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그네
(제1회 / 정광희)
얼굴이 똑같이 생긴 할머니 두 분이 넓은 대청마루
위에 돗자리로 만든 방석을 깔고 앉아 두 손을 마주 잡고 앉아서 얼굴은 웃고 있지만 눈에서는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에 정신이 없습니다. 열려진 마루의 뒷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은 뜨거운 7월의 햇볕을
지나왔지만 대청마루에 앉아 있는 두 할머니의 주위를 시원하게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뒷문에서 보이는 야트막한 동산엔 그네가 매어 있는 소나무도 보이고 그네
뒤로는 키 작은 나무들이 초록색 울타리처럼 둘러서 있습니다. 오늘은 두 할머니의 생신이라 두 할머니의
가족이 동생 할머니 집에 50년 만에 처음으로 모였습니다. 부엌에서는 음식을 만드느라고 부산스럽고 맛있는 냄새가 온 집 안에 퍼지고
있습니다.
“아우야, 우리가
이렇게 마주 앉아 있는 것이 꿈은 아니겠지?”
아우라고 불린 할머니는 다른 할머니의 잡은
손을 흔들면서 “언니도 제가 이렇게 언니 손을 잡고 있고 언니도
제 손을 잡고 있는데 이게 꿈이라니요? 우리가 열 살 때 부모님이 갑자기 돌아 기시고 얼마 있다가 언니와
헤어진 후 가까운 친척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어서 항상 외롭고 무서웠어요. 언니가 보고 싶으면 거울
속의 제 얼굴을 보면서 언니라고 부르며 울기도 많이 울었답니다. 언니,
이젠 아우라고 부르지 말고 경원이라고 제 이름을 불러 주세요.”
“그래 이제부터는 이름을 부르기로 할게. 50년이나 떨어져 살다가 이렇게 만나고
보니 조금 서먹서먹했단다. 경원아,
나도 그 오랜 세월 네가 보고 싶어서 정말 많이 울었단다. 참 뒷동산에 매어 놓은 그네는
누가 매어 놓았니?”
“제 아들 성호가 매었어요. 제가 하도 그네 이야기를 하면서 언니를 그리워하니까 옛날 아버지께서 우리를 위해 매어 주신 그네와 똑같이 만드느라고
애를 많이 썼어요. 우리 손녀딸 은경이가 가끔 타지만 은경이가 혼자 그네 타는 것을 보면 옛날에 언니랑
함께 타던 생각이 나서 더 언니 생각을 했었지요.”
“어쩌면...... 옛날에 우리 아버지께서 매어 주신 그네와 똑같구나.”
“그렇지요? 언니
생각이 날 때마다 그네 이야기를 해준 탓인지 성호는 우리가 타던 그네에 대해 환하게 알고 있어요. 언니. 저 그넷줄이 매어진 소나무 가지를 봐요. 우리 어머니께서 예쁜 분 홍색 리본을 매어 주셨고 아버지는 그네 안장에 분홍색 칠을 해 주셨던 것 생각나세요. 옛날에 우리가 타던 그네와 똑같이 만들었지요?”
“정말 똑같이 만들었네, 나도 우리 딸 혜영이와
외손녀 송희한테 내 아우 경원이와 그네 이야기를 자주 해 주었지. 그네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만날 수
있게 된 것 같아.”
쌍둥이 두 할머니는 쉴 사이 없이 눈물을 흘리지만, 얼굴엔 함박웃음을 웃으며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집니다. 이때 두 소녀가 그네 앞에 나타났습니다.
한 소녀는 그네에 앉아 있고 한 소녀는 그네를 밀어줍니다. 두 할머니는 할머니들의 옛날
모습을 보고 있는 듯 그네 타는 소녀들을 보다가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미소를 짓다가 다시 눈물을 흘리십니다.
나라 신문사에서는 해마다 어린이날 행사로 전국
초등학교 그림 그리기 대회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남쪽 섬인 제주도의 서귀포에
사는 송희는 이 미술 대회에 참가하기 위하여 제주도에서 예선에 뽑힌 학생들과 함께 선생님의 안내로 버스도 타고 배도 타고 기차를 타면서 서울로
왔습니다. 강원도 춘천에 사는 은경이는 춘천에서 뽑힌 학생들과 함께 선생님의 인도로 서울로 왔습니다. 미술 대회는 덕수궁에서 한다고 합니다. 덕수궁에 모인 학생들 중엔
덕수궁을 사진으로만 보고 처음 와 보는 학생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마당도 없고 층층이 높은 아파트 생활에 익숙한 처음 와 보는 학생들은
옛날에 임금님이 사셨다는 추녀가 번쩍 들리고 아름드리 기둥으로 세워진 궁궐과 아름다운 잔디밭이랑 잔잔한 물결 위에 햇빛이 반짝거리는 연못이랑 예쁘게
정리된 꽃밭을 모두 신기해하며 구경을 했습니다. 이제 그림 그리기 대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연필이나 크레용 또 그림물감은 자기 것을 사용하지만 그림 그릴 종이는 나라 신문사의 도장이 찍힌 종이를 신문사에서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전국에서 모인 어린 화가들은 수백 명이 될 것 같았습니다. 어린 화가들은 종이를 받아 들고 학년 별로 신문사에서 나온 안내원들을 따라 모두 흩어졌습니다. 연못가에도, 돌층계 위에도, 잔디밭에도, 돌담 밑에도 어린 화가들이 앉아 있습니다. 어떤 어린이는 무엇을
그릴까? 생각하는가 하면 그림 그릴 도구들을 뒤적이기도 하며 벌써 그리기 시작한 어린이도 있습니다. 수선스러웠던 장내가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하늘은 파랗게 갰고 흰 구름이 몇 점 떠가고 있습니다. 오월의 햇볕은 따뜻했고 부드럽게 아이들 머리 위로 어깨 위로 내리면서 땅 위에 그림자를 만들어 줍니다. 가볍게 부는 바람은 잔디와 꽃봉오리들의 향기를 싣고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것 같았습니다. 12시까지 그림을 그려 내고 점심은 나라 신문사에서 어린 화가들에게 무료로 주었습니다. 점심 식사가 끝나자 어린 화가들을 위해서 노래자랑이 있었습니다. 아주
멋진 어린이날 행사였습니다. 오늘 그린 그림의 입상자 발표는 한 달 후에 한다고 했습니다.
어린이날 행사가 끝나고 제주도에서 온 학생들은
선생님의 인도로 지하철도 타 보고 남산에서는 케이블카를 타고 남산 정상에 있는 서울 남산 타워에도 올라가 보았습니다. 남산 타워에서 내려다보이는 서울은 끝없이 넓어 보이고 높은 건물들 사이로 수없이 많은 집은 점을 찍은 듯 보였습니다. 너무 늦어서 오늘은 호텔에서 자고 내일
아침 일찍 떠나기로 했습니다. 학생들은 오늘 하루 종일 지난 일들이 특별히 신기하고도 재미있었기 때문에
흥분이 되어서 잠을 잘 이루지 못했습니다. 집에 가면 부모님께 할 이야기가 너무 많을 것 같았습니다. 이날 밤 어린이들은 예쁜 꿈을 많이 꾸었습니다. 이튿날 오후 늦게 집에 도착하니 외할머니는 문밖에 나와서 송희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우리 송희가 이젠 다 컸구나, 이렇게 아빠랑 엄마랑 떨어져서 서울까지 다녀왔구나.”
“할머니두, 전
이젠 애기가 아니에요. 전 초등학교 오 학년이에요, 그런데
할머니, 저는요, 덕수궁에서 그림도 그리고 맛있는 도시락 점심도 먹었어요. 또 노래자랑에 나가서 노래도 불렀어요. 상은 타지 못했지만 정말 재미있었어요.”
“우리 송희가 재미있었다니 이 할미는 너무 좋구나” 할머니는 송희를 꼭 안아 주면서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습니다. 할머니는 송희가 대견했고 또 어릴 때 헤어진 동생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은경이는 어린이날 행사가 끝나자 선생님의 인도로 미술 대회에 참석했던 학생들과 함께 저녁 늦게 춘천에 도착했습니다. 은경이는 집 안으로 뛰어들어 가면서 할머니를
찾았습니다. 할머니는 부엌에서 엄마랑 평소에는 손이 많이 든다고 잘 만들지 않으시던 감자떡을 만들고
계셨습니다. 은경이는 요즈음 아이들이 좋아하는 초콜릿이나 사탕이나 과자를 좋아하지 않고 감자를 갈아서
물을 꼭 짜고 강낭콩 고물을 켜켜에 넣고 찌는 감자 시루떡을 좋아했습니다. 부엌에서는 감자떡이 익어가는
구수한 냄새가 은경이를 맞아 줍니다. 할머니랑 엄마는 은경이를 대견해 하시면서 맞아 주셨습니다. “할머니, 엄마
오늘 점심은 나라 신문사에서 무료로 주었어요. 김밥이랑 튀김이 너무 예쁘고 맛이 있었어요. 정말 먹기가 아까웠어요. 오후에는 노래자랑 순서가 있었는데 고향의
봄이란 노래를 부른 아이는 왠지 낯설지 않았어요. 그 아이는 제주도에서 왔대요.”
“네가 오늘 낯선 아이들을 많이 만나서 그런
생각이 들었을 거야. 제주도에서 왔다면 너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아이지 않니? 고단하겠다, 어서 얼굴이랑 발을 씻고 오렴.”
“엄마, 저
배고파요. 먹고 씻으면 안 돼요?”
“엄마가 상 차릴 동안 어서 씻고 오너라.” 은경이는 오늘 먹고 있는 감자떡이 이제까지
먹어본 감자 떡보다 더 맛이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이렇게 어린이날은 저물었고 미술 대회에 참가했던
어린 화가들은 발표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느덧 어린이날로부터 한 달이 지났습니다. 오늘 송희는 선생님으로부터 미술 대회에서 이등에 입상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친구들도 박수를 치면서 축하해 주었습니다. 송희는 기쁜 소식을 안고
집에 가는 발걸음이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이 가벼웠습니다. 집에 도착하자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엄마, 할머니
미술 대회에서 제가 전국 오 학년 학생들 가운데서 이등에 입상했어요.” 송희는 더 말을 하지 못하고 숨을 몰아쉬고
있습니다. “어쩜, 우리
송희 정말 자랑스럽구나.” 할머니는 커다란 송희를 번쩍 들어 안고 방안을
빙빙 도셨습니다. “어머니, 송희
내려놓으세요. 잘못하면 어머니
허리 다치시겠어요. 어머니, 송희가 너무 자랑스러워요. 다른 아이들처럼 미술 학원에서 따로 지도를 받지 않았어도 상을 탔어요. 송희야
고맙다.” 할머니랑 엄마도 송희보다 더 기뻐하셨습니다. 송희는 아빠가 기뻐하는 모습도 보고 싶어서 아빠가 퇴근해서 집에 오시길 기다리느라고 시계만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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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광희님 반갑습니다. 그 추운 북쪽에서 그네를 타고 오셨군요.
창공을 차고나가 하늘을 가르면서 시원한 바람 폐속 깊이 들여마시고 싶은
기분입니다. 건강하세요. 늘 기도 합니다.
^^데이지 손정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