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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게 집중(正定)합시다!
엉성하게 이어진 집에 비가 새는 것처럼
닦여지지 않은 마음에 탐욕이 스며든다. -법구경13게송
잘 이어진 집에 비가 새지 못하는 것처럼
잘 닦여진 마음에 탐욕이 스며들지 못한다. -법구경14게송
오늘 여러분과 함께 공부할 내용은 8정도(正道)의 마지막 여덟 번째 지분인 정정(正定) 즉 바르게 명상(冥想)하여 집중(集中)해 들어가 삼매(三昧)에 이르는 공부입니다.
정정(正定)은 인도어 삼마사마디(sammasamadhi)의 번역어로 ‘바른’의 뜻을 가진 삼마(samma)와 ‘집중’의 뜻을 가진 사마디(samadhi)의 합성어입니다.
불교수행의 최고 과정이라 할 수 있는 삼매(三昧)는 바로 명상을 통해 마음을 한 곳으로 몰리게 하여 집중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입니다. 이 공부가 제대로 되지 못하면 그 마음은 부스러진 바위덩어리가 얼기설기 모여 있는 것과 같아서 비록 바위이지만 탐욕이라는 빗물이 새어들 수 있다는 것을 게송(偈頌)으로 말씀하신 것이 바로 앞 구절입니다. 또 아무리 얼기설기 얽어 놓은 것 같지만 명상을 통해 집중된 마음의 상태인 삼매에 들게 되어 연기(緣起)의 진리를 깨달게 되면 그곳에는 바위 틈새를 시멘트로 발라 놓은 둑에 한 방울의 물도 스며들지 못하는 것처럼 조직을 약하게 하는 탐욕이라는 빗방울이 침입할 수 없다는 것이 뒷 구절의 의미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머릿속이 헝클어진 듯, 온갖 실타래가 얽힌 듯 복잡하여 일이 풀어지지 않을 때 눈을 질끈 감고, 머리를 세차게 흔듭니다. 그러면 잠시 조금이나마 정리된 듯한 기분이 듭니다. 어쩌면 우리가 하려는 명상의 공부도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머리를 아무리 세차게 흔들어도 그것은 기분 일뿐 실제로 일머리가 정리된 것은 아니지만, 명상을 통해 마음을 집중해서 삼매에 들게 되면 우리 마음 자체가 우주의 바람과 원리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절로 일머리를 알게 되고 실타래같이 얽혔던 관계가 실이 풀리듯 술술 풀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명상 공부입니다.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서 부처님의 말씀을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한글대장경을 읽는 것이므로 속으로 그 뜻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읽도록 하십시다.
“어떤 것이 바른 선정(正定)인가? 바른 선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세속의 바른 선정으로 번뇌와 집착이 있고 선취(善趣)로 향하게 한다. 다른 하나는 세속을 벗어난 성현의 바른 선정으로 번뇌와 집착이 없고 괴로움을 바르게 다하여 괴로움의 끝으로 향하게 한다.”『잡아함경』제28권 788경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공부해온 8정도의 다른 일곱 가지 지분에서도 나온 것처럼 여기에도 세속의 바른 선정과 세속을 벗어난 성현의 바른 선정이 있습니다. 세속의 바른 선정과 세속을 벗어난 성현의 바른 선정을 나누는 것은 바로 번뇌와 집착이 있느냐 아니면 없느냐와 괴로움 속에 파묻혀 사는 것이냐 괴로움의 끝까지 가서 괴로움이 없는 안온의 세계를 얻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세속의 선정은 그것을 아무리 잘해도 결국 중생계의 고통바다에 사는 것입니다. 세속을 벗어난 성현의 바른 선정은 괴로움의 끝까지 벗어난 적정(寂靜)의 세계에 드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미식가(美食家)가 오로지 음식만을 생각해서 꽃이나 나비, 집의 기둥이나 책상 돌아다니는 자동차까지도 음식으로 보이는 것도 대단한 집중력의 결과일 것입니다. 또 이성을 그리는 사람이 무엇을 보아도 상대방의 얼굴이 떠오르고 어떤 소리를 들어도 상대방의 목소리로 착각하여, 어떤 냄새를 맡아도 상대방의 냄새로 오인(誤認)한다면 그것 또한 삼매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 어떻습니까? 군인이 전장에서 적을 죽이기 위해 온 힘을 다해 공격을 가하거나, 온 신경을 집중해 매복(埋伏)경계(警戒)를 설 때의 상태도 집중의 정도가 대단할 것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상태를 불교의 공부에 적용해서 가르침을 주는 경우가 바로 참선(參禪)의 화두(話頭)를 타파하는 공부일 것입니다. 옛 스님들이 말씀하시기를 ‘고양이가 쥐를 잡듯’, ‘어미닭이 알을 품듯’, ‘칠십 노파가 외아들 생각하듯’오로지 그것만을 집중해서 생각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들 모두가 세속의 선정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자세하게 알아보도록 하기 위해 부처님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세속의 바른 선정을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보겠습니다.
“번뇌와 집착이 있고 선취(善趣)로 향하게 하는 세속의 바른 선정이란 어떤 것인가? 마음이 산란하지 않음(不亂), 흔들리지 않음(不動), 거두어들임(攝受), 고요함(寂止), 삼매(三昧), 한마음(一心)에 머무는 것을 일러 세속의 바른 선정이라 한다.”
『잡아함경』제28권 788경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비록 세속적인 번뇌(煩惱)와 집착(執着)이 있기는 하지만 중생(衆生)이 윤회하는 길에서 나쁜 세 곳인 지옥, 아귀, 출생의 3악도(三惡道)가 아닌 아수라(阿修羅), 인도(人道), 천도(天道)의 선취에 태어나게 하는 것이 바로 세속의 바른 선정입니다. 그것은 부단히 노력을 해서 일렁이는 호수의 표면이 고요해진 것과 같이 산란하지 않고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서처럼 아프락사스(Apraxas) 즉 움직이지 않음 그리고 어떠한 상태이든 간에 그것을 내 안으로 받아들임을 통해 서로가 방해하지 않음으로써 고요하게 되면 삼매의 상태에 이르게 되고, 그렇게 되면 한 마음에 머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선정의 공부는 세계의 어떤 종교지도자보다도 우리 부처님의 가르침이 가장 방대하고 가장 우수한 것입니다. 물이 말라버려 마른 땅에 버려진 물고기가 파닥거리는 것과 같이 집중되지 않은 우리 중생의 마음은 제 살 곳을 알지 못하고, 찾지 못해 이리저리 방향 없이 파닥대는 물고기와도 같습니다. 그 물고기 눈에는 얼핏 띈 푸른 잎이 물인가도 생각되고, 폴싹거리는 먼지가 파도인가도 생각되어 아무 곳이나 뛰어오르다 결국 물 한 방울 없는 곳까지 가서 죽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잘 집중된 마음은 우리가 명상을 하면서 집중하고자 하는 명상의 대상에 관심의 초점을 맞추어 그 대상과 온전히 하나가 되게 합니다. 이러한 마음의 상태는 바람 없는 램프의 속에서 고요히 타오르는 불꽃처럼 주위를 밝히지만 그 불꽃이 일렁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마음공부의 중요한 두 가지 부분은 바로 그침(止:samatha)과 봄(觀:vipassana )입니다. 헐떡이고 일렁거리는 마음의 움직임과도 같은 대상의 움직임을 자세히 바라보고(觀) 그와 하나가 됨으로써 움직임의 흐름에 그대로 따르게 되면 마음과 대상이 구분할 수 없는 하나가 되고, 관찰을 통해 의식과 시간의 흐름이 정지되는(止) 것을 알 수 있게 되는 공부가 바로 그침에 관한 공부입니다.
이러한 공부의 방법은 초기 불교에 나오는 101 가지가 있으나 인도의 불교학자이며, 스리랑카 등에서 미륵보살로 추앙받고 있는 붓다고사(Buddhaghasa) 즉 불음(佛音)이 지은 『청정도론(淸淨道論:Visuddhimagga)』에 의하면 40가지가 있습니다. 상당히 전문적이므로 어렵지만 그 내용을 대강 얼개나마 아는 것이 명상, 집중, 삼매 공부에 필요하므로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첫째, 십편처(十遍處)입니다.
이는 땅, 물, 불, 바람, 푸른 색, 흰 색, 허공, 의식의 편처를 위로, 아래로, 옆으로 일원(一元)으로서 무한하게 지각하는 것입니다.
둘째, 십부정(十不淨)입니다.
이는 우리 몸이 죽어간 시체의 모습에서 팽창상(膨脹想), 청어상(靑瘀想), 농란상(膿爛想), 단괴상(斷壞想), 식잔상(食殘想), 산란상(散亂想), 참작이산상(斬斫離散想), 혈도상(血途想), 충취상(忠聚想), 해골상(骸骨想)의 명상체험을 하는 것입니다. 부풀리고, 푸르딩딩하고, 고름 나며, 끊어지고, 먹어 없어지고, 흩어지며, 잘려 부서지며, 피로 범벅하고, 벌레가 들 끊으며, 뼈다귀만 앙상한 것 등으로 우리 육신을 보는 명상입니다.
셋째, 십수념(十隨念)입니다. 불(佛), 법(法), 승(僧), 계(戒), 사(捨), 천(天), 사(死), 신(身), 안반(安般), 적지(寂至)에 관해 명상을 하는 것입니다. 각각에 대해 뒤에 수념(隨念)을 붙여 제목이 이루어지는데 불· 법· 승 3보를 생각하고 관찰하며, 보시(布施)와 계(戒)를 통해 하늘에 태어남을 관찰하고, 삶과 죽음의 과정에 있는 몸을 관찰하며, 날숨과 들숨의 호흡 그리고 궁극적인 열반의 상태인 고요히 그침의 상태를 보는 명상입니다.
넷째, 사범주(四梵住)입니다.
이는 자(慈), 비(悲), 희(喜), 사(捨)범주(梵住)의 명상으로서 보살의 4무량심(四無量心)하고 그 내용이 같습니다. 무한히 사랑스러워하고, 슬퍼하며, 기뻐하고, 평정한 상태에 있게 하는 공부입니다. 앞에서 배운 바른 사유(正思惟)의 성내지 않는 사유(無瞋思惟)와 자(慈), 해침이 없는 사유(無喜思惟) 와 비(悲), 뛰어난 사유(出離思惟)와 희사(喜捨)의 공부가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를 통해 순수한 그래서 깨끗한 지위에 머무르므로 범주(梵住)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섯째, 사무색정(四無色定)입니다.
공무변처(空無變處), 식무변처(識無變處), 무소유처(無所有處),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의 네 가지 선정입니다.
물질의 지각 현상이 없어져 다양성이 소멸하고 객관적 대상이 사라져 공간만이 존재하는 경지가 공무변처(空無變處), 공간도 없고 의식만이 무한히 존재하는 주관적 경지인 식무변처(識無邊處), 의식도 없고 주·객을 막론하고 의식대상(존재)도 없는 경지가 무소유처(無所有處), 무소유에 대한 지각의 상태로서 지각이 있는지 없는지가 묘한 연상작용이 없는 상태인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를 말합니다. 이는 모두 이름 그대로 물질의 세계 즉 색(色)이 없는 세상이므로 욕계의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도와 천도 중의 육욕천의 단계를 지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뒤에 나오는 4선(四禪)의 단계도 지난 것입니다.
여섯째, 일상(一想)입니다.
이것은 모든 육체와 정신을 유지하기 위한 자양분에 대해 똑같이 중생의 상태를 유지하게 하는 질병(患)으로 보고, 싫어하는 염역(厭逆)사유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중생들이 먹이 습득의 네 가지는 4식(四食)이라 하는데 박식(搏食), 촉식(觸食), 의사식(意思識), 식식(識食)의 네 가지입니다. 이 네 가지 자양분 섭취 즉 먹는 것이 다 질환이며, 따라서 싫어해야 할 것이라 체득하도록까지 명상하는 것입니다.
일곱째, 일차별(一差別)입니다.
일차별은 4계차별(四界差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를 분석하면 딱딱한 흙의 성분(地界), 흐르는 물의 성분(水界), 따뜻한 불의 성분(火界), 움직이는 바람의 성분(風界)로 되어 있어서 모두다 연기한 것임을 사유·명상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상적유대경(象跡喩大經), 『원각경(圓覺經)』 그리고 우리가 임종 후 장례 염불할 때 꼭 외는 「무상계(無常戒)』 등에 나오는 ‘머리카락·손톱·이빨·피부·살·오장·육부 등은 흙으로 돌아가고, 가래·침·눈물·피·오줌 등은 물로 돌아가며, 따뜻한 체온·소화작용 등은 불로 돌아가고, 위·아래 바람·들숨·날숨 등은 바람으로 돌아간다’는 것 등에 관한 명상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러한 사유를 진행하면 감각적 욕망을 떠나고 불선법(不善法)을 떠나서 사유(尋)와 숙고(伺)를 갖추고 원리(袁離)에서 생겨나는 희열과 행복을 갖춘 초선(初禪), 사유와 속고를 멈춘 뒤 내적인 평온, 심일경성(心一境性), 무사유(無尋), 무숙고(無伺), 삼매에서 생겨나는 희망과 행복을 갖춘 이선(二禪), 희열이 사라진 뒤에 평정(捨)하고 주의 깊고 사려 깊으며 육체적 행복을 느끼는 삼선(三禪), 행복·고통을 버리고 없이 평정하고 주의 깊고 청정한 사선(四禪)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는 다음 단계인 4무색정(四無色定) 또는 사무색선(四無色禪)의 기초가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부처님의 여섯 가지 신통 즉 6신통(六神通)중에서 누진통(漏盡通)을 제외한 오신통이 4무색정의 전단계인 4선에서 이미 얻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오신통은 부처님의 수행인 상수멸정(想受滅定)에서 얻을 수 있는 누진통보다 훨씬 낮은 단계이며, 부처님이 아닌 범부(凡夫), 마왕(魔王)도 얻을 수 있는 힘인 것입니다. 그 내용은 공간이동이 자유로운 신족통(神足通), 뭐든지 들을 수 있는 천이통(天耳通), 요즘 TV드라마에서 관심을 끌고 있는 다른 이의 마음을 읽는 타심통(他心通), 운명을 아는 숙명통(宿命通), 어디든지 누구든지 볼 수 있는 천안통(天眼通)입니다. 부처님께서 얻으신 누진통은 모든 지각과 감수가 소멸된 상수멸정(想受滅定)을 통해 얻어진 것입니다. 이 상수멸정은 멸진정(滅盡定)이라고도 해서 최고의 명상 상태이며, 이 명상의 결과물이 바로 열반(涅槃)인 것입니다. 이러한 공부가 바로 세속을 벗어난 성현의 바른 선정입니다.
“번뇌와 집착이 없고 괴로움을 바르게 다하여 괴로움의 끝으로 향하게 하는 세속을 벗어난 성현의 바른 선정이란 어떤 것인가? 이른바 불제자가 괴로움에 대한 진리(苦聖諦)를 있는 그대로 사유하고,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진리(集聖諦),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진리(滅聖諦), 괴로움의 소멸을 위해 실천해야 할 방법에 대한 진리(道聖諦)를 있는 그대로 사유하여 번뇌 없는 사유를 따르는 마음의 정신작용으로 안주하여 산란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으며 거두어들이고 고요하며 삼매요, 한 마음인 것을 일러 성현의 바른 선정이라 한다.”
『잡아함경』제28권 788경에 나오는 말씀으로 8정도 공부의 핵심은 4성제(四聖諦)를 바로 사유해 알아서 괴로움의 소멸 즉 멸성제(滅聖諦)를 통한 열반에 드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른 명상, 바른 집중, 바른 삼매, 어떤 것으로 표현해도 그것을 바로 열반을 얻기 위해 꼭 필요한 최고의 수행법임을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지금까지 여덟 차례에 걸쳐서 자세히 배운 팔정도의 가르침을 내 것으로 소화하고 실천, 체득해서 열반에 드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