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양명은 시종 목표가 뚜렷했고 의지가 강인했다. 여러 차례 파란과 우여곡절을 겪긴 했지만 열두 살 때부터 성인이 되겠다고 결심한 이래 서른이 넘을 때까지 한 번도 그 목표를 바꾼 적이 없었다. 무술 연마, 병법 연구, 도사와의 교류, 참선 수행…… 이 모든 것이 다 성인의 꿈을 향한 노력이었다. 강인한 의지가 있었기에 그는 흔들림 없이 목표로 나아갔고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포호사 선승과의 대화 이후 양명은 그 스스로도 이제는 더 이상 방황하거나 망설이지 않고 한층 더 꿋꿋하게 성인의 길을 향해 내달릴 수 있었고, 좀더 심오한 정신세계를 구축하게 되었다.
---「제3장 나만의 길」중에서
호되게 곤장을 맞은 데다 대여섯 달 정도의 감옥 생활을 했고 또 좌천까지 당한 왕양명이었지만, 그 와중에 목숨이나마 건진 것은 천운이자 기적이었다. 출옥 이후 용장 임지로 떠나기 전 그는 준비물을 챙기기 위해 먼저 고향에 한번 들러야겠다고 생각했다. 길은 멀고 몸은 불편했지만 그런 고달픔보다는 뭔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졌다. 누군가가 그를 미행하고 있었다. (…) 만약 사실이라면 왕양명의 목숨은 경각에 달린 셈이었다. 그는 도중에 휴식도 취하지 않았고 한시도 경계심을 늦추지도 않았다. 밤에 쉬고 낮에 이동하거나 그 반대로 하기도 했다. 하루 만에 그는 전당강錢塘江 북쪽 기슭에 도착했다. 강 너머 고향이 눈앞에 보였다. 이때 줄곧 미행해오던 자가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노골적인 추격이 시작된 것이다.
---「제5장 구사일생」중에서
왕양명이 여릉 현령을 지낸 불과 7개월 만에 그는 일련의 긴급 사태를 적시에 잘 처리했다. 예컨대 백성 집단 시위와 소송 사건, 가뭄과 전염병의 재난, 화재 및 도적 떼 사건 등이었다. (…) 이 7개월의 현령 재임을 통해서 그는 자신의 정치적 역량과 애민 정신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그가 민생을 가장 우선시하여 백성의 생활 질서를 재편하고 바로잡는 데 주력한 사실은 바로 그의 탁월한 정치적 안목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는 결코 개인적 치적이나 치부에 연연해하지 않았다. 이러한 정치적 탁견이 일생 동안 일관되게 반영되었다는 것은 향후 그의 행적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어느 지역으로 부임하든 현지의 정치와 민생의 장기적 안정을 도모하는 데 열과 성을 다했던 것이다.
---「제7장 지행합일」중에서
전투 과정에서 왕양명은 적의 전투 의지를 마비시키기 위해 곧잘 첩자를 활용하거나 거짓 정보를 흘리곤 했다. 특히 ‘장남 전투’가 교착 상태에 빠졌을 때, 그리고 ‘이두 전투’에서 이 첩자와 거짓 정보 활용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후일 왕양명이 주신호朱宸濠의 모반을 평정하는 과정에서도 이 전략은 더없이 요긴한 효과를 발휘했다. ‘전쟁은 남을 속이는 게임’이라거나, ‘기만술은 전쟁의 필수 전략’이라는 말을 흔히 쓰듯이, 왕양명은 자신의 군사적 지혜를 통해 이 기만술의 효과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적의 전투 의지를 마비시킴으로써 당시 관군은 ‘적의 의표를 찌르는 급습’이라는 결정적인 방안을 창출해낼 수 있었다.
---「제10장 이두 평정」중에서
왕양명의 사상이 삶의 궤적을 따라 부단히 변모해왔다는 사실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생활 범주가 확대될수록 그의 사상 또한 확대되어 갔다. 온갖 고난, 예컨대 반란 평정을 위한 전투라든지 유언비어가 난무할 때 더더욱 인간의 본심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절감했다. 모욕을 감내하면서도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던 지난날, 그는 ‘용장오도龍場悟道’ 이후 자신의 사상 체계를 한결 공고하게 다졌다. 이를 두 글자로 요약한다면 바로 ‘양지良知’. 여기서부터 그는 자신의 완벽한 사상 체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제14장 치욕 속에 받은 사명」중에서
성인의 꿈을 향한 그의 의지는 단 한 번도 동요된 적이 없다. 젊은 시절, 병법을 연마하지 않았다면 훗날 그가 과연 그 엄청난 군사적 공훈을 이룰 수 있었을까? 도불교의 연구가 없었다면 독특하고도 심원한 그의 심학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그의 위대한 공적과 사상이 있었기에 그는 지금껏 ‘삼불후三不朽’의 명성을 인정받고 있다. 왜 왕양명을 위대한 인물이라고 말하는가? 다양한 사상을 충분히 섭취하고 융합한 다음, 이를 기반으로 자기 고유의 독창적 사상으로 승화시키고 또 그 사상을 충실하게 일상생활에서 실천했기 때문이다.
---「제18장 광명정대한 세상」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