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수필은 이런 색깔이다 / 鄭鎬暻
나는 논리적인 글을 좋아하지 않거니와 또한 그런 사람과 마주 앉기도 힘겹다. 상대방을 압도하려는 목의 심줄이 보기에 안쓰럽고 빈틈없이 촘촘한 치열이 나의 연약한 손가락을 물고 놔주지 않을 것 같아 겁이 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학교를 잘 빼먹었다. 5일장으로 돌아오는 장날에는 공부 못 하는 내 또래의 몇몇 녀석은 그날이 월요일이건 토요일이건 상관하지 않았다. 모의한 약속은 물론 아니었고 혼자 장바닥에 나가면 그 녀석들은 벌써 나와 있었다. 주로 ‘구리무’통을 담은 두꺼운 종이로 만든 상자인 ‘보루바꼬’를 주워서 손바람으로 쳐서 넘겨 먹는 딱지를 만들기 위해서다. 두꺼운 ‘보루바꼬’로 만든 것을 ‘열두번딱지’라고 했다. 이는 이름대로 잇달아 열두 번을 넘겨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래서 발끝으로 딱지 가장자리를 살짝 밟아 넘기는 속임수를 쓰기도 했다.
아침 일찍 장바닥으로 나가야 그런 ‘보루바꼬’를 주울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아침 햇살이 퍼지자 집을 나섰다. 그런데 내 앞에 시골 할아버지가 소를 몰고 시장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여름철의 아침 햇살은 눈이 부시도록 투명했다. 옛날 할아버지들에게 팬티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풀 먹여 갓 달여 입은 빳빳하고 팽팽한 삼베고의 속의 아랫도리가 아침 햇살을 받아 송두리째 드러나 보였다. 나는 뒤따라가면서 앞에서 보는 삼베고의 속의 풍경을 상상하면서 혼자 조심스럽게 웃었다.
나는 그런 소년 시절을 보낸 뒤 30년이 지나도록 되잖은 수필을 쓰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열두번딱지’를 따먹기 위해 딱지 가장자리를 살짝 밟아 넘기던 속임수도 쓰지 않고, 옷은 입었지만 알몸이 통째로 드러나 보이던 장날 시골 할아버지의 삼베고의 속 같은, 재미있고 진솔한 수필을 쓰게 해 달라고 천지신명에게 기도한다. 그러나 아무런 반응이 없어 나는 그냥 이불을 둘러쓰고 자버린다. 터널 속 같은 밤이 길기도 했지만, 꾹 참고 나 혼자만이라도 웃는 시늉을 하며 재미있게 살아가려고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