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어리장갑
민문자
아직도 정신력이 좋으셔서 안방정치하시는
친정어머니의 자식 사랑은 참 남다르시다
서른다섯 꽃다운 나이에 홀로 되어
4남매는 남보다 엄하게 기르셨지만
손자녀와 증손자녀에게는 봄바람이시다
“옛날에는 오래 산 노인의 옷을 지니면 수명장수한다는
말이 있었다, 내손 거친 돈으로 교복을 해 입혀라”
손자녀가 열한 명, 증손이 열두 명인데
중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마다
교복 사 입으라고 축하금을 주셨다
백수가 가까우시니 당신 건강이 염려되시는지
또박또박 ‘영재’ ‘영서’라고 쓴 봉투를 내놓으시며
아직은 4학년 6학년인 내 손자에게 맡아두었다 주라고 하셨다
그리고 제 아비가 초등학교 때 끼던 장갑이라면서
눈에 익은 벙어리장갑 한 켤레를 내놓으셨다
형님댁과 친정은 바로 아래위 아파트였다
내 아들 입양하여 형님 아들 된 아이가 중학생이 되자
아이의 불필요한 옷 정리를 하다가
함께 버리는 벙어리장갑을
어머니가 보시고 주워다 간직하셨다네
아! 어머니 장롱 속에서 삼십 년을 잠자고 나온 장갑
어머니는 나보다도 더 가슴앓이를 하셨나 보다
진즉 멀리 이사 가서 얼굴 한 번 보도 못한 증손들인데
그놈들도 당신 핏줄이라고 이토록 마음을 쓰시다니
눈시울이 뜨겁고 가슴이 뭉클하다
아범을 불러 장갑을 전해주었더니 바로 카톡 전갈이 왔다
벙어리장갑이 작은 녀석 손에 딱 맞는다며
잘 끼고 다니라고 했단다
아이들은 우리 부부를 작은할아버지 작은할머니라고 알고 있을 텐데
내 어머니를 제 자식들에게 어떻게 설명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