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없는 동네
정 광희
사방 어디를 보아도 하늘과 들판이 맞닿아 있고 멀리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들이 장난감처럼 작게 보이는 이 동네에 이사 온지도 9달이 넘었다.
약 100가구에 300여명이 채 안되는 작은 동네에서 맞는 지난 여름엔 거실에서 내다보이는 끝 모를 들판이 밀밭의 진초록색과 만발한 캐놀라꽃(canola)의 노란색과 보라색이 어우러져 그림이 됐고 가을엔 추수하는 농부들로 부산스러웠다.
이제 흰 눈에 덮인 들판이 유난히 조용해 보인다.
뒷집에 사는 샌디는 남편이 5년 동안 병으로 고생하다 세상을 떠난 뒤 아들 3형제를 데리고 농가를 떠나 11년 전 이 동네로 이사 왔다. 이후 미용기술을 배워 미용사로 전업했고 세 아들이 장성해 결혼하자 자신도 재혼했다. 샌디는 아들들의 할머니를 몇 집 건너에 모시고 병원에도 모셔가고 잔일도
도와주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졌다. 바로 지금 샌디의 남편처럼.
지난달 중순 일요일이어서 가게를 닫고 캘거리로 나갔다가 저녁 늦게 돌아오니 하루 사이에 눈이
발목까지 푹푹 빠질만큼 내렸다. 그렇지만 가게
앞길은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누군가 다음날이면 눈 치운 값을 받으러 오려니 했으나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또 얼마 뒤엔 차가 눈에 덮일 만큼 눈이 쌓였으나 이것마저 누군가가 치워주었다.
고맙고 못내 미안했다.
이곳에 온 9개월 동안 6번의 결혼식과 5번의
장례식이 있었다. 결혼식은 일주일쯤 전부터
친구들이 돈을 걷어 신랑과 신부를 위해 선물도
사고 파티도 열어준다. 모금 방법은 동네에
하나뿐인 우리 가게에 종이와 펜을 두면
희망자들이 이름과 금액을 적고 돈을 우리에게
맡기는 방식이다. 장례식 때는 동네 사람이
<장례식이 진행되는 동안만이라도 문을 닫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 그 뒤로 장례식 때면 문을
닫는다.
개인주의가 보편화한 요즘 우리는 다른 세상에 사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장난이 심하거나 못된 짓을하는 아이를 보면 어른들은 자기 아이가 아니라도 즉시 타이르고 아이들은 여기에 순종한다. 이 동네는 집 번지도 없다. 우리를 제외하면 누가 어느 집에 살고 있는지 서로를 잘 안다. 모두 대가족제도가 있는 한 집에 사는 우리 옛 한국 마을을 보는 듯
하다.
맑은 밤하늘에 보이는 별들이 어디보다 크고
많은 이 동네, 넓은 들판 가운데 있어서 외로워
보이지만 어느 곳보다 넉넉하고 따뜻한 마음이
살아 있다. 우리도 저 마을의 한 가정으로 동화될 것이다.
첫댓글 이 미숙 입니다.
오늘 저녁, 정 선생님의 수필을 올리면서
긍정적 마인드로 이민 생활에 적응하시는
글이 참으로 아름다워 보이네요.
부디 건강회복 하시길 기도 드립니다.
정광희 선생님으 글에서 따뜻한 사람냄새가 참으로 좋습니다
이민자들에게는 정이 있는 사람과의 생활이 힘이 되는 것이지요
이미숙 선생님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히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