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5일. ‘갈등관리모임’ 마지막 모임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개인적인 느낌을 써보고자 합니다.
‘갈등관리모임’은 6월21일부터 시작하여 10월 25일까지, 7회에 걸쳐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동안 갈등의 여러 유형들, 사례와 해결 방안 등에 대해 여러 주체들이 강의와 토론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결과 갈등을 해소하는 최선의 방법은 결국 소통이라는 단어로 이어졌지요.
여기서의 소통이란 것은 단순히 상대의 입장을 듣거나,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여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신뢰를 기반으로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진실하게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로의 입장 차이를 인정하고, 합리적인 방안을 도출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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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에서의 갈등은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주로 교육의 3주체라 불리는 학생, 학부모, 교사와의 사이에서 나타납니다.
물론 같은 주체(학생과 학생, 학부모와 학부모, 교사와 교사 등) 사이에서도 갈등은 발생합니다.
그간 여러 모임에서, 이 3주체 사이의 갈등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을 다루어 왔는데, 이번 ‘갈등관리모임’에서는 4번째 주체라고 볼 수 있는 공무원(교육부, 교육청 등)도 갈등의 요소에 포함하여 좀 더 폭넓게 다루었습니다.
특히 3주체 사이의 갈등 중 상당 부분이, 공개되지 않는 정보, 불완전한 규정과 지침과 매뉴얼에서 비롯된 것이고, 이러한 현상의 기저에 공무원들의 업무처리 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습니다.
7회에 걸친 강의와 토론 속에 나왔던 많은 이야기들을 다 소개해 드리기는 어렵고, 마지막 토론에서 길게 다루었던 이야기 중 두 가지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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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공무원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 모 학교에서 발생한 교장과 학부모 사이의 갈등이, 운영위원회 업무에 대한 해석이 필요한 단계로 진행되었는데, 담당 공무원의 유권해석이 불합리하다는 지적에 대해, 문제를 인정하지만 개선하지는 못하겠다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 다른 사례로, 어떤 매뉴얼 상의 모순에 대해, 명백한 모순(매뉴얼대로는 실행이 불가능한 상황)을 인정하지만, 그것을 시정하지 않고 해왔던 대로(스스로 만든 매뉴얼 위반) 하겠다는, 이해하기 힘든 모습도 있었습니다.
이 외에도 더 많은 사례가 있지만, 일단 이 두 가지를 놓고, 모임에서 나눈 이야기는,
① 잘못된 지침 혹은 불완전한 유권해석에 ‘저항하고 이를 고쳐나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공무원의 모습은, 워낙 사례가 많아서, 충분히 일반화할 수 있다.
② 담당 행정에 있어서의 문제를 시정하고 모순을 제거하는 것을, 자신의 업무로 생각하지 않는다. 넓게 보면 공무원의 임무로 볼 수 있지만, 하지 않아도 징계나 처벌대상이 아닐 경우, 그대로 방치한다. 그리고 그 피해는 교육 현장의 갈등으로 발현된다.
③ 해당 공무원 개인의 문제라고 보기에는 너무 광범위하여, 시스템의 문제로 보아야할 것 같다. 특히 보직의 순환주기가 짧은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매뉴얼이나 지침은 이전에 만들어진 것들이 대부분인데, 이를 수정하려면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업무를 파악하는 것에도 많은 시간이 걸리고, 당장 마주친 업무를 처리해 나가는 것도 벅찬 상황이기 때문에, 들여다보고 고칠 시간이 부족하다. 현실적으로 외면하게 될 수밖에 없다.
정도로 정리되었습니다.
둘. 학부모들의 잘못된 의식에 대한 이야기도 길게 다루었습니다.
① 담임교사, 학부모회장 등에게 밤늦은 시간까지 개인 전화로 개별 민원을 쏟아내는 학부모가 많습니다. 자기 아이와 관련된 문제는 모두 긴급한 용건이라고 생각하는 의식은 개선되어야 합니다.
② 내 아이만 생각하는 이기주의가 너무 만연되어 있습니다. 아이들 간의 사소한 다툼이 큰 갈등으로 진행되는 것에는 학교(교사 등)의 대처 문제도 있지만, 학부모들의 대응 방식이 더 큰 문제입니다. 무조건 처벌을 원하는 것은, 교육의 참된 의미를 생각할 때, 올바른 의식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③ 강제로 시키는 봉사활동도 문제가 있지만, 학부모 총회 등의 참여가 저조한 것도 문제입니다. 그리고 상세한 정보를 잘 알려주지 않는 학교도 문제지만, 관심을 가지지 않는 학부모들도 문제입니다. 교육의 주체라는 의식이 없어 보입니다.
그동안 학교(교사)의 불합리한 모습에 대한 학부모 입장에서의 불만을 주로 이야기하고, 그에 대한 학교의 입장을 이야기하는 기회가 많았는데, 이번에는 숨어 있는 원인(공무원의 행정 처리 등)과 학부모들의 의식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이야기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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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제 개인적인 생각을 적어보고자 합니다.
그동안 이 모임에서의 키워드는 갈등과 소통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소통이 갈등 해결의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소통은 문제 해결의 본질을 가로 막는 처방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1. 아무리 열심히 소통을 하려고 노력을 해도, 양쪽(학부모 vs 교사, 혹은 학부모 vs 학부모)이 다 열린 마음으로 다가선다고 해도, 가치관의 차이가 너무 크면 진심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교육에 대한 가치관의 차이가 좁혀질 수 있도록 교사나 학부모 모두 전반적인 의식의 개선이 필요합니다.
또한 시스템의 이해가 필요합니다.
교육행정 시스템, 교육 과정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소통 하자는 노력은 피로감만 더 크게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관점에 따라, 진정한 소통이란 것이, 가치관의 차이를 좁히고, 시스템의 이해를 포함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기본적인 조건(가치관의 차이를 좁히고, 시스템을 이해할 수 있는 개선된 의식)이 있어야 소통의 과정 혹은 결과로서 이해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소통 시도 이전에, 의식 수준의 개선과 시스템의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2. 그리고 정보의 공개와 공유가 필요합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갈등의 대부분이 정보의 부족에서 발생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흔히 양쪽의 이야기를 다 들어보라는 것이 바로 정확한 정보를 획득하는 과정인 것이죠.
교육 현장에서의 갈등은 정보가 필요한 쪽과 정보를 내어줌에 인색한 쪽의 갈등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갈등이, 정보만 있으면 발생하지 않는 일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정보를 감춤으로 인해 갈등이 발생하고, 갈등이 발생한 이후에 소통하려는 노력이 맞는 걸까요? 아님 애초에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여, 갈등을 줄이는 것이 맞는 걸까요?
3. 한편으로는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공무원들의 문제입니다.
그들은, 노력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시스템이라고 항변합니다.
결국 시스템의 문제라고 결론이 나버리면, 아무리 소통하려 노력해도 해결은 불가능해 집니다. “어쩔 수 없다. 미안하다. 이해해 달라.” 고작 봐달라는 이야기 밖에는 할 수 없습니다. 친해지고 나니 참는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렇게 참게 되면 그것이 소통의 결과라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질 수 있을까요? 해결된 것인가요, 아님 덮은 것인가요?
(이를테면 층간 소음 문제도, 이웃이 친해지면 갈등이 줄어듭니다. 참을성이 커지는 거죠. 소통의 결과라고 봅니다. 본질은 건축의 문제인데, 해법은 자꾸 엉뚱한 곳으로 갑니다. 본질을 해결하지 못하면, 계속해서 소통에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노력)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스템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소통은 본질적 처방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4. 마지막으로 규정, 매뉴얼, 지침의 개선이 필요합니다.
잘 정비된(공정하고 합리적인) 규정과 매뉴얼과 지침이 있고 이를 적용한다면, 애초에 갈등이 발생할 요인이 거의 사라집니다.
규정과 매뉴얼과 지침이란 것의 본질이, 갈등을 방지하고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약속 혹은 절차인 것이죠.
갈등의 출발은 합의되지 못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공정하고 합리적인 규정일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합의에 이르게 함으로써 갈등이 발생할 여지를 없애는 것입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갈등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며, 그 해결은 소통”이라는 명제에 대해 동의하기가 조금 어려워집니다.
갈등의 원인이 되는 요인들은,
가치관의 차이, 시스템의 이해 부족, 정보의 부족, 불합리한 시스템, 규정의 미비 등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런 요인들이 제거되지 않고 남아 있는 상황에서의 소통을 통한 갈등의 해결이란 것은,
본질적 해결이 아닌 미봉책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동종의 갈등이 반복해서 발생할 것이며, 그 대가(사회적 비용)를 치러야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소통은 만병통치약도 아니고, 오히려 문제 해결의 본질을 가로 막는 처방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육 주체들의 의식을 개선하고, 시스템을 알려주고, 정보는 공개하고(정부 3.0의 기조), 불합리한 시스템은 개선하고, 규정과 매뉴얼과 지침을 정비한 후에야, 비로소 소통이 올바른 처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통은 사람을 믿는 것(신뢰)에서 출발합니다.
사람은 불완전합니다. 사람의 감정은 아직 이성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영역입니다.
사람을 믿는다는 것은 감정의 영역입니다.
가족과 친구를 믿고, 사람의 선의를 믿는 것은 개인과 감정의 영역입니다.
개인의 영역이라면, 믿어도 좋습니다. 믿어야 하고요.
사회의 영역에서는, 선의를 믿으면 안 됩니다. 그래야 사람을 잃지 않습니다.
이성의 영역에서는 사람을 믿지 않고 시스템(약속)을 믿습니다.
계약서가 존재하고, 담보가 필요한 것이죠. 그런 것(약속)이 없다면 갈등이 극에 달할 것입니다.
교육현장(학교)도 사회의 영역입니다.
시스템을 믿어야 합니다.
올바른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좋은 학교장에 의존하고, 좋은 교사, 좋은 학부모, 좋은 공무원을 바라는 것은 불완전한 소망입니다. 좋은 사람은 영원히 머무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좋은 시스템을 만들고 믿어야 합니다.
영화 ‘신과 함께’에서 성주신이 말하죠.
“나쁜 사람은 없다. 나쁜 상황이 있는 것이다.”
선의가 배신하는 것이 아니라, 나쁜 상황이 배신하는 것이고,
그 나쁜 상황이 바로 나쁜 시스템인 것이고, 우리는 그 시스템과 싸워야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갈등관리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