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행복은 많이 먹어서 오는 것도 아니고, 많은 돈을 벌어 얻는 것도 아니다. 사실 철학의 행복은 쉽지 않다. 어렵다. 플라톤은 이상적인 국가를 현실에서 추구하는 가운데 행복할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은 이 땅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불가능한 것을 향하여 죽을 때까지 달려가자는 말로 들린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철학을 한다. 철학의 행복은 당장의 목적을 쟁취함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목적 너머에 있는 더 큰 미래와 진리를 향하여 나아가는 삶의 여정에서 온다. 남들이 미친놈이라 소리쳐도 상관없다. 스스로와 진리 앞에서 당당하면 된다. 주변의 조롱과 비난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지성과 합리성 그리고 치열한 궁리함을 믿고 쉼 없이 앞으로 나아갈 용기가 필요하다. 때론 홀로 가지 않고 함께 가자 소리칠 용기도 필요하다. 이 땅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곳을 향하여 함께 가자 소리칠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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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 없이 순수한 자아란 없다. 수많은 타자와의 만남 속에서 지금의 ‘나’라는 존재가 있는 것처럼, 이슬람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와의 교류 속에서 ‘유럽의 것’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물론 이슬람의 많은 것은 또 그리스와 인도에서 왔다. 이와 같이 정통이란 수많은 ‘이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철학과 인간의 역사에서 ‘순수’란 없다. 우리가 정통으로 생각하는 르네상스, 그 가운데 이슬람이 있다는 것도 이렇게 생각하면 이상하게 여길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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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컴의 유명론은 현실의 공간에서 감각되는 사실을 너무나 당연한 현실이라 한다. 반면 실재론은 현실에서 경험할 수 없는 초월적인 추상들을 실재로 믿으라 한다. 그것이 본질이라면서 말이다. 오히려 현실의 아픔이 가상이라 말한다. 이 아픔은 천상을 향한 당연한 길이라 말하면서 말이다. 이런 식의 논리는 한때 사람들을 기만하는 좋은 수단이었다. 이렇게 힘든 현실이 차라리 거짓이고 사후의 천국이 더 나을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주기에 좋았다. 현실의 이 잔혹한 아픔에 마취제와 같은 역할을 했다. 하지만 마취제는 치료를 하지 못한다. 결국 마약과 같은 것이 될 뿐이다. 상처가 썩어가고 있지만 아프지 않게 만들고 아픔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오컴의 눈에 당시 교회의 신학과 철학은 그러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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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노는 무지개와 같은 다양한 색의 아름다움을 보았다. 우주는 서로 다른 성질의 다양한 색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존재한다. 각각의 빛은 저마다 각자의 개성을 유지한다. 빨강은 빨강으로 자신의 본질을 유지하고 그 통일성을 포기하지 않는다. 주황 역시 주황의 본질을 포기하지 않는다. 자기 가운데 통일성을 유지하며 존재한다. 그런데 그 각각의 서로 다름이 무지개 가운데 공존하고 있다. 브루노는 이와 같이 우주도 동일한 것들의 통일성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각각의 통일성이 무한한 다수성으로 존재한다고 보았다. 브루노는 ‘모나드monad’라는 개념을 가져와 이를 설명한다. 모나드는 스스로 단일성을 유지하며 더 이상 나누어지거나 분석되지 않는 것이다. 자기 가운데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는 존재론적으로 가장 기초적인 단위다. 서로 다른 수많은 통일성이 다수성을 유지하며 우주를 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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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한포기도 신이다. 함부로 무시 받아야 할 존재는 없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신이다. 신과 신성함은 우리의 밖에 있지 않다. 부당하게 평범함을 지배해온 권력은 우리의 일상을 조롱했다. 종교와 국가의 권력자는 자신들이 신에게 더 가까운 우등한 존재이며 백성은 그저 열등한 존재라고 무시했다. 많은 백성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스스로 멸시하며 자신을 극복되어야 할 무엇으로 판단했다. 그 판단이 부당한 우등함의 자만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이단아 스피노자는 바로 이러한 자기 부정을 거부한다. 우리의 삶은 오직 현재를 살기 위한 것으로 긍정되어야 한다. 자신의 삶을 긍정하는 이성의 자발성이 스피노자의 렌즈로 보는 참다운 세상의 본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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