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 치우기
“너네 아버지, 변비가 왔어. 똥이 차돌멩이처럼 굳어져서 간병인이 꼬챙이로 파냈어. 팠더니 쪼가리로 떨어지더래. 새카맣고 딱딱했는데, 거기 밥알이 박혀 있었대. 똥에 물기가 전혀 없는데도 냄새는 칼로 찌르는 것 같대.”(김훈 ‘내 젊은 날의 숲’ 중)
김훈은 유별나게 작품에서 똥을 자주, 아주 상세히 묘사합니다. 표현이 얼마나 사실적인지 책을 읽다 보면 똥냄새가 나는 것 같아 킁킁거리기도 합니다.
수필집 ‘연필로 쓰기’의 ‘밥과 똥’ 이야기엔 그의 똥 지론이 명확히 담겨 있습니다. “신분이나 계급을 가리지 않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든 성인은 하루에 200~300그램의 똥을, 1.2~1.5리터의 오줌을 눈다. 이것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나온다.” 모든 사람의 똥은 평등하다는 그의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어디 사람뿐일까요. 개도 고양이도 소도 말도, 살아 숨 쉬는 모든 생명의 똥은 평등합니다.
‘고목나무 단풍이 하도 예뻐서/ 사진기를 꺼내들었어/ 나무가 화면이 담기지 않아/ 뒷걸음질 칠 때/ 물컹,/ 개똥 밟았어// 으악,/ 똥 묻은 발로/ 엉기적 엉기적 걸었어/ 풀숲에 쓱쓱 닦았어/ 진흙에 뭉그적 뭉그적 뭉갰어// 어땠냐고?/ 구겼어/ 닦아도 구겼어/ 오래오래 구겼어/ 생각만 해도 우욱!/ 너, 똥 밟아봤어?(장영복 ‘똥 밟아 봤어?’)
사람 똥만큼이나 구린 개똥을 밟았으니, 그 기분 알 만합니다. 잔득 찌푸린 표정으로 엉기적엉기적 걷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옆에서 누군가 ‘개똥 밟으면 억수로 재수 없는데…’라고 한마디 거든다면 “우쒸, 망할놈의 개××” 하며 거친 말로 짜증을 낼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개는 똥에 대한 책임이 없습니다. 주인이 밖으로 데리고 나왔고, 걷다 보니 똥이 마려워 쌌을 뿐입니다. 사람이 먹은 만큼 똥과 오줌을 배설해야 살 수 있듯이 개도 제때 싸야 속 편히 활동할 수 있습니다. 밥만큼이나 똥은 중요하니까요. 개똥에 대한 책임은 개가 볼일을 본 후 치우지 않은 보호자에게 있습니다.
나는 매일 아침저녁 우리 집 강아지 벨(푸들·생후 11개월)과 산책을 합니다. 그 시간이 길든 짧든 배변봉투와 물티슈는 꼭 반드시 필히 기필코 챙깁니다. 강아지 배설물 뒤처리는 산책의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산책에만 열심이지 ‘(개)똥 줍기’엔 무관심한 반려인들이 있어 화가 납니다.
“내 새끼들 똥은 다 거름이 되니까 상관 말아요.” 코스모스 밭에 싼 개똥을 치우지 않은 보호자에게 “배변봉투 없으면 드릴까요?” 했더니 돌아온 말입니다. 어이가 없어 헛웃음만 짓고 말았습니다.
공원을 반려견 전용 화장실로 여기는 이들도 눈에 띕니다. 이들은 강아지가 똥을 싸면 흙이나 낙엽으로 덮고 그냥 갑니다. 똥이 담긴 봉투를 벤치 주위에 슬쩍 놓고 가기도 합니다. 내 집만 아니면 된다는 이기심에서 나온 행동이겠죠.
아동문학가 권정생(1937~2007)의 동화 ‘강아지똥’ 속 그 똥으로 착각하면 안 됩니다. 동화는 냄새 나고 더러워 따돌림당하는 강아지 똥이 민들레의 양분이 되어 새롭게 태어나는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현실의 강아지 똥은 그것과 거리가 한참 멀지요. 보는 순간 불쾌할 뿐만 아니라 바이러스 등 위생상 문제도 야기할 수 있습니다.
1000만 반려인 시대입니다. 그 규모에 걸맞게 의식도 성숙돼야 합니다.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만큼 내 이웃에도 예절을 지켜야 합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람은 개를 키울 자격이 없습니다. 반려인의 예절, 그 시작은 바로 ‘똥 줍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