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의 노래 / 박욱근
유치원을 마치고 나는 나의 인생 첫 번째 실패를 맛본다. 지금은 초등학교라 부르는 국민학교 입학시험에서 고배를 마신 것이다. 인근의 공립학교를 가려면 갈 수도 있건만 나의 아버지는 아들의 재수를 결정하셨다. 대학교도 고등학교도 아닌 초등학교를 재수하는 그 한 해 나는 친구들이 모두 떠나버린 동네에서 혼자서 노는 법을 스스로 터득해야 했다.
햇빛이 따사로운 봄날 오전 무궁화 나무줄기를 오르내리는 개미들을 보며 시간을 보냈고, 동네 창고의 처마 밑 제비집에 어미가 물어다주는 먹이를 받아먹는 제비새끼들을 보며 또 하루를 보냈다. 딱지치기 구슬치기를 함께 하던 친구들은 한낮이 되어야 나타났고, 하지만 그들과 학교생활이라는 공통의 화제가 없는 나에게는 무언가 넘기 어려운 벽이 있음을 어렴풋이 느끼던 시절이었다.
어느 여름 가랑비가 날리던 날이었다. 비닐우산 받쳐 들고 동네를 헤매던 나는 ‘노깡’(토관/土管의 일본말)이라 부르던 시멘트로 만든 커다란 하수관 속으로 몸을 숨겨보았다. 세워진 하수관에 몸을 넣고 하수관 위에 우산을 씌우니 그 안은 작은 나만의 세계가 만들어졌다.
나만의 작은 세계.......
어느 순간 가랑비는 빗줄기가 되고, 그러자 나의 작은 세계에서는 소리의 향연이 시작되었다. 우산을 때리는 빗소리가 때로는 높게 때로는 낮게 울렸다. 우산을 통해 들어온 빗소리는 밖으로 도망가지 못하고 온전히 나만의 작은 공간에 머물러 나만을 위한 작은 음악회를 만들어주었다. 우연히 시작된 그 음악회는 어린 나를 매료시켰고, 그 후로 비가 오는 날이면 어머니 몰래 슬그머니 우산을 들고 그곳을 찾았다.
SF영화였다. 주인공이 과거로 들어간 순간, 천지를 휘감는 빗소리가 영화관 전체를 울리기 시작했다. 커다란 화면에 굵은 소나기가 가득했고, 높고 낮은 또한 둔중하고 날카로운 무수한 소리가 한 덩어리가 된 그 빗소리가 수십 개의 스피커를 통하여 울리기 시작한 순간, 먼 어린 시절 오랫동안 잊었던 비의 음악회가 기억의 전면에 떠올랐다.
그 영화의 제목도 줄거리도 누구와 같이 보았는지 조차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때 울리던 빗소리는 어린 시절의 그것과 함께 지금도 뇌리에 생생하다.
뉴질랜드에 살 적 우리 집 뒤편에는 활엽수 숲이 있었다. 겨울 같지 않은 겨울이 지나면 앙상한 갈색 가지에 연둣빛이 물들고 그 빛은 날이 가며 짙어지고 온 숲을 메웠다. 그 즈음이면 바람에 부대끼는 나뭇잎 소리에 잠을 깨는 날이 시작된다.
쏴-아 하며 지나는 소리는 바람의 세기와 방향에 따라 높낮이와 길이가 다르고 또한 느낌마저 달랐다.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거칠게 울리는 그 소리는 가만히 귀 기울여 듣다보면 인생의 희로애락을 그 안에 모두 담아내는 것 같았다.
바람과 나무가 함께 어우러져 주는 선물이란 생각 때문이었을까. 가을이면 뒷마당에 치우고 또 치워도 끝이 없게 낙엽이 쌓여도 제 생명을 다 한 악기(樂器)를 보내는 심정으로 그것들을 보냈다.
밤의 어둠이 채 물러가지 않은 새벽. 문득 눈을 떠서 마당으로 나온 아침, 사위(四圍)에 낮은 구름이 깔리고 마른번개가 새벽 어스름을 끊임없이 밝히고 있었다. 마치 수십 개의 팀파니가 나를 둘러싸고 소리 낮은 북을 두드리듯 끊임없이 터지는 천둥소리는 대지를 무대로 자연이 만들어내는 장엄한 음악회에 다름 아니었다.
예측할 수 없는 순간 예측할 수 없는 방향에서 터져 나오는 그 소리는 그칠 만하면 다시 울리고 다시 한 순간 잠잠하다가는 다시 울리며 끊임없이 이어졌다. 잠자던 나를 깨워 나서게 한 그 소리의 향연에 반하여 한참을 마당 한가운데 서있어야 했다.
자연이 들려주는 음악은 귀를 열고 그 음악을 들으려 할 때 언제든 우리에게 다가온다.
삭풍 몰아치는 깊은 산사, 동안거(冬安居)에 든 노승에게 들리는 설해목(雪害木) 넘어가는 소리만이 자연이 주는 소리는 아니다. 초가을 저녁 뒤뜰에서 홀로 우는 귀뚜라미의 울음도, 처마 밑 비둘기 가족의 잠꼬대도, 리드미컬하게 듣는 창 밖 낙수(落水)소리도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음악이 아닐 수 없다. 어디 그 뿐이랴.
바다의 파도소리, 여울져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 이름 모를 풀벌레의 날개 부비는 소리까지 자연이 만들어 내는 무수한 소리는 우리의 귀를 열고 우리의 마음을 열고 들을 때에 하나하나 그대로 완벽한 대지의 노래가 아니던가.
도시의 찌든 삶, 눈을 들어 별빛 한번 바라 볼 여유가 없는 삶이지만 자연을 향하여 한번쯤 귀를 열어 장엄한 대지의 노래를 들을 여유가 우리에게는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자연이 내게 들려주는 노래를 모두와 함께 나누어 듣고 싶은 밤이다.
<새로 쓴 글은 아니고 여러 해 전 시드니 지역신문에 칼럼으로 연재했던 글 가운데 하나입니다. 신작이 아니라 문제가 되면 거두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