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상인들의 후원으로 르네상스가 도래했다. 그리고 그 르네상스는 가난한 사람들의 고혈을 빨아서 모은 이자로 지탱되었다. 문예사조 뒤에 숨은 상인들의 존재는 찬란한 문화융성기에 이렇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대부업을 하면서 이탈리아 상인들은 계약마다 라틴어로 문서를 남겼는데, 여기엔 누가 얼마를 빌리고 언제까지 갚는다는 상세한 사항들이 실려 있다. 그런데 그 계약서 끝에는 언제나 ‘그라티스 에트 아모레(gratis et amore)’라는 문구를 달아놓았다. 뜻은 ‘은혜와 사랑으로,’ 즉 ‘이자를 받지 않고 공짜로’ 돈을 빌려준다는 뜻이다. 물론 거짓이다. 대놓고 이자를 받을 수 없었던 고리대금업자의 고심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사람이란 모름지기 공짜를 좋아하는지 그라티스(gratis), 이 단어는 오늘날 영어에도 남아있다.”
---「5장, “지중해 교역이 유럽에 남긴 것”」중에서
“코미디라는 장르는 그리스에서 처음 만들어졌는데, 코미디언들은 당시 권력을 가진 자, 힘 있는 자들을 풍자해서 웃기는 사람이었다. 사회를 선동하고 세상을 비꼬는 이들이었기 때문에 항상 부자와 권력자들의 눈엣가시였다. 그래서 코미디언들은 늘 도시를 쫓겨나 지방을 유랑하곤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보면, 코미디의 유래를 잘 알 수 있는 구절이 나온다. 최초로 희극(Komodia)이란 장르를 개발했던 그리스인 작가들은 통치자들의 비난과 시민들의 야유를 피해 도시에서 공연을 하지 못하고 시골마을(Kome)을 돌아다녔기 때문에 코미디가 탄생했다. 자 이게 무슨 말일까? 코미디는 본래부터 매우 불온한 장르라는 말이다. ... 단테의 『신곡』이 코미디라는 말은 그것이 중세의 체제를 뒤흔드는 불온한 개념을 담고 있었다는 뜻이다.”
---「7장, “단테가 그린 천국과 지옥”」중에서
“인간을 흔히 호모 사피엔스라 부른다.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다. 그런데 사유의 존재는 자신의 생존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데 골몰해왔다. 이런 점에서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다. 모 예능 프로그램에서 유행했던 ‘나만 아니면 돼’라는 외침. 하지만 그 외침으로 호모 사피엔스를 다 규정할 수 없다. 인간은 홀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호모 사피엔스는 타인의 생존까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공생하는 인간,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기적 유전자(selfish gene)를 말하는 현대 생물학자들의 결론은 인간의 이타성이 발현되는 지점까지 진화한 인간이 지구의 패자(敗者)가 되었다는 것이다.”
---「9장, “이기적 유전자, 이타적 행동”」중에서
“인생에 도움 되는 것도 아니고 당장 효율성을 높이는 것도 아닌데 인간인 끊임없이 놀고자 한다. 그런 인간, 호이징가(Johan Huizinga)가 말한 호모 루덴스(homo ludens)야말로 인공지능 시대 인간이 인간성을 가질 수 있는 절대적 무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기계라면 상당히 궁금해 하겠지만, 기계는 놀이를 통해 즐거움과 행복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인공지능은 즐거움과 행복의 정의만 내릴 뿐 놀이에 수반하는 감정을 느낄 수 없으므로 인간의 놀이행위를 신비스럽게 바라볼지도 모른다. 결국 미래의 이상적인 인간상은 역동적인 일꾼이 아닌 빈둥거리는 한량, 이곳저곳 놀러 다니는 백수가 아닐까?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학자들도 모두 실업자였듯이. 혼자 놀면 범죄자가 되지만 다 같이 놀면 철학자가 될 수 있다!”
---「11장, “인공지능 시대, 인간의 미래”」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