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끼의 말뚝
전 정 우
< 6 회 >
전화로 행크를 호출했다. 하수인을 기다리는 범죄단체 두목 같은 감상, 건달 여러 놈을 끌어댈 필요가 있었다. 거지발싸개를 거부하는 마음으로 세를 과시하지 않고 참을 수 없었던 것. 이곳에서 삐끼가 삐끼를 이용하는 것은 불문율, 크든 작든 들어오는 일정 액 이상의 수입은 공동으로 분배하는 게 삐기 세계의 원칙이었다. 잭팟이 터져도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위층에 있던 행크가 벼락 치듯 나타났다. 윤한수 보라는 듯이 스마트폰을 행크에게 넘겨주었다. 어깨를 한번 으쓱해 보이고 도도하게 말했다.
"행크, 이 친구 사진 몇 장 촬영했는데, 가지고 가서 편집해봐. 모르는 것은 토마스에게 물어보면서. 쓸 만한 것으로 사진 15장, 무비 7편만 골라서 유튜브에 포스트 해 줘. 정오까지야. 앱이 좋다니까 멋있게, 베팅하는 장면과 게임 결과가 나선으로 꼬이면서 줌-인, 줌-아웃으로. 아주 환상적일 거야. 내 어카운트 알지?"
"오케이. 브라더!"
행크가 신바람을 내고 사라졌다. 슬쩍 윤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그럼 그렇지. 사색이었다. 공금으로 노름하고 무사할 리 없다고 지레 겁을 먹을 것. 마약을 즐기거나 오입질을 하다가 들통이 난 것보다야 형편이 좋을지 몰라도 공직자로서 반사회 부패 행위는 틀림없었다. 국영기업체 직원과 공무원은 신분이 다르다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공직인 것 하나는 분명했다. 수행원이 죽을 쌍인데 나리들 코라고 무사하다는 보장은 없었다. 까맣게 모르고 계실 뿐이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호주머니에 쑤셔 박혀 있던 20불 지폐를 꺼내서 윤에게 던졌다.
"받아라. 아까 너 하는 게 신통찮아 보여서 도사 하나 붙여 줄까 했더니, 이 돈 주어서 쫓았지? 친구 사이에, 나 이런 거 안 받는다."
"미쳤구나. 정말, 이러기냐? 마피아가 따로 없다."
윤한수가 탄식하듯 말했다. 그가 느끼는 불안을 확인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그럼 출세한 거 아니냐. 거지발싸개보다야 마피아나 야쿠자가 백 번 낫지. 저 치들은 머냐?"
"한 분은 총무 이사, 한 분은 홍보 국장, 하나는 이사님 친구. 너도 아는 분들인 줄 알았더니. 가서 인사나 하고 같이 이야기하자."
"싫타. 너도 국장 자리 하나 꿔 찼나?"
"그게 쉽냐. 난, 부장 자리에 말뚝 박았다."
"네놈 상전이면 보나 마나 줄 타고 내려오신 분들, 해외 나와서 바이어들로부터 수금한 돈이 빵빵할 텐데? 그 돈 나눠 쓰자는 거다. 나도 잘 안다. 국영기업체는 독립채산제인 것. 이익금 자기 처분 원칙이 있는 것도. 그래도 그 돈이 공금 아니냐. 여러 사람 나눠 쓰라고 공금이 있는 거, 맞지? 뭐, 나 말이다. 사정기관에 고자질하는 것은 딱 질색으로 안다. 대신 공금을 이렇게 쓰더라 하는 식으로, 너와 저 분들을 세계적인 스타 만들어낼 자신 있다. 자알 생각해라. 나 두말하는 것 싫어한다."
내가 웃고 윤의 비위를 거슬렀다.
“누구 사표 쓰는 것 보고 싶어서 그러냐?
“그럼 어떠냐? 너도 거지발싸개 되는 것, 환영한다. 너와 나 사이, 친구 아니냐?”
감사관실에서 일한 전력이 있는 윤이었다. 내가 아는 상식은 쥐꼬리지만 놈 하나 옭아 넣기는 충분하다고 자신했다.
새벽부터 저녁나절까지 윤과 줄을 조였다 풀었다 입씨름을 하고도 해결이 나지 않았다. 행크를 불러서 편집된 무비와 사진의 실체를 확인하게 한 다음에야 나리들까지 합석한 자리에서 거래가 이루어졌다. 사진은 열 장까지 장 당 얼마, 무비는 매 편 얼마에 사주기로. 단 돈은 선금으로 천 달러를 받고 나머지는 귀국해서 송금하는 조건이었다. 내가 촬영한 사진과 무비 복사 본을 메모리 스틱에 담아 주었다.
가혹할지 몰라도 뜻하지 않게 불로소득을 안은 내 기분은 날아갈 듯 가벼웠다. 윤 일행에게도 좋은 추억이 되리라 믿었다. 계약이 이루어졌으므로 내 작품의 소유권은 동결된 상태, 송금하기로 한 돈이 안 올 때는 문제가 달라질 수도 있었다.
4층 객장 슈퍼바이저로부터 전화가 왔다.
"캥(강)! 어디서 뭘 하나? 중국인인지 코리언인지 모르지만, 처음 보는 고객들이 게임 룰을 몰라서 애를 먹고 있다. 캥이 와서 잠깐 도와주면 고맙겠다."
어려울 게 없었다. 오케이! 나는 즉시 엘리베이터를 탔다. 동족이 아닌 중국인, 중년 남녀 두 쌍이었다. 말이 통할 리 없었다.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묻는 것 같았다. 한자로 써 보이자 반가워서 그러는지 히죽히죽 웃었다. 나조차 따라서 웃을 수는 없었다. 베팅을 해가면서 룰렛 게임을 영어로 설명했다. 그들이 어떻게 이해하는지 알 방법은 없었다. 이해를 하면 다행이고, 못 할 때는 내 돈만 축나게 되는 것 같았다. 몇 차례 더 되풀이하는 동안 입에 침이 말랐다. 겨우 고개를 끄덕이고 자기들끼리 소곤거렸다. 그만 일어서자 지폐 몇 장을 내 손에 쥐여 주었다.
세시에! 참으로 엉성한 중국어 한 마디가 내 입에 오른 것도 오랜만이었다.
첫댓글 저렴한 요금의 카지노 버스를 타고 가끔 나이아가라에 다녀올 때가 있는데, 그때 잠깐 기웃기웃 둘러본 카지노장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그 안에 이리 복잡한 회로가 얽히고 섥혀 있었군요.
카지노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그들만의 질서가 있는 모양입니다.
잠시 전등빛이 번쩍이고 기계가 빠르게 돌아가는 카지노장에서 길을 잃고 우두커니 서 있는 기분입니다.
이제 소설은 클라이막스를 막 지났군요.
윤이 송금을 해서 강의 형편이 좀 나아지려나...싶지만, 돈이 얼마쯤 생기면 또 강은 도박으로 다 탕진하겠지요.
그 뻔한 결말을 알면서도 다음 회가 기다려지네요.
오늘도 고맙습니다.
삶의 터전 그 이상, 영혼까지 카지노에 불모로 잡힌 사람들이 있는 것은 맞지만 사생활을 간섭하거나 화제로 삼을 수는 없지요. 대신 윈저와 나이아가라 카지노에 대한 이야기를 중국인으로부터 들어둔 게 있는데, 몇 배 혹독한 편. 그 중 하나는 디트로이트에 산다는 한국 교민 이야기, 피나게 모은 돈 1.5 미리언을 카지노에 털어 바치고 자살극을 벌렸지만, 실패로 끝났다는 말.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중국인들이 한국 사람에게 지지 않을 만큼 도박을 좋아하는 사실로 미루어 그들 이야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지요. 허황한 돈, 눈먼 돈만 바라지 않으면 누구나 피해갈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이런식으로 삥 뜯는 삐끼들이 제법 있는가 보네요
사는 방법이 참 여러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