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 밑 구멍으로 들어선 고양이가 심하게 절뚝인다. 앞발 하나를 제대로 내딛지 못한다. 가까이 가서 보니 머리 쪽 털은 뭉텅이로 빠져나갔고 발엔 피가 난다. ‘또 당했군.’ 벌써 몇 번째다. 녀석을 눕히고 피 난 곳에 연고를 발라주니 따끔한지 야옹소리를 낸다. 마치 패잔병처럼 목으로 기어들어가는 소리다.
‘끼이냐아오옹, 끄으먀우웅’ 고양이 전쟁, 영역다툼은 그 기묘한 소리부터 시작된다. 두 마리가 서로 마주보며 등을 하늘로 곧추세우고 기싸움을 한다. 밤에 들으면, ‘귀신소리가 이런 건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다. 초등학교 때 배운 한글의 우수성, 모든 소리를 표현할 수 있다는 말은 고양이 싸움소리 앞에선 너무 무색하다. 어쨌든 부상을 당했어도, 녀석이 돌아온 건 여전히 자기 영역을 지키고 있다는 의미다.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한 지 1년 반이 넘었다. 개하고도 잘 지내서 사료만 평상위에 놓아주면 되었다. 동네를 제 맘대로 돌아다니다 배고프면 들어와 먹고 잠은 헛간에서 잤다. 쥐도 몇 마리 잡아, 보란 듯이 창문 앞에 놓는 바람에 기겁을 하긴 했지만 ‘제 밥값’ 과시라고 생각했다. 천장에서 뛰놀던 쥐도 좀 잦아드니 좋았고, 마당에서 뒤집기로 귀염을 떠는 녀석을 보는 일도 심심치 않았다.
이름을 지어 몇 번 불렀으나 반응이 없어 그냥 ‘야옹’하고 부르니 화답을 하길래 야옹이라 불렀다. 암놈이면 나중에 새끼가 늘어나 골칫거리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수놈이었다. 꼬리 아래 양쪽으로 땅콩처럼 툭 튀어나온 것이 있어 암놈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수놈 표식이었다.
서너 달이나 지났나. 덩치가 큰 노란 고양이 한 놈이 나타났다. 처음엔 대문 밖에서 어슬렁거리더니 이내 야옹이가 없는 틈을 타 사료를 먹어치우는 듯했다. 그 즈음부터 고양이들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집 대문을 열면, 재빨리 나와 반겨주던 야옹이가 지붕위에서 야옹거리기도 하고 담장위에서 망을 보기도 했다. 개도 야옹이와 한편으로 노란고양이를 보면 짖고 으르렁대지만 묶인 몸으로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노란 고양이를 볼 때마다 소리치고 쫒아냈지만 야옹이 부상은 그치지 않았다. 태평성대를 누리며 비만이었던 몸이 야위어지기까지 했다.
출장을 다녀와 며칠 만에 집에 오니 야옹이가 보이지 않았다. 평소 2배 양의 사료를 담아놓은 바가지는 다 비어 있었다. ‘결국 영역싸움에서 지고 쫒겨났나?’ 이삼일이 지나도 소식이 없어 , 다른 고양이 오지 못하게 사료그릇을 치워버렸다. 또 이삼일이나 지났을까, 이른 아침에 야옹이 소리가 났다. 나가보니 녀석이 대문 밖에서 이리저리 눈치를 보며 부르고 있었다. 얼마나 불쌍하던지, 제 집도 맘대로 못 들어오고 문 앞에서 우는 모습이라니!
야옹이를 안아다 사료를 먹이고 한참을 놀아주었다. 이후부터 고양이 소리만 나면 득달같이 달려나가 노란 고양이를 쫒아냈다. 하지만 점입가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새끼 고양이 서너 마리가 떼를 지어 집 안팎을 휘젓고 다니고, 야옹이는 그 등쌀에 한쪽으로 피해 다니기 일쑤였다. 생각해보니, 평상에 놓는 사료를 먹으러 몰려드는 탓이었다. 어쩔 수 없이 고양이 밥그릇을 안으로 옮기고 우리 야옹이가 올 때만 창문을 열어 먹을 수 있게 만들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창문 안쪽, 부엌입구에서 사료를 먹기 시작하니 고양이는 점점 안에 머무르려 하였다. 맨 발로 사방천지, 하수구까지 돌아다니던 녀석 아닌가. 한구석에 머물렀다 가는 것도 찝찝한데, 쉬고 자는 영역을 점점 넓히려 하다니! 어떤 날은 부엌에서 네발 뻗고 넉살좋게 몇 시간씩 자기까지 했다. 아내는 불쌍하다며 자꾸 곁을 내주고, 심지어 방문을 닫지 않은 어느 날은 안방 이불 위까지 파고들었다. 나는 기겁을 하고 야옹이를 밀어냈지만, 녀석의 자연스러운 태도로 보아 여러 번 그런 것이 틀림없었다. 감싸는 아내에게 뭐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고양이들의 전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야옹이가 여유있게 창문을 넘다들면 승기를 잡은 때이고, 야옹이가 눈치를 보아가며 이른 아침에나 들어오는 때는 고전하는 시기이리라. 나는 대부분 사료만 먹이고 야옹이를 밖으로 내보낸다. 부상당한 날은 어쩔 수 없이 방안에서 재우기도 하지만, 흙 묻은 발이 여간 찜찜한 게 아니다. 아내는 ‘밖의 흙이 더러우면 얼마나 더럽겠어, 그냥 드나들게 내버려두라’며 야옹이에게 관대하다. 고양이들 전쟁에 부부간에 아웅다웅할 판이다.
길고양이들까지 거둬들이자니 사료값이 만만찮을 뿐 아니라 더 큰 전쟁판을 만들 수도 있어 선택지가 아니다. 우리집 야옹이만 편들자니 여러 가지로 번거롭다. 재빠른 길고양이들을 처치할 다른 방법도 마땅히 없기 때문에, 아내 말처럼 나를 내어주고 내 습관이나 편견을 털어버리면 고양이들 전쟁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으려나. 참, 고양이와 함께 살기 어렵다. 고양이 싸움에 내 등터지겠네,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