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끼의 말뚝
전 정 우
< 8회 >
카지노에서 매니저급은 귀족 계급에 해당했다. 그들이 받는 월급을 한화로 계산하면 놀랄 만큼 엄청났던 것, 상여금으로 받는 돈도 상당했다. 그렇다고 월급이 많다고 부러워할 까닭은 없었다. 받는 만큼 국가에서 세금으로 더 퍼가기 때문에 누가 월급 많이 받아도 배 아파할 일이 없어서 편했다.
"이 공문, 미스터 캥과 관련된 것이오. 읽어 봐요. "
커피 잔을 내려다보고 있던 제이콥이 양복 안주머니에서 복권공사 로고가 선명하게 찍힌 봉투를 꺼내주고 말했다. 희뜩 제이콥을 쳐다보고 서류를 꺼내들었다. 어처구니없는 내용이었다. 복권공사에서 카지노로 보낸 공문은 고객으로부터 접수한 불평이었다. 그 고객이 누구도 아닌 윤한수 라는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혈압이 불끈 상승했다.
'죽일 놈!' 소리가 입안에서 감감 돌았다. 뒤통수를 맞은 것. 잘 봐주는 쪽으로 타협했는데, 고자질을 하고 나서? 이런 개같은 경우라니. 나는 사정기관 같은 것은 상대 않는다고 말해 두지 않았던가.
이 놈이야 말로 복권공사를 사정기관으로 잘못 짚은 게 틀림없다. 홈! 당장이라도 사진과 무비를 인터넷에 올려놓고 말 것인지? 그러나 그것은 중책도 아닌 하책으로 판단했다.
잠시 생각했다. 윤의 돈을 내가 노렸던가? 진정 그랬다면 틀림없이 받아낼 방법이 있었다. 크레디트 파트에 부탁해서 카드로 지불 받거나, 카지노에 빚진 것으로 등록해둔 다음 컬렉터에게 부탁해서 받아내는 방법도 있었다. 그래 보았자 별 수 없었을 것, 내 손에 들어올 돈은 몇 푼 안 된다 생각하고 어물어물 넘긴 게 돌려치기 당한다고 생각했다. 본문에 첨부된 윤한수 메일 사본까지 훑어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기가 찼다. 분통이 터졌다. 내가 거액을 요구하고 협박까지 했다지 않은가. 오해라 생각하고도 친구 말이 전부 억지인지 따져보지 않을 수 없었다.
억지이든 아니든 그와 나 사이에도 거래는 정당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법. 친구가 입만 험하게 놀리지 않았어도 훨씬 부드럽게 끝났을지 모르는 거래였다.
"장난이 잘못된 것 같은데, 메일 보내서 없었던 일로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복권공사에서 바라는 것도."
중재를 하듯 제이콥이 내게 속삭였다.
"아니오. 이 일은 친구와 나 사이 일이고 코리안 사이의 거래 아닙니까. 내가 귀국하면 곧 끝날 일이고요."
당신이 간섭할 일이 아니라고 한계를 분명히 하고도 속이 푹푹 상했다.
자기는 공무원도 아닌 회사원이라는 항변, 공금 아닌 자기 돈을 달러로 환금한 영수증까지 가지고 있다는 윤의 말에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처음 만나서 내가 기죽은 태도로 면목 없다는 말이나 쏟아놓던 순간 얼마나 기세등등했으며 험한 말로 설쳤던가. 놈 하나 무장해제 시킬 방법은 머리통 속에 푸짐하게 모셔두고 있다고 자부했다.
복권공사에서 나를 경찰에 고발하면 일이 곤란하게 될 수도 있다는 제이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시게 웃어주고 벌떡 일어서서 말했다. 고발은 고발이고 거래는 거래라고, 결코 포기할 수 없다고. 범죄행위가 아닌데 고발이라니 얼토당토 않았다. 그렇다 쳐도 내가 SNS 상에 사진 몇 장 올려놓는 것까지 간섭할 법은 없다는 식으로 오기를 다지고 나자 머릿골이 흔들렸다. 차지에 귀국이나 하고 말까? 식구들 그리움이 사무쳐도 거지발싸개가 어떻게 귀국하나. 팔린 쪽을 다시 모시러 갈 수는 없다. 포기하고 말았다.
한 쪽에 앉아서 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제이콥이 권했던 화해의 손짓을 담는 메일은 아니었다.
친구야, 사표 쓰고 이리 오게.
삐끼 동업이나 하세.
보지 않았는가. 초라한 내 꼴을
자유분방한 나, 패가망신의 표본인 나를
무리지어 해외 원정까지, 이 눈치 저 눈치,
수중에 돈 떨어지면 벨 수 있는가?
넘어다볼 공금 항아리는 비어있을 걸세.
그러기 전에 이리 오게. 동업이나 하세.
더는 벌려 세울 말이 없었다. 한참 생각 끝에 조금 더 끄적 그렸다.
첫댓글 주인공과 윤의 대결이 조금 싱겁게 끝나는군요.
이번에는 마지막으로 주인공이 가진 패가 더 높아서 좀 딸 줄 알았는데...
조금 시시하니 끝나네요.
시시하기보다 변변치 못한 인물이 화자, 강준호가 맞습니다. 푼수도 모르고 도박에 손을 대서 패가망신을 당하고 친한 사람들에게까지 피해 입히는 것을 멈추지 않으니 말입니다. 한편 국가나 사회의 책임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요. 왜 인류악의 한 가지인 도박장을 두게 해서 어리숙한 사람들을 파멸로 몰아넣는지? 그런 게 없다면 강준호 같은 사람은 무난한 삶을 살았지 않았을가 싶습니다. 어디 도박뿐이겠습니까. 우리 주위에 차고 넘치는 게 빛좋은 독버섯인데. 손만 한번 잘못 내밀어도 비참하게 끝날 수도 있지요. 늦게나마 화자가 그런 점을 빼 아프게 깨달았으면 싶지만, 아직 알 수 없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