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 민족 12지파 가운데에 유다(Judah) 지파 출신인 다윗은 30세이던 기원전 1010년에 왕위에 올라 40년간 재위했다. 다윗 왕은 싸움마다 승리하여 영토를 크게 확장하고 왕국의 수도를 헤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했다. 다윗 왕이 정복한 에돔(Edom)왕국에는 거대한 소금 들판과 구리광산과 철광산이 있었다. 다윗왕은 고가의 교역품인 소금, 구리, 철을 대량으로 생산하여 수출로 막대한 이익을 얻어 부국강병의 기틀을 닦았다.
다윗 상 ; 미켈란젤로 作, 1504년, 피렌체
다윗의 별 ; 유대민족의 상징
다윗 왕은 부하 장수 우리야(Uriah)가 전쟁에 나가 있는 틈에 그의 아내 밧세바와 간통하여 밧세바가 임신하였다. 다윗 왕은 우리야를 가장 치열한 전쟁터로 보내 우리야가 전사하자 밧세바를 왕비로 삼았다. 밧세바가 낳은 아들이 솔로몬이다.
솔로몬은 다윗왕의 둘째 아들로 21세인 기원전 971년 혹은 기원전 970년에 왕위를 계승하여 40년간 재위했다. 솔로몬 왕은 페니키아의 도시국가와 동맹을 맺고 육로와 해로를 통한 무역을 적극적으로 확대했다. 무역을 위해 대규모 선단을 건조하고 북쪽으로 유프라테스 강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페니키아의 협력으로 히브리 상인들은 지중해 무역에 활발하게 진출했다. 두 나라의 합동선단은 홍해를 지나 인도에 도달하고 중국까지 항해했다. 이 시기에 페니키아인들은 지브롤터 해협을 지나 브리튼까지 진출하여 청동 제조에 필요한 주석을 대량으로 수입했고 아프리카 대륙을 일주했다. 활발한 무역을 통해 솔로몬 왕 시절의 히브리 왕국은 인근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가 되었다.
팔레스타인과 고대 교통로
당시에는 일부다처제였고 율법도 이를 금하지 않았다. 솔로몬 왕은 즉위 후 제일 먼저 이집트 파라오의 딸과 결혼하고 이집트와 동맹을 맺었다. 그 뒤에도 군사동맹과 무역확대를 구실로 주변 여러 나라 왕들의 누이나 딸들과 혼인을 거듭하여 700명의 아내와 300명의 첩을 거느렸다. 이 때문에 예루살렘에는 외국 출신 아내들이 믿는 이교의 우상들이 즐비했다. 말하자면 신앙의 자유를 허용한 셈이다.
구약성서에 따르면 솔로몬 왕은 즉위 네번째 해(forth year)에 야훼 신전을 건축하기 시작했다. 학계에서는 이 해를 기원전 966년으로 보는데 논란의 여지가 있다. 솔로몬 왕이 기원전 970년에 즉위했다면 기원전 966년은 즉위한 해로부터 다섯 번째 해이고, 기원전 971년에 즉위했다면 기원전 966년은 즉위 여섯 번째 해이다. 솔로몬 왕은 7년 만에 야훼 신전을 완공하고 다시 13년에 걸쳐 궁전을 건축했다. 모두 웅장하고 장엄한 규모로 주변 모든 국가와 군왕들을 압도했다고 한다. 그밖에도 여러 아내들을 위한 별궁을 지었으며 각처에 요새와 성을 건설하고 군대를 대폭 증강했다.
거듭된 공사로 막대한 인력이 소요되자 백성들을 강제노역에 동원했다. 우선 옛 가나안 토착민의 자손과 필리스틴 사람 등 예속민을 동원하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동족인 히브리인까지 동원했다. 그러나 자신이 속한 유다 지파에게는 강제노역을 면제했다. 유대교의 율법은 동족을 노예로 삼을 수 없도록 명시하고 있어서 솔로몬의 처사에 원성이 자자했다.
솔로몬 왕은 무역으로 벌어들인 막대한 돈을 20년 넘게 계속된 토목공사와 군사력 확장에 탕진하였고 국고가 바닥나자 무거운 세금을 부과했다. 그래도 페니키아에 빚진 물품대금을 지불할 수 없게 되자 접경지대의 20여개 촌락을 통째로 넘겨주었다. 민심이 극도로 이반했다.
기원전 931년 혹은 기원전 930년에 솔로몬 왕이 죽고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위에 오르자 북부의 10개 지파(르우벤, 시므온, 단, 납달리, 갓, 아셀, 잇사갈, 스불론, 에브라임, 므낫세)는 강제노역과 세금을 줄여달라고 요구했다. 왕이 거부하자 이들은 따로 떨어져 나가서 사마리아를 수도로 이스라엘 왕국을 세우고, 솔로몬 왕에게 반대하다 쫒겨났던 여로보암을 왕으로 추대했다.
이리하여 다윗 왕과 솔로몬 왕이 속했던 유다 지파 그리고 첫 번째 왕 사울이 속했던 베냐민 지파만 남게 되었다. 그 중에 유다 지파의 인구가 많았기에 이를 유다왕국이라 불렀다. 이후 남북 사이에 격심한 전쟁이 벌어졌으며 적대 관계가 지속되었다.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
기원전 722년 이스라엘 왕국이 아시리아 제국에게 멸망하여 10개 지파는 역사에서 사라졌다. 유다 왕국은 기원전 586년에 신바빌로니아 제국에게 멸망하여 일부는 바빌론으로 끌려가고 일부는 타국으로 도주하였다.
솔로몬 왕의 사치와 허영으로 백성들은 도탄에 빠졌고 유다 지파는 거의 모든 동족으로부터 버림받아 나라가 분열되었다. 그로 인한 동족상잔으로 국력이 약화되어 모두 멸망하고 말았다. 솔로몬 왕은 히브리 민족의 황금시대를 이룩한 군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히브리 민족의 멸망을 초래한 폭군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로몬 왕이 지혜로운 군주로 성경에 기록된 것은 히브리 민족 12지파 중에 유다 지파만 살아남아 성경을 완성하였고 나머지 다른 지파들은 소멸되었기 때문이다. 유다 지파가 남긴 기록을 무비판적으로 수긍하는 것은 넌센스라 할 것이다.
솔로몬 왕의 궁정
솔로몬 왕의 재판 ; 피터 루벤스 作, 1617년, 덴마크 코펜하겐 국립미술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