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마지막 회 / 이명자)
에필로그 어렵사리
직장을 얻은 곳은 우리 집으로 부터 두 시간 떨어진 곳이었다.
열 댓 곳을 돌아다닌 끝에 얻은 직장이라 나는 짐을 꾸렸고 C.A.M.H 에서도 떠나가는
나를 전송까지 해주었다. ‘언제라도 돌아오고 싶으면 주저하지 말고 돌아와요.’ 카운슬러의 말이었다. 나는 이렇게 대꾸했다. “나는
완벽해요. C.A.M.H에 돌아올 일은 없을 테지만 여러분들이 나의 도움이 필요하면 나를 불러주세요. 곧바로 달려 올 테니까요.” 어머니와
아버지는? 탐탁해 하지 않았다.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천천히 학교도 완전히 마무리 짓고 너의 몸과 마음이 좀 더 튼튼해진 다음에
사회로 나가는 게 좋지 않을 까?” 나는
발끈했다. "저를 믿지 못하시는 이유가 뭐에요.” 물론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점과 나의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믿는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받아 들이마신 정기가 넘쳐날 지경이어서 말이지. 보시라. 아버지와 어머니의 쇠약해진 모습을, 내가 다 빨아 마신 탓이다. 나는
런던으로 향했다.
삼백여개의 프렌차이즈를 거느리고 있는 대형 스토어중 하나, 펫 스마트. 대망의 직장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나의 지위도 흡족했다. 일명 동업자. 수입은 오십대 오십.
일 년 계약직이었지만..... 그들은 나를(구르머, 개털 깎는 사람을.) 필요로 했다.
앞날이 미래가 반듯하게 열려있다. 그러나, 열리자마자
나는 그만 훨훨 날아버렸다. 너무 높이 날아버려서일까 내 눈의 초점이 서서히 흐려지기 시작했다. 첫날부터 그런 건 절대 아니다. 혼신을 다하여 개 한 마리 한 마리마다
예술품처럼 털을 깎아내는 내게 쏟아지는 찬사가 귀에 들려올수록 환상이 내게 손짓했다. ‘야- 임 마. 너 대단해. 네
인생을 즐길 자격이 충분해. 예전과는 달라. 오라고 와. 와서 네가 원하는 것을 너 스스로 골라보라고.’ 해서였다. 나는 그렇게 했다. 좋은 이유(손님들의
찬사) 나쁜 이유(약속을 하고 펑크를 내는 사람들.)를 들먹여 약은 수작으로 버스를 타고 스토어와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 두둑이 들어있는 주머니의 돈만큼 마리화나를
코케인을 샀다. 돈 때문에 찌질 거리지 않고 말이지. 꿈같은
일이었다. 십 삼층의 내 아파트 베란다에서(십 삼층이 꼭대기였다.) 별들이 밤하늘을 수놓은 청명한 밤하늘 밑에서 밤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곳에서, 기막힌 이 조화 속에서 한입 피어 올린 마리화나. 꿈결이었다.
그 꿈결이 펑크를 냈다. 개들이 나를 기다리는 곳에. 나를
찾는 전화가 요란했지만, 모르쇠, 였다. 그럴
수밖에, 한창 꿈결이었으니까. 그런 일도 생기고 개들의 털을
깎다가도 툭하면 밖으로 나가 담배나 피우고 스쳐지나가도 될 일을 트집 잡고, 그러면서도 열심이었다.
정말이야, 내가 얼마나 열심히 일을 했는데. 그리고
나로서는 최선을 다했다. 개나 고양이에게 손등을 물려 피를 보는데도 난 열심이었다. 그런데 역시 여러분들은 나를 밀어냈다.
계약기간이 끝났고 그들은 내가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이유는(세상이 내게 하는 거짓말); 계약기간이 끝났을 뿐 이유는 말할 의무가
없다고 했다. 나는 한 달여를 내방에 쑤셔 박혀 열불에 휩싸여 있었다.
분노로 눈알이 빨개지도록 증오로 나를 물리친 사람들을 향해 입이 닳도록 저주를 쏟아낸다. “나처럼
개들의 털을 예술적으로 깎는 구르머가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나를 알아보지도 못하는 병신들아.” 나의
열불의..... 웅변이다. 나를 향한 결국 보시다시피 그럼
그렇지 아니나 달라 보나마나 뻔 해, 라는 수식어가 난무하기 시작한다.
나는, 나의 사촌형 싸움꾼의 의미를 지금 금방 알아챈다.
아마도 사촌형은 자신의 열불(?)을 다스리기 위하여 싸움꾼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이지. 나도 열불을 다스리기 위하여..... 열심히 지탱했던 일 년여의
삶을 버린다. 하얀 가루가 나의 모든 분노와 증오를 잠재운다. 그 잠에서
깨어나면? 머지않아 다시 수족이 떨리고 분노와 증오만 계속 쌓이고 쌓여 알츠하이머처럼 모든 기억이 쇠퇴할
것이다. 참 장하기도 하셔 그렇게 잘 알면서 인생을 포기하는 거야? 묻지
마. 다 알면서
나를 떠보려고 하는 그 심보들 때문이기도 해. 나는 이렇게 우왕좌왕한다. 또 어머니가
나에게 손을 내민다. 아버지가 나를 다독거린다.
‘차라리 우리들의 시야에 재민이를 묶어 두는 게 낫겠어요.’ 이런 결론이 나도 모르는 사이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내려졌는지 나는 다시 강보에 쌓인 어린아이처럼 보호막 속으로 못 이긴 척 들어갔다. 그래도
그렇지 내가 아직도 어린아이인가. 아니지. 어느 날 나는
분연히 일어선다. 그럴 때는 내 모습에 나도 반한다. 막무가내
자기만족이다. 더하여. “아버지
어머니 내 잘못이 아니었어요. 개들의 주인은 나의 기술을 칭송했지만 스토어의 매니저는 처음부터 이유도 없이 나를 좋아하는 눈치가 아니었거든요. 그들은
나를 잃어 손해나 보지 말았으면 하고 걱정이 되요. 직장은 널려있고 한 곳에서 보다 나은 조건으로 나를
원하는데 좀 먼 곳에 있어요. 어떡할까요.” 사실이다. 구르머란 손재주와 센스와 예술적 감각이 두루 갖춰져 있어야 하니까. 다시
아버지와 어머니의 노고가 두말없이 시작되었다. 편리한 교통이 있는데도 시간이 너무 걸린다는 이유로 나를
실어 날랐다. 가스비가 더 나왔겠지만..... 나의 짐작이다. 어찌되었건 나는 한없이 누렸다. 그리고 한없이 잘 숨기고 한없이
몰래 사용했다. 그래서 나의 분노와 증오가 꼭 꼭 숨어 고개를 내밀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고분고분 했고 첫 월급으로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 드렸으니까.
그렇게 잘 나가다가 어느 날. 두 달이 채 되지 않았다.
“손님이
너무 없어서 그만 두었어요.” 밑도
끝도 없는 내말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이 동시에 딱 굳어진다.
‘이런 세상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굳은 얼굴에 나타난 언어라고 짚었다. 내가 금방 생각하고 있던 단어였으니까. 이런 세상에, 그렇다 세상이 그랬다.
나의 신상에 대해 조금이라도 눈치를 체면(그들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눈치가 비상했나? 내가 빌미를 주었나. 무슨 빌미?
그럴 리가 없지.) 가지가지 꼬투리를 잡아 나의 분노를 자아내게 한다. 거의 모두가 나보다 우월하다고 티를 낸다.
이 남자 강아지를 왜 여자강아지처럼 얼굴을 깎아놓은 거야?’ ‘손님하고 왜 아귀다툼을 해? 손님은 왕이야.’ ‘자존심 따위 버리고 일해야 하는 것 몰라서 그래?’
그러고 싶지 않은 게 잘못인가. 에 라 모르겠다. 그만두자.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은 많아. 그래서 그만 둔 것이다. “천사라도
더 이상 참아내지 못 할 거야.” 어머니가
굳은 얼굴인체 말했다. 아버지도 아직 굳어있는 상태다.
나는 얼른 변명한다. 아무래도 오늘 일진이 태풍을 몰고 올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맞아요. 어머니 아무리 천사라 해도 상대를 무시하는 것은 참지 못할 거 에요. 개털을
한번도 깎아 보지 않은 주제에 주인이라고 이래라 저래라 하니 참는 것도 한도가 있죠.” 명백한
사실이다. 나는 배운 데로 개 주인이 원하는 데로 털을 깎아주고 다듬어 주어 개들의 개성을 한껏 살려
주었으니까 말이지. 그러면 된 거 아닌가? 나의 개성 나의
차림새 혹은 내가 풍기는 이미지에 대해 자기들이 왜 왈가왈부 하느냐는 거지. 나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게 확실한 참을성 하나만큼은 대단하다. 참을 만큼 참았다. 참았다는
건, 내게 이상한 눈초리를 던지는 스토어주인을 향해 치밀어 오르는 욕지거리를 눌러 참았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손님이 많지 않아 실속이 전혀 없고 무료해지고 오늘 내일 때려치우자 하고 있던 차에 말이지. 예전에 있던 구르머에게는 멀리서도 손님이 찾아 왔다나, 어쨌다나, 하면서 내 속을 긁어 놓고는 했다. “아무리
부모가 감수해야할 업보라고 해도.” 아버지가
야릇한 말을 했다. 나는 이제 입을 다문다. 빨리 이 순간을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다. 뭐 이까짓 일 가지고 심각해할 필요를 나는 느끼지 않으니까.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에게 거는 희망이 나의 희망과 많이 동떨어진 것이어서 두 분이 만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내가 어찌할 수 있겠는가. 나의 희망은 아주 간단하다. 너무
간단해서 성공할 기미는(좋은 기술을 가지고 하다못해 일 년도 못 채우고 쫓겨나니.) 전혀 없고 밑바닥 인생처럼 밑바닥만 뒹군다고 이해심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어떤 사람의 악담이지만, 그래도 나는 좋다. 너무 복잡다단해서 사람들의 눈이 한 곳을 바라볼
줄도 모르고 팽창만 하니까. 얼 키고 설 킨 희망이 끝없이 부풀어 올라 팡 터져버리는 날에는 죽는다고
아우성들 치면서 말이지. 나의 간단한 희망에 의해 내 방 속에서 백수처럼 죽치고 있는 날이 많아졌다. 내 방밖의 일은 나의 소관이 아니니까 신경 딱 끊고 말이지. 그런데
향긋한 기류가 집안을 감돌고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의기투합하여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고 조그만
가게를 내 이름과 어머니 이름으로 산 것이다. 나는 신선한 기쁨을 만끽했다. 내가 뭔가의 주인이 되었으니 말이지. 모르긴 해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굳었던 표정도 깨끗이 사라지고 없었다. 삶은 이런 것이다. 나는
아직 내 삶이 어떤 것이냐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지만 삶에는 오르막길도 있고 내리막길도 있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보라, 나는 이제 한 가게의 떳떳한 주인이 되었으니까 말이지. 그래서 또 나는 의기양양하게 열심이다. 이것도 열심 저것도(?) 열심 괄호안의 의문부호는 누구나 금방 눈치 첼 것이다. 기쁨도
열심히 만끽한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에도 오로지 나를 위해 열심을 되찾았고, 집안이 화목하니 모든 일이 잘 되어가고 있다. 가게는 번창하고 덩치가
크고 작고 개 훈련을 받아 얌전하고 집안에서 응석받이로 키워 개차반이고를 망라하고 개들을 데리고 가까운 주변에서 또는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나는 미소로 실력으로 가게를 이끌어 나간다. 그러나
두 달이 지나가자 이 염병할 ‘그러나’, 내게 꼭 필요한 ‘그러나’가 나를 찾아왔다. ‘딱
한 번만 흡입하면 너는 더 높은 성공의 가도를 달릴 거야.’ 듣던 중 기분 째지게 좋은 말이 내 귀를
쏘삭거렸다. 나의 희망이 이제는 더 불어났으니까. 가게가
번창하여(나니까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다.) 남들의 눈에
띠는 성공을 향하여 거침없이 달릴 것이다. 달리기 위하여 나는 밤마다 다시 은밀하게 치밀하게 조심조심
킬킬거리며 조금씩 정해놓은 양만큼 흡입한다.
바로 가까이 다가와 있는 어떤 조짐을 눈치 체지도 못하면서. 주머니에 두둑이 돈이 쌓이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눈도 속이고(작정한 것은 아니다. ‘정말이야?’ 그렇게 다그친다면 나도 모르는 짓일 것이다.) 세월은 거침없이
지나가고 내가 원하지 않는 분노와 증오가 내 머릿속에 차곡 차곡 쌓여가는 것도 까마득하게 모르고 나는 달린다. 정신
놓고 달린다. 오늘
매우 무덥다. 체감온도가 여름의 중턱배기여서인지 가장 높다. 이
무더운 날에 나는 에어컨을 켜지 않는다. 아니 켜는 것을 잊었다.
‘이 무더위에 에어컨 켜는 것을 잊어? 너는 도대체 어떤 인간이기에?’
나는 왜 이렇게 사사건건 꼬투리만 잡힐 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땀으로 멱을 감고 땀으로 젖어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눈앞을 가려 내 신경을 자극하고 조그만 개새끼의 몸을
씻기는데 어찌나 지랄발광을 해대는지....
‘야-저 개자식 버릇을 고쳐.’ ‘인마, 너 바보야. 개버릇 하나 못 고쳐.’
‘때려 때려서라도 버릇을 고치란 말이야.’
바로 내 귓가에서 말씀들이 발작을 일으키듯 터져 나왔다. 그래 고쳐주지. 이깟 개 새끼 하 나. 나는
샤워머리꼭데기로 개의 머리를 강타한다. 한 번 두 번 하다 보니 세 번 네 번 으로 이어진다. 나는 아무 것도 모른다. 눈에 보이는 것도 없다. 귀에 들려오는 것도 없다.
섬뜩한 어느 순간.
아악 아아악. 악 악............... 내
입에서 터져나간 비명이었다. .....................................................................................................................................
나는 1004의 번호를 단 푸른 죄수복을 입고 감옥의
독방에 있다.
죄명은; 동물 학대 죄 동물 살인죄 패악 죄(살인현장을
목격한 자신의 아버지가 쇼크를 일으켜 심장마비로 죽어가는 데도 쳐다보기만 한 죄.) 마약을 흡입한 죄
마약을 소지한 죄 자신의 분노의(이유가 전혀 합당치 않는.) 표출을
죄 없는 세상에 살포한 죄 죄 죄.................무수한 죄.
두 팔 두발이 감옥 침대 위에 묶인 체다.
발작하기 직전의 혹은 숨이 끊어져 버리기 직전의 숨 막힌 고요 속..... 내 머릿속에서
기억 하나가 기어 나왔다. 한 손은 자신의 가슴을 움켜잡고 다른 한 손은 나를 향해 온갖 것이 난무한
바디언어로 무언가를 말하며 쓰러져가던 아버지의 일그러진 얼굴..... 아-악 저건 또 뭐야. 피다. 피야. 난 죽기 싫어 죽기 싫어.........나는 헉 숨이 막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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