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월자
📮 대백색형제단 :
간단하게 아침을 마친 후 나의 특기인 설거지를 후딱 해치우고 방으로 들어 오자 산돌뱅이가 도자기 주전자에 차를 끓여 가져왔다. 숭늉처럼 구수한 맛이 온 몸을 자극한다. 참 좋다!
"인간의식을 넘어 초월의식에 든다는 건 근원의식과 합일한다는 말인데, 이 경지에 들면 의식 뿐 아니라 몸 세포도 변합니까?"
"몸 세포가 변하는게 아니라 의식이 몸의 낮은 차원 상태에서 풀려나 우주의 순수 의식과 파동을 공유하는 거지."
"불교의 수행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렀다 함은 근원의식에 도달한 것으로 봐야 합니까?"
"우선 불교의 수행은 대승과 소승의 목표가 확연히 다르네. 소승이 '열반'을 위한 것이라면, 대승은 '깨달음'을 위한 수행이라고 할 수 있지."
"둘 사이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대승은 한번의 '깨달음'으로 궁극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소승의 수행을 얕보지만, 소승에선 대승의 깨달음을, 열반으로 가기위한 인식의 전환으로서 4단계의 첫 단계인 '수다원' 정도로 바라보지."
"소승의 4단계란 무엇인가요?"
"수다원 - 사다함 - 아나함 - 아라한 - 4단계가 있지. 신지학에서 말하는 대백색형제단의 입문 비전 5단계 중 4단계와 소승의 4단계는 동일하고, 마지막 초월자는 불교의 붓다의식과 같다네."
"대백색형제단 입문 제1비전과 소승의 1단계는 무엇인가요?"
"대백색형제단 제1비전 단계에 이른자를 '소한(Sohan)'이라 부르는데 이는 '성취한자'라는 뜻으로, 소승의 '수다원 (Sotapanna)'과에 이른 단계와 같네. 수다원이란 '흐름에 들어간자'라는 뜻으로 '무엇이든지 생겨난 것은 소멸한다'라는 깨달음에 이른 단계로, 이 단계에 이르면 ...
영성을 잃지 않으며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고
타인을 위한 봉사의 관점으로 살고
평균 7회 정도 윤회를 더한다고 하지."
"제2비전에 이른자는 소승의 사다함 (Sakadagami)과 같은데, '한번만 돌아 오는자'로 꼭 한번의 윤회가 필요하다고 하지. 이 단계에 이르면 ...
물질계의 일상 생활 속에서 아스트랄 차원의 의식을 소유하고
수면, 명상 중에는 멘탈계 차원의 의식을 갖게된다고 하지."
산돌뱅이는 주전자에서 차를 따라 내 잔에 따라 주고는 차의 향을 음미하듯 찻잔을 코앞에 갖다대고는 찻잔을 살살 돌려가며 향을 음미하고 있다.
"제3비전에 이른자는 소승의 아나함 (Anagami)과 같은데 '돌아오지 않는 자(불래)'라는 뜻으로 ...
원하지 않으면 물질계로 화신하지 않으며
일상 삶속에서 멘탈 차원의식에 있고
수면 명상 중에는 스피리추얼계 의식이 열린다고 하지."
"제4 비전에 이른자는 소승의 아라한 (Arahat)과 같은데 소승의 수행자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이기도 하다네.
일상 삶 속에서는 스피리추얼계 의식,
수면 명상 중에는 니르바나계 의식이 열린다고 하지."
📮 초월자 :
"이렇게 도식으로 풀어서 보니 이해가 참 쉽군요. 그렇다면 제5비전 의식인 초월 의식은 어떤 상태를 말함 입니까?"
"소승의 수행에서는 굳이 5번째 단계를 말하지 않지만, 대백색형제단 입문비전은 5번째 단계가 있네. 그 단계에 이른자를 '초월자'라고 부르는데 이는 불교의 '붓다'에 해당하네. 이 단계에 이르면 니르바나계의 의식이 일상화되고 인간 영성진화의 궁극점에 도달한 것이네."
"결국 남방불교의 수행이나 신지학의 비의 수행이나 같군요. 그렇다면 붓다 또한 이런 과정을 거쳐 대각을 얻은 건가요?"
"그렇다고 봐야지. 그가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새벽별을 보고 갑자기 깨달은 것이 아니라 지독한 고행 과정을 거치면서 의식이 정화됐고 결국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임계점에 이르러 '대각'을 얻었다고 봐야지."
"그렇다면 초월의식에 든다는 것은 근원 의식과 공명한다는 것인데, 신지학에서 말하는 비전의 입문을 통과한 후 영계 존재들과의 교류를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합니까?"
"우리는 사유하는 관점에 따라 영계와 소통을 하네. 예를들면, 기독교 신자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류하는데 전혀 의심을 하지 않고, 불교 신자들은 기원을 통해 부처님과 소통하는데 아무 문제를 제기하지 않네. 마찬가지로 대백색형제단의 영적 상위 존재들인 하이어라키들과의 소통은 그들의 관점과 신념에서 이뤄지는 것이므로 그들의 교류가 사실이냐 거짓이냐는 아무런 의미가 없네."
큰 깨달음 (붓다의 깨달음 같은게 아닌 자각)이 밀려왔다. 산돌뱅이는 나를 소중한 제자처럼 큰틀에서 가르치고 있었다. 그는 장돌뱅이 마냥 산으로 돌아댕기는 하릴없는 '산돌뱅이'가 아니었다. 갑자기 집으로 가야한다는 생각이 일었다. 마음에 일어난 대로 발길을 돌리면 그뿐! 산돌뱅이에게 공손히 인사를 올리곤 밖으로 나왔다. 초봄의 쌀쌀함이 얼굴에 묻어난다.
첫댓글 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네요. 아마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은 스토리가 진부하다고 할 겁니다. 왜냐면 산돌뱅이 영감이 뭔가 신비한 것을 보여주길 바라서겠죠.... ㅎ 여기서는, 산돌뱅이와 나눈 나용이 사실은 핵심입니다. 얼핏보면 별거 아닌 얘기들이지만, 이 얘기를 관통하려면 상당한 공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제 시간내서 나머지 얘기도 쓸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