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방문길에 / 박영보
현재도 미국에서 활약중인 프리런스 방송인인 척 헨리(Chuck Henry)가 생각난다. 88올림픽이 열리기 직전 한국을 방문 취재한 후 미국에 돌아와 보여주었던 TV 방송프로그램에서의 말들. 올림픽을 앞둔 한국의 이런 저런 모습에 관한 내용들이었다. 중간중간 한국의 실제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주기도 했었다. 한강의 기적, 빠른 기간에 이처럼 성장 발전된 한국의 모습들을 샅샅이 조명한 프로그램이었다.
‘빨리빨리’.
한국어 발음을 정확히 표현한다. 시민들이 도심의 지하도 계단을 오르내리는 모습.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버스가 움직이는 대로 우르르 몰려가는 모습. 시내를 오가는 시민들의 빠른 발걸음까지도 보여준다. 그냥 걸어 다니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하나같이 뜀박질을 하듯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모습들이었다. 한국인들의 일상이 늘 이런 모습인 것처럼 보여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지적들은 결코 비아냥이 아니었다.
늦은 밤 시간에 불을 환하게 켜놓고 도로 공사를 하고 있는 광경. 건설장비의 엔진 돌아가는 소리. 한밤중 고층 오피스 빌딩에 불이 켜져 있는 장면들까지도 영상으로 보여주며 올림픽 준비에 여념이 없는 한국의 현지 모습을 소개하는 시간이었다. IT나 가전제품 또는 조선 부문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 제일의 강국이 돼 있는 우리나라. 그냥 시간의 흐름에만 맡겨둔 채 저절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이 ‘빨리빨리’가 오늘의 한국을 일군 바탕이 되었다는 말. 단지 사람들의 빠른 몸놀림만이 아니라 사무실이나 산업현장 또는 각 분야에서 이렇게 열심인 우리의 근면성에 대한 이야기였으리라. 이런 말을 듣는 이들, 특히 우리 한국인에게는 무언가 뿌듯함과 자부심 같은 것을 느끼게 해주기도 했을 것이다.
그 후로도 2002년 월드컵을 비롯 여러 분야의 큼지막한 국제행사가 얼마나 많았으며 이는 또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일까. 지금은 그냥 땅덩어리의 크기나 인구 수만을 따지며 강국이니 소국 또는 약소국으로 구분하여 판단하는 시대가 아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냥 겉모습이나 빈과 부의 차이 또는 국민 총 생산량이 어느 정도이냐 만으로 우리의 ‘격’의 높낮이를 평가할 때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지금은 한국의 대도시나 중소도시 또는 농어촌 어디를 가나 생활에서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물질 적 풍요로움이나 소비성향 또는 겉모습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겉 모습이나 규모의 차이 또는 소득과 지출의 균형 같은 것을 비교해 보자는 것도 아니다. 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지방에서도 똑같이 누리며 즐길 수 있느냐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다. 삶의 질에 관한 이야기이다.
만족도. 만족이라고 해서 대단한 것은 아니다. 불만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포기를 한 상태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형편이니 현재 주어진 상황에서 되는대로 살자’는 식의 삶의 모습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여건에 적응해가며 스스로의 영역을 일구어 나가며 성취하려는 나름대로의 철학이랄까. 하여튼 흙먼지와 땀에 얼룩진 얼굴에 활짝 웃고 있는 농부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보람 같은 것. 저녁나절이면 주민센터 같은 데서 행하는 행사나 강좌에도 나가기도 하고 이웃들간에 나눔의 기쁨도 있는 모습들을 바라다 보고 있자면 격상된 삶의 보람 같은 것이 느껴진다.
조국에 와 보면 모든 게 다 좋기만 하다. 나무랄 것도 없다. 오히려 고개를 치켜 세우며 떳떳하게 내세우며 자랑을 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한때는 선망의 대상,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그들과 비교를 할라치면 무언가 주눅이 들것만 같았던 곳이 유럽이나 미국 같은 나라가 아니었던가. 중남미 지역이나 많은 동남아 지역에 대하여도 우리나라보다 못한 나라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시절도 있었던 것 같다.
‘빨리빨리’. 이것이 오늘의 한국을 이루게 된 근간이 되었다면 이제는 좀 속도를 늦춰보면 좀 어떨까. 이는 별다른 이유도 없이 늦장을 부리거나 게으름을 피우자는 것이 아니다. 북미지역이나 유럽, 중남미지역을 다녀봐도 겉모습이나 시민들의 생활 모습이 우리나라 같은 풍요로움이나 활기 같은 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산업화와 대도시화로 인하여 함께 변해가는 사람들의 정서가 메말라져 가는 것 같은 아쉬움이 느껴질 때도 있다.
조국을 떠난 지 사십여 년이 돼가는 사람의 눈에 비치는 또 다른 면들을 더듬어 본다. 그 ‘빨리빨리’로 인하여 발생하는 크고 작은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교각이나 대형 건물의 붕괴, 수많은 시민들에게 공포를 주고 있는 싱크 홀 같은 문제. 완성도 되기 전에 허물어지는 축조물 같은 것은 건설회사나 당국에 물어보기로 하자.
시민들의 아주 작은 배려만으로도 삶의 질을 보다 높일 수 있을 것이며 명랑사회를 만드는데도 몫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행동에 앞서 단 몇 초간의 생각을 해보는 시간이면 되지 않겠는가. 엘리베이터에서 사람들이 내리기도 전에 밀고 들어서는 사람들. 버스나 전철에서 내려야 할 사람들보다 먼저 비집고 들어서는 사람들. 좁고 번잡한 거리에서 자기만 바쁘다는 듯 뛰듯 서둘러 가다가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의 몸이 휙 돌아갈 정도로 심하게 부딪쳐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자기 앞만을 보고 달려가는 경우를 겪게 되는 일이 부지기수다. 무엇이 그렇게나 그들을 조바심 속에서 달음질을 치게 만들어 주는지 모르겠다. 작은 일들이지만 매사 작은 배려로 이웃을 다독이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