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1956년,
221분)
The Ten
Commandments
감독 세실
B.
데밀
출연 찰톤
헤스톤,
율
브린너,
엔
백스터
1924년
세실 B.
데밀
감독은 <십계>를
<고대편>과
<현대편>으로
나누어 이미 영화화
십계 (1924년/현대판)
1956년
영화 <십계>는
같은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된 작품
감독은 성경의 내용에 충실하게 제작하기 위해
성서 연구학자들을 동원하여 동서고금의 문헌자료를
수집하여
고증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의
탄생부터 어른 되기까지의
30년의
기록을 찾아 다녔고
영화의 로케를 위해 이집트 사막에 새로운 도시를
만들고
스핑크스가 웅크리고 있는 광경을 보던 현지 주민들이
자기 조상들이 다시 내려온 줄 알았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1957년
아카데미 7개
부문 노미네이트 특수 효과상 수상
구약성서의
《출애굽기》를
영화화한 불후의 성서 영화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에 이르는 출애굽 여정을 그린 작품
장대한 스케일과 박진감 넘치는 화면으로 개봉
당시 큰 화제를
낳으며1956년
전미 박스오피스 1위로
흥행에 성공한 종교영화의 최고걸작
노장
세실 B
드밀
감독이 재시도해 가장 성공한 영화
“이
영화의 주제는 신에 복종할 것인가?,
람세스 같은 인간에
지배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인가?
신에
대한 영혼인가
이런 갈등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영화<십계>
오프닝
나레이션과
불기둥이 이집트 전차부대를 막고
홍해가 갈라지면서 강을 건너가는 장면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이자 영화사에 남을 명장면
하나님을 대변하는 이스라엘의 모세와
모세가 말하는 그들의 신과 싸워야 하는
이집트의 왕 바로의 대결은
찰톤 헤스톤과 율 브리너의
불꽃튀는 연기 대결로
바이블 속 인물들이 영상으로
훨씬 더 실감나게 재연 된다
감독은 구상시 스스로 로마에 가서
미켈란젤로 구조 동상 모세상을 예비 조사
이를 통해 배역의 이미지를 가다듬어
외모가 적합한 사람을 찾았다고 한다
그래서 캐스팅 된 배우가
‘찰톤
헤스톤’이다
이후 찰톤 헤스톤은
‘벤허(59)’와
‘엘시드(61)‘등
다수의 종교영화에 캐스팅 된다
영화
‘십계’와
세실 B
드밀
감독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ollywood
Foreign Press Association)에서
수여하는 시상식으로 그 영향력이 아카데미상까지 이어지는 권위있는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스필버그(2008),워렌버핏(2007),
안소니
홉킨스(2006)와
같이 해마다 영화 분야에서 세운
큰 공로를 인정받아 받는 상이 있다
그 상은 미국 헐리우드 영화 초창기 가장 성공한 영화 제작자이자
명감독이었던 세실
B
드밀
(Cecil
Blount De Mille) 의
이름을
그대로 딴 세실
B
드밀상....이다
매사추세츠 주에서
출생,
미국
영화의 최고 개척자 중 한 사람으로
사망 전까지
제1선에서
끊임없이 정력적으로 영화를 제작하여
평생
70
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
12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어머니가 생계를 위해
여자들을 위한 학교와 극단을 설립하면서
어려서부터 연기와 극단의 메니지먼트로 활약했던
그는
1914년
헐리우드에 감독으로 입성하여 제작한
장편영화‘스쿠와맨’이대중에게 사랑을 받아
크게 히트시키면서 인기를 끌기 시작하여
연이은 히트작으로 헐리우드의 실력자로
자리매김한다
무성 영화시대에 드밀은 호화 찬란한 의상과 세트로
관객들의 시각과 흥미를 이끄는 화려한 연출력이
돋보였으나
1923년
모세와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에 관한 무성영화 형태의
<십계>의
제작 전후 그의 작품은 전환기를 맞이한다
이후 예수의 생애에 관한
“왕중왕”(1927)과
클레오파트라
등의 대서사극들의 연이은
히트로
제작비를 넘는 수익을 올려
파라마운트사가
‘데밀왕국’이라
불리기도 한다
성경에 기초한 그의 또 다른 위대한 작품은
“삼손과
데릴라(Samson
and Delilah)”인데
이 영화는 삼손이
블레셋 사람들의 성전을 무너뜨리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 장면에 대해 드밀은
“이
모든 영예는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사사기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영화를
만들기 위한
가장
위대한 자료는 성경이다”
라고
말했다
드밀 감독은 아시아와 유럽을 휩쓴 전운 속에서
흔들리는 미국의 시대상을 반영하며
미국 국민의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서부개척사를 다룬 영화를 제작하기도 한다
'십계'의 캐스팅 될 당시 율
브리너
텔레비전 세대가 도래하면서
TV에
밀린 ‘스크린’의
복권을 목표로
스스로의 인생을 건 왕국이었던 영화를 위해
1952년
‘지상최대의
쇼’를
제작하였고
이 영화를 통하여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다
하지만 그의 영화 인생의 마침표를 찍은 영화는
따로
있다.
42세의
나이에 찍었던 ‘십계(1923)’를
다시 제작하기 위해 역사의 고증을 받고
‘모세’의
이미지에 가장 적합한 배우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1956년
75세의
나이에 그의 인생 최고의 작품인
영화
‘십계’를
다시 완성하고 그로부터 3년
후
그의 시신이 할리우드의 공동묘지 인장되며
세계 영화에 길이 남을 영화인으로 삶을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