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은 서양의 문화와 역사를 해석하는 키워드입니다. 문리대에 입학해서 국문학자 김윤식 교수의 특강으로 감명 깊게 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한신대학교 신학과 김경재 교수가 간결하게 요약한 글이 있기에 소개합니다.
서양 문화의 양대 기둥은 유대교의 헤브라이즘과 그리스의 헬레니즘이다. 헤브라이즘은 신 중심적, 초월적, 영적인 성향을 지닌다, 반면에 헬레니즘은 인간 중심적, 합리적, 현세 중심적 성향을 지닌다. 이 둘은 서로 대립하면서도 보완 발전하면서 오늘날의 서양 문화를 만들어 왔다.
철학적 측면에서도 서로 다르다. 헬레니즘은 근본적으로 합리주의를 본질로 한다. 우주와 인간사 모든 것은 어떤 합리적 법칙이나 원리로서 질서 잡혀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인간의 정신은 합리적 질서에 맞도록 인성을 도야함으로써 폴리스 국가처럼 이상적인 인류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헤브라이즘은 역사는 새로움을 향해 전진한다고 본다. 유대인들이 본래 유랑 생활을 경험한 백성이기 때문에 역사란 약속이나 비전이 실현되어 가는 과정으로 본 것이다.
정치사상 곧 바람직한 공동체에 대한 견해에서도 크게 다르다. 그리스인의 폴리스는 본질적으로 귀족정치체이며, 인간들은 이념적으로 평등하다고 말하지만 현실적으론 차별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한다. 그리스의 법정신은 폴리스가 혼동과 무질서로 빠지지 않도록 지켜주는 경찰기능이다, 반면 유대인 예언자들의 정치사상은 자유와 평등을 토대로 하는 공동체의 실현에 있다. 인간은 하느님 앞에서 철저히 평등하고 존엄하며, 왕일지라도 평민의 인격 존엄성과 권리를 박탈할 수 없다고 본다.
<구약성경>의 계약사상과 모세율법의 정신은 철저하게 사회의 약자를 보호하고 그들의 생존권과 인간존엄성이 권력이나 이념체계에 의해서 침해당하지 않도록 수호하는 데 있다. 민주정치는 정의를 갈망하는 정신과 불의에 빠지기 쉬운 인간의 경향 때문에 필요한 것이라고 본다. 결론적으로 헤브라이즘은 자본주의 사회의 자유로운 창의성과 사회주의가 꿈꾸는 정의로운 평등성을 동시에 살려낸 사회를 꿈꾼다.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은 서로 대립하고 보충하면서 유럽 문화의 원동력을 이루고 있다.
[김경재 : 헤브라이즘의 본질은 무엇인가? 한신학보 2007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