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 / 김창균
빛이 떨어지는 풍경은 먹먹하다. 그 먹먹함이 붉은 낙조를 만든다. 붉음은 빛이 시작되던 모습이며 소멸하는 모습이다. 처음과 끝은 항상 같다. 사물이 있기 전에 빛이 있었다. 사물의 사라짐에도 빛이 있다..
모든 보이는 것들이 황혼에는 고요해진다. 먼 산은 흐릿해지고 가까운 섬은 그림자가 짙어진다. 그 뒤편으로 해가 지기 시작한다. 어느 순간 붉은 해는 금빛으로 빛나며 산과 강, 바다의 모든 풍경들을 노을로 뒤 덮는다. 황혼의 절정인 것이다. 그 순간은 짧다. 시간이 해를 지나치며 공간 저편으로 빠져 나가는 바로 그 때, 빛은 사물의 안으로 스며들며 물감처럼 풀어진다.
그 풀어헤쳐짐이 어둠이 된다. 어두워지면서 서늘해진다. 빛의 세찬 파동이 사라지면서 따뜻함도 서늘함으로 바뀐다.
사람의 집들은 그 시간에 불을 켠다. 강 건너 맞은 편 강서구의 새로 지은 아파트촌에서 비쳐 나오는 불빛은 다시 황혼이 되는데, 그 빛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발길은 분주하다. 그러나 그 분주함은 긴장에서 벗어난 평화로움이다. 노동을 내려놓은 사람들의 표정은 밀레가 그려낸 만종과 같다. 예배당 종소리와 같은 은은한 기운이 저녁 공기 속으로 퍼져 나가는 것이다.
그 소리의 결은 격하지 않고 사납지도 않다. 그렇다고 순하며 부드럽지도 않다. 황혼의 소리는 빛이 세상 속으로 스며들어가는 소리이다. 서서히 자연스럽게 사람을 사물의 편으로 끌어들여 동화시켜 나가는 소리이다. 그래서 저녁 풍경은 사람과 사물의 모습이 모두 같아지게 한다. 사물의 경계를 풀어 헤치며 그 완강함을 내려놓게 하는 바람결 같은 소리가 황혼이 내는 소리이다. 그래서 해 질 무렵의 악기는 숨 쉬듯 울리는 것이 느낌에 와 닿는다.
잉카의 음악 중에 황혼이라는 곡이 있는데 우리들의 길이라는 뜻의 Nucanchinan 그룹이 연주한 음악이 있다. 해가 떨어지는 듯한 느낌의 전주와 기타와 만돌린의 잔잔한 선율 , 께나와 론다도르의 서글픈 피리소리. 이들이 이뤄내는 화음은 황혼을 바라보는 사람의 애잔함을 느끼게 한다.
황혼에는 물소리도 달라진다. 강은 수런거리며 빛과 삼투하고 , 바다는 스스로의 깊이 속으로 잠기며 철벅거린다. 빛은 바다의 심층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파도의 거죽을 때리는데 물결은 모래에 쓸리며 아픈 소리를 낸다.
제 자리에 서 있는 산들도 소리를 내는데 그 소리는 듣고자 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다. 그들은 제 속으로만 소리를 내며 겉으로는 침묵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그들의 그림자가 길어지며 어두워 질 무렵이면 수풀이 세상에 쓸리는 소리가 난다 .
황혼에는 모든 것들이 제 자리를 찾아간다. 을숙도의 개펄 위를 나르는 철새들과 강변을 메우는 차량들의 행렬이 모두 분주하다. 그 돌아감의 모습들이 모두 하나의 본능 일 텐데, 차갑기도 하고 따듯하기도 한 광경이다.
차가움은 빛이 저무는 것에 대한 허무에서 오고 따듯함은 빛이 주는 안온함에서 오는데 황혼은 이 두 가지 감정을 복잡하게 섞어 놓아 이 세상 살아감에 대한 질문을 하게 한다. 그러나 아무런 답은 얻을 수 없고, 물어 보는 말들만이 허공에 무성한데, 결국 빛과 어둠사이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손에 쥘 수 있는 있는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제자리에 서서 저무는 날들과 멀어지는 산 그림자를 보면서 풍경소리처럼 희미해져 가는 해 떨어짐을 보는데, 강변의 갈대는 세상 이치를 알 일이 무엇이냐는 듯 바람에 쓸리며 이삭을 날린다. 그래서 황혼에는 모두가 혼자됨의 모습으로 있고, 그 홀로 서 있음이 다시 풍경이 되어 빛의 소멸과 함께 어둠으로 편입된다. 그래서 보이는 것들의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가 서로 공존하게 되는 것이다. 그 둘은 간섭하지 않는데 서로 떨어져 앉음이 왠지 서럽다. 황혼은 그 서러움과 홀로됨의 풍경이다. 그래서 지는 해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아름다움에 감탄할 뿐 설명하지 못한다.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불안하며, 낙조의 감동은 빛의 사라져 감에 있기 때문이다.
황혼이 사라져 가면 그 자리에 다시 빛이 나타난다. 사람의 손길이 햇빛의 빈 공간에 불을 켜기 시작하는데, 어둠은 신비가 되고 새로 나는 불빛은 순결하다. 아직 완전히 어둡지도 않고 밝지도 않은 저녁나절에 켜지는 램프의 불빛들은 고요한 평화다. 햇빛이 사라지는 허무함에 쓸쓸해질 때 다시 만나는 사람의 불빛은 편안하다. 그 빛들은 강렬하지 않고 세상을 압박하지 않는다. 세차게 누르지도 않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다 저마다의 동굴에서 나온다. 이 먼 세상에 비하면 그들은 너무 약하다. 이 작은 세상에 비하면 그들은 적당하다.
그 빛들이 켜질 무렵의 저녁 바람은 선선하다. 그 순간엔 바람도 악의를 가지지 못한다. 빛이 바뀔 무렵의 바람은 순하다. 그래서 바닷가 공원길을 산책하기엔 그 시간이 좋다. 나는 해 떨어지고 난 바닷가 짙은 감색의 길을 걸어 작은 시내를 지나 숲길에 들어선다. 얼마간 걸으면 할로겐램프의 빛들이 숲의 어둠과 잘 어울리는 장소가 있다. 그 곳에서는 빛과 어둠이 서로 부드럽다.
떨어지는 빛을 바라보기에는 강변 벤치가 좋다. 그곳에서는 가덕도 뒤로 넘어가는 해의 금색 빛 무리와 바다로 빠져 나가는 강물의 마지막 용트림과 바람에 일렁이는 나무들의 소란을 듣기에 딱 좋은 자리이다. 황혼은 그 자리에서 바라봄을 완성한다.
그리고 지나간 날들이 떨어지는 빛 속에 같이 있음을 직감한다. 해가 금빛의 화려함을 이루기까지 세찬 정열을 쏟으며 서쪽하늘에 이를 때, 그 수고로움은 우리의 살아감과 같다. 그리고 황혼은 그 애씀이 쉴 때가 왔음을 알리는 것이다. 그 쉬어감이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멈추는 일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가 하루의 시간을 정리하며 황혼의 빛을 비추듯 사람에게도 쉬어야 할 시간이 있기 마련이다. 그 쉬어감이 화려하진 않더라도 평화로워 지기를 나는 기대한다. 아무런 일이 없는 무사한 나날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