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게 생활(正命)합시다
아름다운 것 살피는 데에만
감관을 놔두고 살며
음식을 절제하지 못하고
게을러서 정진을 적게하는 자를
악마가 반드시 정복한다.
약한 나무를 바람이 부러뜨리듯. -법구경 7게송
이 말씀은 진리(dhamma)의 말씀(pada)이라는 뜻을 가진 『법구경(法句經)』 쌍품(雙品)에 나오는 것입니다. 『법구경』은 말씀드린 대로 '진리의 말씀'이란 뜻을 가지고 있으며, 산스크리트어로는 달마파다(Dharmapada)라 하고 팔리어로는 담마빠다(Dhammapada)라 하는데 불교의 윤리적인 교의를 시의 형태로 나타내 불도(佛道)에 입문하는 지침서 역할을 하는 경전입니다.
우리나라에는 팔리어 5니카야의 하나인 『쿳다까니까야(khuddaka-nikaya)』에 분류된 것을 번역한 것과 법구(法救)스님이 편집하고 축장념(竺將焰)에 의해 한역된 것을 우리말로 번역한 두 가지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것만 살피지 말라'고 번역했으나 실상은 우리의 육체가 깨끗하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똥, 코, 피, 고름, 진액 등의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찬 것임을 알아 애착심을 내지 말라는 뜻입니다.
오늘 공부하려는 8정도의 다섯 번째 지분인 정명(正命) 즉 바른 생활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행에 나와 있습니다. 모든 감각기관 즉 눈, 귀, 코, 혀, 몸, 뜻의 여섯 기관(六根)을 잘 지켜서 바른 곳으로 향하게 하고, 먹고 마심을 알맞게 하고 바른 노력을 기울여 믿음 있는 삶을 살라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아무리 센바람이 불어도 큰 산은 어쩌지 못하는 것처럼 악마가 와도 그 사람은 해치지 못한다고 한 것입니다.
애써 노력해 온 마음으로
행위가 맑고 주의 깊게 행동하며
참아내고 법에 따라 사는 이의
이름은 높아간다.-법구경 24게송
이 게송은 『법구경』 부지런품에 나오는 말씀으로 바른 생활에 관해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생각 자체를 바르게 일으켜 거기에 따른 행동 또한 바르게 한다는 것이 그 요지입니다.
오늘 공부하려는 정명(正命)은 바른 생활입니다.
지난 시간에 배운 정업(正業) 또한 바른 생활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은 '짧은 단위의 기초적인 행동'으로서 생명을 잇기 위한 양식획득의 수단에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면에 정명은 정업보다 그 '행위의 지속 시간이 길고 그 결과 양식을 얻을 수 있는 근간이 되는 행동'으로 요즘 말로 하면 '활동' 또는 '직업'에 해당한다고 하겠습니다.
정명이란 팔리어의 정(正)에 해당하는 삼마(samma)와 명(命)에 해당하는 아지바(ajiva)의 합성어입니다. 즉 정명은 '올바른 생활', '올바른 직업'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했는데 어찌 올바른 직업, 그렇지 않은 직업이 있겠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잘 살펴보면 그것은 금방 판단할 수 있는 일입니다.
"직업에는 사람이 흔히 생각하듯 귀천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귀천이 분명히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직업을 천한 직업이라 하고, 어떠한 직업을 귀한 직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천한 직업이란 바람직하지 못한 직업이고 귀한 직업이란 바람직한 직업을 말한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직업이란 무엇인가. 여기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사회에 보다 유익한 직업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으로서의 자기에게 바람직한 직업이다."라고 송 건호(宋建鎬)라는 언론인은 <직업의 귀천>이라는 글에서 말했습니다. 참으로 딱 알맞는 표현입니다.
맥락이 비슷한 이야기가 『맹자(孟子)』에 나옵니다. 「공손축장구(公孫丑章句)」 상(上)에
"화살 만드는 사람이 어찌 갑옷 만드는 사람보다 어질지 못하다고 하겠느냐마는, 화살 만드는 사람은 오직 사람을 상하지 않게 할까 두려워하고, 갑옷 만드는 사람은 오직 사람을 상하게 할까 두려워한다. 병을 고치려는 무당과 관 만드는 목수와의 관계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직업을 택하는 데는 신중을 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바른 직업에 대해서 한역의 증일아함에 해당하는 『앙굿따라니까야』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장자여, 세상에서 선남자는 근면한 노력으로 얻고, 힘써 모으고, 이마의 땀으로 벌어들인 여법한 법으로 얻어진 재산을 지닌다."
자신의 모든 힘을 집중시키되 불법이 아닌 바른 법에 걸 맞는 정의로운 방법에 의해 얻은 재물을 가지라는 가르침은 오늘날 우리나라에 정말로 필요한 덕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생활을 경영하는 업으로는 농사짓기와 장사하기와 소나 양을 먹이어 번식시키기, 셋집을 놓아 이익 구하기, 집짓기와 침구 만들기 등 여러 가지이니 맡은 바 직업에 힘쓰면 이 세상을 안락하게 살아 가리라. 이와 같이 잘 직업을 가져 지혜로써 재물을 구하면 그것을 따라 재물이 생기니 모든 물이 바다로 흐르듯 하리."
『잡아함(雜阿含)』 「기능경(技能經)」에서 하신 말씀인데, 직업을 잘 갖고, 지혜로써 재물을 구하되 모든 물이 바다로 흐르듯 자연스럽게 할 것을 권유하고 있습니다.
이 정신이 바로 요즘 말하는 유통의 정의를 실현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바른 생활인가? 바른 생활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세속의 바른 생활로 번뇌와 집착이 있고 선취로 향하게 한다. 다른 하나는 세속을 벗어난 성현의 바른 생활로 번뇌와 집착이 없고 괴로움을 바르게 다하여 괴로움의 끝(苦邊)으로 향하게 한다."
『잡아함경』 제28권 788경에 나오는 말씀인데 그 동안 우리가 배웠던 다른 법문에서처럼 바른 생활에서도 두 가지가 나옵니다.
번뇌와 집착이 있는 세속의 바른 생활과 세속을 벗어나 번뇌와 집착이 없는 성현의 바른 생활이 그것입니다. 앞에서 바른 생활은 재가자를 위한 법문의 성격이 더 강하다고 이야기했는데 이 내용은 어떻게 된 것이냐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속을 벗어난 성현의 바른 생활은 바로 출가자들의 생활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반드시 출가자를 배제할 수도 없지만, 반드시 출가자만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없습니다.
어쨌든 세속적인 바른 생활은 배를 불리기 위해 음식을 구하는 것이라서 번뇌와 집착이 있지만 그 방법에 있어서 바름을 실천하므로 지옥ㆍ아귀ㆍ축생의 악취보(惡趣報)를 받지 않고, 수라ㆍ인간ㆍ천상의 선취보(善趣報)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비해 성현의 바른 생활을 하면 선취보를 받을 뿐 아니라 괴로움을 바르게 다해 괴로움의 끝인 적멸(寂滅)을 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번뇌와 집착이 있고 선취로 향하게 하는 세속의 바른 생활이란 어떤 것인가? 이른바 정당하게 음식ㆍ의복ㆍ침구ㆍ탕약을 구하는 것을 일러 세속의 바른 생활이라 한다. 번뇌와 집착이 없고 괴로움을 바르게 다하여 괴로움의 끝으로 향하게 하는 세속을 벗어난 성현의 바른 생활이란 어떤 것인가? 이른바 불제자가 괴로움의 범위에 대한 진리(苦聖諦)를 있는 그대로 사유하고,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진리(集聖諦),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진리(滅聖諦), 괴로움의 소멸을 위해 실천해야 할 길에 대한 진리(道聖諦)를 있는 그대로 사유하여 모든 바르지 않은 생활에 대한 번뇌를 없애고, 즐기거나 집착하지 않되 그러한 자세를 굳게 지키고 지녀 범하지 않으며 때를 어기지 않고 한계를 넘지 않는 것을 일러 성현의 바른 생활이라 한다."
『잡아함경』 제28권 788경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먹거리를 구하는데 무슨 차별이 있겠느냐고 했지만 앞서서 송 건호, 맹자의 글을 보았지만 역시 차이가 있었고, 여기 부처님 말씀에서도 또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차이를 나타내는 예화가 있어서 들려드리겠습니다.
초가지붕 위에 박이 열렸습니다. 처음에는 강낭콩처럼 작았는데 점점 커져서 달걀만 해지고 마침내는 달덩이처럼 동그래졌어요. 달을 바라보며 자란 박은 스스로 달이 되고 싶었습니다. 선들바람이 불고 귀뚜라미가 울자 달님이 동산 위를 거쳐 초가지붕 위로 떠올랐습니다. 박이 달님을 불러 물었습니다.
"내 모습은 달님을 닮았지요?"
"그렇구나, 그런데?"하고 달님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왜 나는 빛나지 않지요?"하고 박이 또 물었습니다.
눈물마저 글썽거리는 박을 보고 달님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한 소녀가 있었는데 그 소녀는 노래 부르는 사람을 보고 성악가가 되려고 했단다. 그림 그리는 사람을 보고는 화가가 되려 했고, 커서는 동화를 쓰는 작가가 되었단다."
이야기를 들은 박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습니다.
며칠이 지난 뒤 박은 마침내 자기가 해야 할 일을 깨달았고, 흉내를 내려 한 것이 잘못이었음을 알았습니다. 박은 달님에게 말했답니다.
"단단한 바가지가 되겠어요."
달님은 웃으면서 "그래, 그건 나도 못하겠구나." 했답니다.
이렇게 서로가 각자에게 알맞는 일을 하고, 그러면서 다른 이에게 도움을 주며 마음공부에도 도움이 되어야 진짜 일입니다. 그런데 간혹 어리석은 중생들은 자기만, 자기 직업만 사회를 위해, 국가를 위해, 남을 위해 하는 좋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부처님께도 그런 이야기를 하자
"나는 믿음의 씨앗을 뿌리고, 지혜를 밭가는 가래로 삼아, 몸ㆍ말ㆍ뜻으로 짓는 악업(惡業)이라는 김을 맨다."고 『잡아함경』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아무리 음식이 맛있어도, 의복이 아무리 좋아도 정당한 방법을 써서 구한 것이 아니면 잘못된 것입니다.
또, 아무리 부자가 되어 그 돈으로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리더라도 그 돈을 벌어들이는 수단이 잘못되었거나 세금을 내지 않는 등의 편법을 써서 번 돈이라면 그 돈을 통해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진실로 이익 되지 않습니다.
또한, 나쁜 수단으로 돈을 벌어들인 그 사람에게 좋은 과보가 있을 리 없습니다.
이러한 말씀들은 이천 오백년 전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지만 21세기에 놓인 현재의 우리들에게도 바로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많이 보았지 않습니까?
대마불사(大馬不死)라고 했던 재벌들의 무너지는 모습이 어떠합니까?
어떠한 행위도 어리석은 중생의 눈을 피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진리의 그물망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획득 수단이 바른 재화를 부처님께서 강조하신 것이고 거기에 따라 경제의 정의를 실현해 보이고자 경제정의실천불교시민연합 등의 단체가 생긴 것 아니겠습니까?
불자들부터 눈앞의 작은 이익에 급급해 옳고 바름을 놓쳐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고, 처음도 바르고 중간도 바르고 나중도 바른 경제를 실천해야 합니다. 경제(經濟)라는 말뜻도 바로 경세제민(經世濟民)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부처님 말씀이 좋아 부처님께 엎드린 우리 불제자들은 일을 하고 밥을 먹으면서도 부처님 말씀 따라 마음공부를 해서 번뇌를 없애고 깨달음을 얻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실천하는 것이 바로 번뇌와 집착을 벗어난 성현의 바른 생활입니다. 그것은 고ㆍ집ㆍ멸ㆍ도의 4성제를 바르게 사유해서, 바로 알되 바르지 않은 생활 즉 번뇌를 없애고 즐기거나 집착하지 않는 생활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그것만 생각하고 그것만 알고 있으면 저절로 먹을 것이 생긴다는 말이냐고 물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4성제의 진리를 있는 그대로 사유하고 옳게 안다면 그 순간부터 나의 입을 즐겁게 하고 배를 불리게 하는 먹거리를 찾아 이마에 땀을 흘려 소금을 절일 일이 없게 됩니다. 제대로 공부도 하지 않고,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공연히 흉내만 내서는 곤란하지만, 진실로 그렇게 참된 공부를 한다면 저절로 구하는 바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정명 즉, 바른 생활의 법문은 우리 모두가 생활의 현장에서 부처님의 말씀이 구현되는 것을 알 수 있는 좋은 법문입니다. 여러분 모두 실천에 옮겨 좋은 소식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