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 박힌 남자가 내 속으로 들어온 것은 그날부터였다.
터부가 실용적 측면에서 비롯됐다는 걸 전혀 눈치 못 챈 어린 시절, 밤늦게 리코더를 불거나 손톱을 깎으면 엄마는 겁을 주었다. ‘야밤에 피리 불면 뱀 나온다’, ‘자기 전에 손톱 깎으면 엄마가 일찍 죽어.’ 죽는다는 말에 나는 손톱깎이를 내려놓곤 했다.
밤이면 바늘을 가지고 잘 놀았다. 동전 지갑이나 오재미 놀이에 쓰일 천 주머니를 만들었다. 할머니가 현란한 손동작으로 이불 홑청을 꿰매던 날, 나는 마론 인형의 치마를 어설프게 기우고 있었다. 엄마가 비밀스럽게 말했다.
“해 떨어지고 바느질하면 자는 사이에 바늘이 몸에 박힌대.”
우리 동네에는 구세군이 운영하는 보육원이 있었다. 거기에 나보다 세 살 많은 오빠가 오밤중에 바느질을 하다, 몸속에 바늘이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불 위에 떨어진 줄 모르고 자다가 그리됐다고. 나는 바느질을 멈추고 물었다.
“병원 가서 빼면 되지.”
몸에는 수많은 땀구멍이 있는데 하필 바늘 굵기와 딱 맞는 데에 들어가 아프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오빠도 몰랐다. 어느 날 제기차기를 하는데 허벅지가 찌릿하더란다. 통증은 머리, 가슴, 옆구리 할 것 없이 온몸 구석구석 옮겨 다니며 오빠를 괴롭혔다. 엑스레이를 찍고 나서야 바늘이 박힌 걸 알았다. 핏속으로 돌아다녀서 수술할 수도 없다고 했다. 엄마는 혀를 끌끌 찼다.
“바늘이 장기를 들쑤시고 다니는 바람에, 몇 달 전부터는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 병을 앓고 있다더라.”
어린애가 성인병에 걸린 건 순전히 바늘 탓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 오빠처럼 되기 싫으면 낮에만 바느질을 하라고.
바늘이 박히는 걸 왜 몰랐을까. 꿈을 꾸었을 거야. 딸기 아이스크림을 물고 회전목마를 타는 꿈. 새콤한 과육이 터지면서 말이 솟구치는 찰나에 바늘이 몸속을 파고들었던 거지. 나는 보육원 오빠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하게 느껴졌다.
바늘을 잡을 때마다 오빠가 궁금했다. 엄마에게는 묻지 않았다. 혹시라도 죽었다고 할까 봐.
한동안 잠잠했던 오빠는 어느 쨍한 봄날에 내 기억 회로 귀퉁이에서 나타났다. 열아홉, 앞으로도 별 볼 일 없이 살 거라는 염세적인 사고에 내가 붙들려 있던 시기였다. 오빠는 많이 말라 있었다. 약으로 조절이 안 돼 인슐린 주사를 맞고 있었다.
“몸 안의 바늘은 친숙해졌어. 내가 갚을 수 없는 생의 부채야. 발가락 하나를 잘라내는 수술도 순순히 받아들였지.”
잘못한 거라곤 고작 이부자리에서 바늘을 가지고 논 것밖에 없는데, 너무 한 거 아니냐고, 대신 소리쳐주고 싶었다.
수술하기 전날, 오빠는 포장마차에 들어갔다. 무뚝뚝한 주인이 내어주던 불어터진 바늘 같았던 국수 가락.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지던 밤. 수많은 바늘이 올챙이처럼 은빛 꼬리를 흔들며 핏속을 떠도는 꿈을 꾸었다. 순하게 울던 묽디묽은 여린 피, 어린 사내···.
꽤 오랫동안 보이지 않던 오빠가 다시 등장한 건 내가 중환자실에 누워 조용히 흘리던 눈물방울 속에서였다. 오빠는 나이 보다 늙어 있었다. 이미 한쪽 눈의 시력을 잃은 상태였다. 그런 남자에게도 미래를 함께 꿈꾸려는 여인이 나타났다. 청각장애가 있는 어여쁜 아가씨였다. 부모 형제와 의절해가며 결혼했어도 착한 남편이 있어 행복해했다.
오빠는 밥벌이를 위해 벌을 쳤다. 꿀벌의 이동 경로를 따라 여기저기 떠도는 생활이 계속됐다. 아내가 곁에 없었다면 외로움을 견디지 못 했을 것이다. 별을 매만지듯 벌을 다뤘다. 퉁퉁 부은 손에 꿀을 발라 아내와 아가의 입에 자주 묻혀주었다. 두 별이 환하게 웃었다. 사내는 그 누구도 부럽지 않았다. 가끔 찾아오는 바늘의 통증쯤은 벅찬 행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카시아 향기가 온 산을 물들였다. 사내는 정신없이 바빴다. 며칠 콜록거리던 아이 몸에 갑자기 신열이 올랐다. 시내 병원에 가려면 하루 품을 버려야 했다. 좀 지나면 나을 줄 알았다. 감기에 불과했으니까, 행복했으니까, 행복할 때는 불행이 보이지 않으니까. 점심을 먹던 아이가 축 늘어지자 더럭 겁이 났다.
마침 시내에 나가는 이웃에게 아이와 아내를 부탁했다. 가끔 필요한 물건도 사다 주는 친한 아저씨였다. 차에 탄 지 십 분도 지나지 않아 아이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아내는 빨리 병원에 가달라고 손짓 발짓으로 울면서 애원했다. 아저씨는 연신 가속 페달을 밟았다.
보이지 않는 한쪽 눈에 날아들던 수많은 벌, 별처럼 빛나던 꿈의 보풀 아니, 사내의 짧은 행복은 하얀 연기로 흩어졌다.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끔찍한 교통사고에서 가벼운 부상만 입은 아저씨가 사내 앞에서 오열했다. 화장장에 아내의 가족들이 찾아와 멱살을 잡았다. 기꺼이 맞았다. 바로 병원에 갔어야 했다는 후회가 아파서, 너무 아파서, 주먹이 날아와도 아프지 않았다.
아내와 아들을 아카시아 숲에 묻었다. 그 밤 사내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울부짖었다. 불꽃놀이가 일듯 하늘이 번쩍였다. 굵은 바늘 같은 빗줄기 속에서 한참을 서 있던 사내가, 제 살에 손을 넣어 바늘을 움켜쥐었다. 아버지의 아버지, 할아버지의 할머니, 그들이 생의 강을 건너며 남긴, 핏속 문신에 박힌 바늘을. 피를 건너 피에서 떠도는 결코 삭지 않는, 평생이 모자라 죽어서도 어린 핏속에 심어주고 갔던 그 바늘. 결코 살아서는 뺄 수 없는 신의 새끼손가락을.
오늘 나는 문득, 내 속에 있는 바늘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