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내음 가득 차오르고
찬찬히 일어난 미루나무
얼굴을 씻던 좁다란 신작로 길에
돌아갈 수 없는 추억만 남아
뜨거운
햇살 아래 눕는 여름이에요
가뭄으로 가슴 타들던 농민들을 뉴스로 보면서
어린 적 부모님께서 애태우시며 밤잠 설치시던
그 아련한 모습도 함께 보았어요
그러다 우기에 들고 비라도 내리면
말라죽은 콩이며 들깨, 참깨 등을 빈자리에 옮겨 심느라
하루해가 짧다 하시며 종일 밭머리에
엎드려 땀 흘리시고
철없던 우린 해마다 꽃모종을 얻으려
이집저집을 돌아 꽃밭 가득 꽃모종을 심느라 분주했었죠
집 앞 그리 크지 않은 밭 둘레에 코스모스를 빙 둘러 심어 놓고
가을이 되면 어떤 모습이 될까 궁금해했어요
키
순서대로
제일 앞에는 채송화를 심고 그 뒤에는 봉선화
다음은 맨드라미 그리고 국화가 옆으로 서고
도화꽃 그다음은 해바라기, 그
옆 울타리를 따라
나팔꽃을 심었었죠
먼 기억으로는 두어 종의 꽃들이 있는데
아, 접시꽃과 나리꽃, 족두리꽃이였지 싶습니다
날마다 아침이면 제일 먼저 꽃밭으로
달려가서
얼마나 자랐는지 어떻게 변하는지 살피며
꽃들이 피길 기다렸지요
부모님께서는 심어 놓으신 농작물이 무럭무럭 잘 자라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풍년을 기다리시는 동안
우린 꽃들과 과일들이 어서
자라서 피고 익어주길
손꼽으며 목을 빼곤 했지요
아득하게 멀어진 시간이 싸아하게 가슴을 훑으며
지나간 모든 것들이 그리움과 보고 싶음으로 남는다는 그때는 몰랐지요
한 걸음으로
달려갈 것 같은 손 내밀면 닿을 것 같은데
최고의 더위를 자랑하듯 기승을 부리던 더위도 스스로 목을 숙이나 봐요
새벽이 내려서는 산골 동네에서
모든 것을 잠시 내려놓고 사나흘 깊은 잠으로 들고 싶어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