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연 "양" 인가? "염소" 인가?
이스라엘 성지 순례를 떠났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때 우리를 안내 해 주신 신부님은 칠십이 넘으셨던 노신부님이셨다.
이집트에서 이스라엘로 가던 버스 안에서 차를 잠깐 세우고
갑자기 신부님이 밖을 보라고 해서 보았더니
완만한 경사가진 들에서 양들이 풀을 뜯고있는 목가적 풍경이 아름다웠다.
그때 신부님께서 손으로 가르치는 곳을 보니
염소가 양 가운데 섞여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었고
양들은 염소를 피해 이리저리 흩어지고 있었다.
신부님께서 설명하셨다.
양들은 본성이 게으르고 움직이기를 싫어해서
배가 고파도 있는 자리에서 잘 움직이지 않는다고 한다.
염소는 양과 정반대로 성질이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이리저리 다니며 닥치는대로 뿔로 받는 성질을 갖고 있어서
양들 속에 박아 놓는다고 하셨다.
양들이 받으며 돌아 다니는 염소를 피해서 도망 다니다 보면
그곳에 새풀이 있어서 양들이 양식으로 삼을뿐 아니라,
자연히 운동이 되어 건강하게 성장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그러면 받으러 돌아 다니는 염소가 양에게 귀찮고 원수같은 존재인가?
고마운 존재인가? 라고 물으셨다.
우리는 삶 안에서 나에게 상처를 주고 힘들게 하는
없었으면 좋을 "염소과" 에 속한다고 미워하는사람은 없는가?
섭섭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는가?
시어머니만 아니면......
남편만 아니면....
내가 소속된 단체의 누구만 아니면....
직장에서도 누구만 없으면....
나는 (우리는) 행복 할 텐데....라는 말을 자주한다
어느 공동체에서도 나를 힘들게하는
염소같은 사람이 반드시 있다.
그래서 저 사람이 없으면 우리 공동체는 잘 되어 갈텐데라는
말들을 많이 하고 듣는다.
공동체는 가정 공동체나 신자 공동체뿐만 아니라,
일반 사회, 직장 공동체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늘 "양과" 에 속하는 사람인가?
누구인가는 나를 "염소과" 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없는가?
염소같은 그들로 인해 인내를 배우고 겸손을 배우고
이해하는 마음이 커가고 또한 그들로 인해 기도하게 되지 않는가?
신앙을 갖게된 동기가 되지 않았는가?
그러면 상처를 주고 힘들게하는 그사람들은
나에게 정년 미워하고 섭섭하게 생각할 염소인가?
나로 하여금 덕을 쌓아 가게하는 동기를 주지 않았는가?
내 영혼의 생명에도 도움을 주는 은인이 되지 않았는가?
우리는 양과 염소를 가를 수 없다.
그 누구도 "양과"이다, '염소과" 이다 라고 판단 해서도 안된다.
나는 어떤 사람에게는 "양과"에 속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염소과"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염소과" 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위해 축복의 기도를 하자.
우리는 서로에게 고마워 하고 사랑하고 너그럽게 이해하고 수용해야만 한다.
그리고 우리의 삶 안에서 "양과" 와 "염소과" 로 이루어져 가며
서로에게 성숙한 인격을 위해 도움이 되고
신앙이 성장 하도록 섭리 하시는 주님께 감사 해야하지 않을까?
출처: 허윤석 신부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서
추신: 즐겨 찾는 카페에 이글이 있어 옮겨 왔습니다.토시 몇개는 수정 하였습니다.
허윤석 신부님에 대해서도 네이브를 통해 검색도 해 보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