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드라이브 마이 카> 영화를 봤습니다. 극장에서 보고 싶었지만 가까운 개봉관 찾기가 힘들어 못보고 있다가 OTT 에 올라왔기에 얼른 봤지요. 러닝타임이 무려 179분인데다 액션도 아니고 특별한 사건도 없는 잔잔한 드라마 서술이니 흥행은 당연히 안되었겠죠. 8만명 정도를 넘긴 걸로 나오네요.
무라카미 하루키 원작소설은 읽어보지 않았는데요, 영화는 삶에 대한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줘서 저는 감동적으로 봤어요. 극중 주인공이 스타 연극연출가인데요, 역시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아내와 겉보기에는 서로 사랑하며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어요. 그러나 부부의 마음 밑바닥에는 깊은 상처가 깔려 있고 애써 그 상처를 외면하며 살고 있었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치유하기 어려운 마음의 상처를 가진 사람들은 남은 날들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상처를 맞대면할 용기가 없어 회피해버리는 경우가 많지요. "나는 괜찮아" "내겐 아무 일 없어"를 되뇌이면서 말이죠. 그러나 치유되지 않고 가라앉아 있는 상처는 언제고 내 삶을 뒤흔들 수 있다는 걸....많은 작품들이 보여주었고, 우리도 잘 알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며 인상적이었던 건, 이 연출가가 체호프 희곡 <바냐 아저씨>를 연출하는 내용이 극의 중심부를 이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영화 속에선 연극 연습 과정, 대본 리딩 과정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요. 자연스럽게 이 희곡을 읽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이 작품은 사실 대학 연극부에서도 많이 공연하고 있는 작품이고, 우리에겐 <벚꽃동산>과 더불어 가장 많이 알려진 체호프의 희곡이 아닌가 싶은데요.
마침 안톤 체호프 탄생 150주년 기념이라고 해서 시공사에서 <체호프 희곡전집>을 멋지게 출간했네요. 그의 희곡 전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제게는 <바냐 아저씨>라는 제목이 익숙한데 여기선 굳이 <바냐 외삼촌>이라고 번역을 했더군요. 물론 극중에서 외삼촌이 맞기 때문에 정확한 번역이긴 해요. 그래도 왠지 바냐 아저씨 라는 제목이 더 친근하고 좋습니다.
이 작품을 읽으니, 비로소 왜 영화에서 <바냐 아저씨>가 그렇게 중요했는가를 알게 되고 영화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마흔 일곱의 나이에 돌아보니 가진 것도, 이룬 것도 없이 평생 일만 하며 살아왔던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바랬던 사랑마저 가질 수 없었던 바냐 아저씨. 중년의 절망과 슬픔이 서글프게 와닿았어요.
책에 나오는 대사를 옮겨 적어 봤습니다.
남들에겐 별처럼 보이는 의사 아스트로프도 원하는 사랑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 자신의 인생은 캄캄하고 어두운 숲길을 걷고 있는데 멀리 보이는 불빛 하나 발견할 수 없었던 쓸쓸한 삶이었다고 말하는 부분도 정말 쓸쓸했고요.
스물 네 살 어린 소냐가 그래도 이 어둔 삶에서 우리 삶을 이어가자, 라고 바냐 아저씨에게 말하는 대목도 매우 쓸쓸합니다. 아프고 고통스런 현실을 결코 피할 방법은 없고, 그러나 이 삶의 끝에 죽음에 이르고 나면 하느님이 우리를 위해 천국을 예비하실 거라 말하는 부분이 정말 슬펐습니다. 결국 현실에는 희망이 없다는 말이니까요.
그럼에도 "계속 살아가자"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체호프의 작품이 쓰여졌던 1800년대 후반 러시아의 삶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2020년대의 한국 사회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겠죠.
다음 번 북클럽에선 이 책을 꼭 낭독극으로 함께 읽어보자고....제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