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공원에서 산책하다 보면 운동하는 어르신들을 어렵지 않게 만납니다. 그런데 그분들은 걷는 모습이나 걷는 속도가 젊은 사람들과는 많이 다릅니다. 균형을 잡지 못하고 걷는 분이 있는가 하면 지팡이를 의지한 채 걸어야만 되는 분들, 또 어떤 분들은 걷는 속도가 아주 느려서 다른 사람들에게 현격하게 뒤처지는 어르신들을 보게 됩니다.
제가 운동하는 동네 공원에서도 어르신들을 많이 만납니다. 그 중에 서로 인사하며 지내는 어느 구순(九旬)이 넘은 할아버지가 계시는데, 그 분은 평소 건강하게 잘 걷는 분인데 최근 며칠 동안 보이지 않아서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다시 운동하러 나오셔서 근황을 여쭈어 보았더니 그동안 많이 편찮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얼굴도 좀 안 돼 보였고, 들고 오지 않던 지팡이도 다시 들고 오셨고, 걷는 모습도 많이 안 좋아졌습니다. 그 때 문득, ‘이제 나도 60세에 가까워지는데 아직은 젊다고 자부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의 몸도 잘 가누지 못할 노년이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적지 않게 무거웠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늙어간다는 자체보다는, 사회가 그 모습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데 마음의 더 무겁습니다. 젊은이들에게는 언젠가 바뀌게 될 자신의 모습인데 결코 인정하지 않으려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존중하기는커녕 개그의 소재로도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오죽하면 어느 노인들의 만든 노래 가운데 “너 늙어봤냐 나는 젊어 봤다.” 라는 것도 등장할 정도입니다. 제가 너무 한쪽으로만 편중되게 본 것일까요?
미국의 패런이라는 사람은 노화복(老化服)이라고 불리는 ‘R70i Aging Experience’을 개발했습니다. 이 옷을 정상적인 사람들이 입으면 청력, 시력, 운동력 등이 저하되어 노인의 모습처럼 되어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간병인들이나 간호사, 재활치료사 등이 노인 환자들을 이해하고 돕도록 하며, 또 실제적으로 노인 환자들의 재활에도 큰 도움이 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전 세계가 공통적으로 노년의 삶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음속에는 아직도 꿈을 가지고 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 노인들에 대한 이해와 적극적인 도움이 있는 사회야말로 서로 상생(相生)의 모습으로 시너지(synergy)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며, 교회가 이런 일에 앞장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