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끼의 말뚝
전 정 우
< 4 회 >
캐나다 변경이자 미국의 울타리 밖인 이곳에서 동족과 조우 될 리 없다 생각하고도 돌다리를 두드려 보는 것? 윤의 행동이 익숙한 점으로 보아서 알만했다. 한 번 이상 이곳을 거쳐 간 티를 내는 것이었다. 꾼들에게 캐나다 카지노는 낙원일 것. 도박으로 딴 돈에 세금이 안 붙기 때문이고, 총잡이가 없는 안전지대이기 때문이다.
동양 사람과 마주치면 국적부터 눈대중 해보고 물러서는 것 같았다. 이만하면 됐다 싶은지 구름다리를 타고 주차공간으로 건너갔던 윤 뒤에 세 남자가 따라왔다. 회전의자에 앉아서 부하들에게 눈 부라리기를 즐길지도 모르는 인물들, 묵직한 자리에 계시는 분들이 틀림없었다. 말쑥한 코트 차림 신사 둘은 윤의 상사? 파카 차림의 50대 남자는, 짐작이 가지 않았다. 모처럼 꽁지 흔들고 외국에 나와서 공금으로 도박하는 사실이 본국에 알려지는 것을 독극물처럼 여기는 존재들, 척 알아 모시기란 어렵지 않았다.
좋아! 내가 모신다. 숨은 눈이 기다리는 줄도 모르는 저 치들, 자글자글 요리해줄 처방이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SNS 상에 한 상 걸게 차려서 국영기업체 하나 뒤흔들어 놓는 것? 글쎄! 차라리 실속부터 챙기는 그림에 호감이 갔다. 저쪽에서 적극적으로 흥정을 걸어올 때까지 여유를 가지고 기다릴 자신도 있었다. 일행이 자리를 잡기도 전에 나는 잭과 토마스가 일하는 곳으로 직행하면서 생각했다. 한때는 카지노에서 동족 만나기를 죽기만큼 꺼렸던 내가 동족을 만날까 쥐구멍을 찾아다니는 저들과 부딪친 게 잘 된 일인지 모른다고.
허드렛일조차 공치는지 잭은 보이지 않고, 토마스 혼자 일 나가기 위해서 가운을 걸치고 있었다. 잭도 토마스도 나처럼 카지노에 거덜이 나고 추락한 놈들, 우리 사이에는 늘 통하는 무엇이 있었다.
청소는 청소회사가 맡아서 한다. 누가 원한다고 바로 카지노 청소원이 될 수는 없다. 사무실을 옮긴다든지 창고를 정리하는 일처럼 임시 인력이 필요할 때는 삐끼들을 동원하는 때가 많았다. 덩치 좋고 부지런한 치들은 이름을 올려놓고 자주 불려가서 일당을 벌어서 도로 카지노에 털어 바치는 식이었다.
"토마스! 휴대폰 좀 빌리자. 내 친구가 베팅하는 것을 촬영해 둘 생각이야."
새로 구입한 스마트 폰, 훌륭한 앱(APP)을 내가 실험해 보이겠다는 제안에 토마스가 팔짝 뛸 듯 좋아했다.
"네 친구? 좋아. 큰 것으로 사는 거지?"
우리 세계에서 작은 것은 커피, 큰 것은 술을 의미했다.
"사지. 조심해서 사용하고 돌려줄게, 편집은."
스마트 폰을 호주머니에 담고 꾼들 사이를 헤치고 블랙잭 테이블부터 살펴 나갔다. 윤도 윗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슬롯머신 줄로 갔다. 거기에도 없었다. 엘리베이터를 탈까 하다가 호주머니에 든 지폐 한 장을 꺼내들고 기계 앞에 앉았다. 아까 누군가 몇 시간 동안 기계 밥 노릇이나 하던 자리였다. 몇 달러가 추가로 붙었을 뿐 잭팟은 감감했다. 미련을 버리고 제일 위층으로 올라갔다. 층층이 훑어 내려올 작정이었다.
룰렛에 빠져들고 있는 일행을 4층에서 발견했다. 순간 찌르르 온몸에 전기가 통했다. 날아오르는 기분이었다. 몸을 숨긴 내가 챌칵 사진을 찍고 움직이는 영상을 쓸어 담았다. 줌렌즈를 당겼다 밀었다 하면서 카지노 로고가 꾼들 몰골과 적당히 어울리도록 신경을 집중했다.
윤은 게임 돌아가는 사정을 주르르 뀌고 있었다. 나머지 셋도 만만한 솜씨는 아닌 듯해도 싱글 제로 게임은 서툰 낌새였다. 여러 사람이 있은 테이블에 앉는 게 유리할 텐데, 사람이 적은 테이블을 골라 앉은 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멀리서 보아도 돈이 솔솔 새어 나갔다. 그만 치우고 가서 코치나 해줄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나와 무관한, 주제넘은 일이었다.
앉은 자리에서 돈만 날리고 네 사람이 외투를 들고 일어섰다. 그만 가나 했는데 아니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포커 판에 붙었다. 룰렛은 재미를 못 보았어도 포커는 다를 수 있었다. 잘 되기를 빌고 내 일로 돌아갔다. 다시 돈이 나가는 것 같아서 애가 탔다. 전화로 잭을 불렀다. 윤이 앉은 테이블을 가르쳐 보이고 말했다.
"가서 저 사람들 좀, 도와주라. 내 친군데, 하는 짓이 신통치 않다. 돈 냄새도 맡아 봐. 내 말은 빼지 말고."
첫댓글 흥미진진하군요
과연 원정 도박하는 넘들은 어떤 사람일까요?
어떻게 얽히게 될지...
원정도박꾼, 별난 존재는 아니겠지요.
공무 출장자들 만 해도 개별적인 자질이나 인성에 앞서 구조적인 모순이 더 심각한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볼 수 있습니다.
해외 출장 가는 사람에게 비행기표 하나만 들려서 보낸다면 말 다한 것 아닙니까. 현지 숙식비와 교통비는 무엇으로 충당하는가?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전에는 일정액 이상을 지니고 해외에 나가는 것은 철저하게 단속했지요. 외화유출을 막기 위해서 부득한 조치. 그렇다고 현지에 도착한 공직자가 식사를 거르거나 노숙하는 사례는 없었던 것으로 압니다. 그런 것을 조금이라도 꺼내들기에는 지면이 턱없이 좁습니다. 유감.
윤과 다른 두 신사의 등장으로 갑자기 소설은 활기를 띠는군요.
과연 이곳은 비록 삐끼로 전락했지만 주인공이 말뚝 박은 나와바리인 게 틀림없군요.
왠지 사회적 약자인 주인공도 잔뼈가 굳은 자기 나와바리에선 상당한 힘을 발휘하는군요.
그가 어디까지 그리고 얼마만한 크기의 영향력을 원정도박 온 윤씨 일당에게 끼칠 지... 그 결과에 따라 주인공의 운명도 바뀌겠지요.
마지막 판을 준비하는 주인공의 인생이 너무 남루해서 그가 이번만은 크게 땄으면 싶네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