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와 사계절
미국 9.11 테러가 있기 얼마 전,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창원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할아버지가 구급차에 실려 서울에 있는 종합병원으로 이송된다는 연락을 받았다. 할아버지는 특별한 증상이 없는데 큰 병원까지 가게 한다고 내켜하지 않았지만 결국 병원 측의 권고를 따랐다.
평소 할아버지는 별다른 기저 질환도 없고 아침마다 배드민턴 팀에서 활동할 만큼 건강했던 터라 우리 역시 별일 아닐 거라 생각했다. 종합병원이 주는 믿음직스러운 이미지 때문이었는지 아무리 아파도 치료를 받으면 금세 나아지리라 으레 짐작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퇴원하지 못했고 급기야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당시 중학교에 갓 입학했던 나는 면회 제한 때문에 쉽게 병문안을 갈 수 없었고 어른들에게 할아버지의 소식을 겨우 전해 들으며 답답한 마음만 커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엔가는 할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은 마음에 병문안을 가겠다고 나섰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번번이 미뤄졌고 그때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던 것이 지금까지도 후회로 남아 있다.
할아버지에게 급성 혈소판 감소증이라는 병명이 붙여지고 상황은 급박하게 흘러갔다. 많은 양의 혈액을 여러 차례 수혈했지만 차도는 없었고 병원에서는 더 이상 손 쓸 방법이 없다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이야기를 전해왔다. 이런 말은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대사인 줄 알았다.
스웨덴에 있던 둘째 작은 아버지도 서둘러 귀국 항공편을 알아보고 가족 모두가 분주히 작별인사를 준비했다. 결국 내가 병원에 가게 된 건 할아버지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기 위해 였다. 그날 하늘에서 내 눈물만큼이나 많은 비가 내렸다. 다른 사람들의 세상은 변한 게 없는데 하루아침에 나를 둘러싼 세상만 변한 것 같아 야속했다.
낯선 공기로 가득한 병원에 도착해 태어나 처음으로 중환자실에 들어서자 일반 병실보다 모든 게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고 의료진들의 움직임과 건조한 기계음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할아버지는 창백한 얼굴로 눈을 감고 아무런 미동 없이 주렁주렁 연결된 의료 장비에 겨우 의지하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위태롭게 버티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하얗다 못해 실핏줄이 도드라져 보일 정도로 투명한 할아버지의 손등이 보였다. 적막한 분위기에 압도된 채 조심스럽게 떨리는 손으로 할아버지의 손을 매만져보았다. 그때 느꼈던 온기 없는 싸늘한 피부결을 아직까지도 생생히 기억한다.
할아버지는 아마도 작은 아들이 올 때까지 기다렸던 것 같다. 며칠을 겨우 더 버티다가 마지막으로 작은 아들이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 어떤 예고도, 삶의 마지막 순간을 미처 정리할 기회도 없이 그렇게 갔다. 그날은 할아버지의 생신날이었다.
벌써 20년이 흘렀다.
내가 알던 누군가를 떠나보낸 일이 그때가 처음이라 머리로 받아들이기까지 꽤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한동안은 마치 할아버지가 먼 여행을 떠났다 돌아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언제 이 생이 끝날지도 모르면서 영원을 살 것처럼 살아간다. 나이가 적다고 가진 게 많다고 꼭 더 오래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너무 오만하게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죽음 앞에서 비로소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겸허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우리 할아버지는 따뜻한 분이었다. 평소 다정한 표현은 잘 못했어도 가끔 잡아준 따스한 손으로 전해진 마음을 기억한다. 나는 그런 할아버지가 그리울 때면 마음의 앨범에서 할아버지와 함께한 추억을 동화책처럼 가끔 꺼내어 본다.
할아버지는 어린 나에게 햇살이 비치는 잔잔한 개천에 발을 담그고는 그물을 이용해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도 했고 가을이 한창 무르익던 계절이면 우리 집 마당에 있던 대추와 감을 같이 따기도 했다. 함께 대추나무 밑동을 잡고 신나게 소리를 지르며 이리저리 힘차게 흔들었을 때 내 머리 위로 함박눈처럼 펑펑 내리던 대추와 긴 잠자리채를 이용해 살살 따먹었던 홍시를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어느 추운 겨울날 할아버지와 둘이서 갔던 남한산성에서 코끝과 볼이 빨개지고 지칠 때까지 한참을 오르락내리락하며 탔던 포대 썰매 역시 눈이 올 때면 기억난다.
할아버지가 더 오래 살아 계셨더라면 어땠을까.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되뇌다 보면 나도 세월에 물들어 삶의 끝자락에 섰을 때 누군가에게는 따뜻하고 행복한 추억을 함께한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행복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한다. 찰나에 느끼는 행복과 당시에는 행복인지 모르다가 한참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 행복이다.
나에게 할아버지와 함께할 수 있었던 사계절은 후자와 같다. 당시에는 너무 어려서 잘 몰랐지만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에야 그 시절 그 추억들이 더없이 소중한 행복이었음을 비로소 깨닫는다. 청명하게 빛나고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한 부분을 채워준 할아버지와의 시간들이 지금의 나를 위로해주기도 한다.
우리는 종종 오지 않은 행복을 찾아 헤맨다. 행복하기 위해 오늘을 희생하며 훗날을 기약하기도 하고 왠지 문턱 넘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행복을 기대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하지만 우리 모두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 걷다 보면 그때는 미처 알아채지 못한 각자의 삶 속에 이미 숨어 있는 행복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가끔은 깜깜한 밤하늘 드문드문 박혀 있는 별처럼 이미 곳곳에 숨어 있을 행복을 찾아 보물 찾기를 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