대학 물리학 박사. 한국표준과학 연구원. 수원대 학교 물리학과 겸임교수. 국립암센터 연구원. 아주대 의과대학 연구원 등…. 이밖에도 이준서 씨의 이력 은 화려하다. 물리학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그가 화가로 변신한 것은 6년 전 일이다. 최근 그동안 모아온 작품으로 첫 개인전 ‘힐링(Healing)’을 열면서 동네 유명인이 되었다.
그를 만나기로 한 동네 카페 한쪽 벽이 이준서 씨의 작품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림에 매료된 카페 주인의 발상이란다. 휠체어를 탄 그가 주인이 놓아준 받침대를 밟고 카페 문턱을 넘어섰다. 두 발로 땅을 밟을 때와 달리 휠체어를 탄 후 넘어야 할 턱은 수없이 많았다. “사람들의 편견과 따가운 시선, 그리고 온 몸의 통증을 견디게 해 주는 일이 그림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스물 셋, ‘진행성 근이양증’ 이라는 진단을 받기 전까지 그는 자신감 넘치는 청년이었다. 질환은 골 격근이 점차 변성되고 위축되면서 힘이 빠져 사십 을 넘기기 힘들다 했다.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이 유도 모르고 치료법도 없다는 희귀질환의 진행을 늦추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한방치료와 운 동을 꾸준히 한 때문인지 진행은 더뎠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것은 치료를 위한 목적이 컸다. 그곳에서 의학공부를 하다 핵물리학 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동안 직장생활과 결혼 생활을 무리 없이 해냈다.
수원대학 재직 시 질병이 악화되었다. 지팡이에 의지하던 몸을 더 이상 지탱하지 못하고 휠체어로 바꿔 타는 사이 마음도 자꾸만 주저앉았다. 심한 통증과 우울증에 시달리며 고통을 견디기 위해 학교 사무실 옆에 있는 나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평소 관심이 많았던 그림은 근육에 무리 가 가지 않아 안성맞춤이었다.
독학으로 그린 그림이 전문가에게 인정을 받자 자신감이 생겼다. 2016년 퇴직 후에는 본격적으로 그림에 몰두하였다. “어차피 가만있어도 아프니까 생산적이고 창 의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 낫다”고 말하는 그는 회화나 목공 등 하고 싶은 장르가 다양하다. 그는 매일 집 옆에 있는 중앙공원을 산책한 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다 니는 사이 물리학자로서 연구 대상으로만 보이던 세상의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다. 보는 것과 그리는 것은 또 달랐다. 주로 재활용 목판에 밝은 색 아크릴 물감을 사용해 구상화나 풍경화를 그리는데 특히, 상상 속 공간을 마음대 로 드나들 수 있는 풍경화를 즐겨 그린다. 다른 사 람들도 그림을 보고 위로를 받았으면 하는 마음으 로 그동안 선물한 그림이 100여 점은 족히 넘을 것 이다. 요즘은 팔에 힘이 빠져 보조 장치를 괴고 그림을 그린다. 붓을 잡지 못할 때를 대비해 발가락에 붓 을 끼워 그리는 연습도 해 본다. 그릴 수 있는 한 그림 작가로 살고 싶다는 그는 “언제 숨이 막힐지 장기가 멈출지 알 수 없지만 창작 활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고 힘주어 말했다. 가을에는 중앙공원에 전시를 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 글 : 강향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