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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지킵시다”
[잠언 4:23]
요즈음 미국 국가 안보국이 독일 총리를 비롯한 35개국 정상들을 도청했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세계는 온통 미국을 비난하는 성명들로 우리들의 마음을 무겁게만 합니다. 한 주가 시작되는 주일입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는 ‘마음을 지킵시다’입니다.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두는 곳이 어디일까요? 마음입니다(눅 1:66). 말씀을 듣고 깨닫게 하는 곳은 또 어디일까요? 마음입니다(눅 24:45). 그 말씀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뜨거워지는 곳은 어디입니까? 그것도 역시 마음입니다(눅 24:32). 그렇기 때문에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난다고 하셨나 봅니다. 생명의 근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지요. 말씀으로 모든 세계는 탄생한 것입니다. 세계를 창조한 생명의 말씀을 우리의 마음에 두신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을 지킨다는 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우리에게 주사 그의 뜻을 이루게 하셨기 때문에 생명처럼 지켜야 합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사람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롬 1:28). 합당한 일을 해야 하는데 합당치 못한 일만 하니 답답하고 비참합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입니다. 누가 그렇게 살았나요? 우리가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즉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 말입니다(약 1:8). 그리고는 자기 마음을 속이면서 경건을 헛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약 1:26). 그뿐이겠습니까?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로 저주의 자식이 된 것입니다(벧후 2:14).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고후 11:3).
우리는 지금껏 마음을 잘 지키지 못해 저주의 자식들처럼 살아왔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는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갈 길을 알지 못하는 가련한 신세가 되었습니다(히 3:10).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함에도 불구하고”(히 4:12).
우리는 여전히 공허한 마음으로 살아왔습니다. 이런 우리의 마음에 주님은 오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약 4:8).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벧전 1:22).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라”(벧전 3:15).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몬 1:20).
왜 이 말씀이 우리에게 들려올까요? 그것은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우리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의 마음에 심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게 하시기 위함입니다(약 1:21). 우리의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요1 3:21).
그래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은혜로써 굳게 하며 아름답게 해 주신 것입니다(히 13:9). 이렇게 아름다운 마음을 회복시키셔서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며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말입니다(히 10:22).
그렇다면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과연 마음은 무엇일까요? 우리의 모든 호기심을 발동시켜 의문점을 파해쳐 봅시다. 마음은 분자나 원자일까요? 아니면 그보다는 작은 핵입니까? 그도 아니면 유형일까요? 무형일까요? 무언가를 담고 있으니 무게는 있을까요? 생김새는 있을까요? 있다면 어떻게 생겼을까요? 사전적 용어로 감정이나 생각, 기억 따위가 깃들이거나 생겨나는 곳인가요? 정말 그것뿐일까요? 가장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마음은 우리 몸 어디에 있을까요?
재미있는 것은, 서양 사람들은 마음을 하트로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마음은 심장에 있는 것인가요? 아니면 가슴에 있는 것일까요?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또 다른 면에서 마음을 마인드로 보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즉, 정신이 마음이란 뜻인가요? 하도 많은 이론들이 정신없게 합니다.
하나만 더 파해쳐 보겠습니다. 그것은 과학에서는 마음을 어떻게 연구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과학은 마음을 우리가 보는 것, 듣는 것, 지각하는 것들이 마음을 만드는 요소들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마음을 뇌의 한 부분으로 보는 것입니다. 뇌 속의 그 어떤 전달 물질이라는 것이지요. 사랑하고 분노하며, 기뻐하고 슬퍼할 때 심장이 벌꺽벌꺽해서 마음은 심장에 있나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과학은 마음이 뇌에 있다고 합니다.
자! 이쯤하고,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성경은 마음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이 점이 더 중요합니다. 산 사람은 보이는 육체와 보이지 않는 영과 혼으로 되어 있습니다. 물론 죽은 사람은 이것이 분리된 것입니다. 마음에 대한 문구를 한 참 찾다 보니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6절입니다.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이 말씀이 계속해서 반복된 생각을 하게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인데 우리에게 아들의 영을 마음 가운데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조금 전에 우리는 산 자에 대해서 말씀한 바 있습니다. 산 자는 육체와 영과 혼이 함께 거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아들의 영이 있어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셨지요. 아들의 영이 거하는 곳이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생명의 근원이 부어진 곳이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 22절에서는,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무릇 지킬만한 것 중에서 제일은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유혹을 받아 생명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죽음이 찾아 온 것입니다.
사람들이 왜 자살합니까? 마음에 기쁨이 없어서입니다. 마음에 즐거움이 없어서입니다. 마음에 위로가 없어서입니다. 마음에 생명이신 말씀이 없어서 죽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에 기쁨과 즐거움이 넘쳐나고 행복한 사람이 자살합니까? 아닙니다.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살후 2:1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딤전 1:5). 이것이 말씀을 받는 자의 목적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함께합시다. 요한1서 3장 17절에서는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 또한 닫아 버리십니다.
그러므로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립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마음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딤후 1:7). 하나님이 주신 같은 마음으로 같은 사랑을 나눕시다. 그리고 뜻을 합하여 한마음을 품읍시다(빌 2:2). 아들의 영을 부은 받은 우리는 온유하고 겸손한 주님의 마음으로 통일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품어야 할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으로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합시다. 이것이 같은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골 3:15).
오늘 많은 사람들이 싸우고 다툽니다.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딤전 6:5). 그렇습니다. 다툼은 마음이 부패하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잃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뿐만이 아니라 경건을 자기의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기 때문에 다툼이 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을 좀 더 보충한 말씀이 바로 뒤이어서 나옵니다.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딤전 6:6). 자족하는 마음은 다툼을 그치게 합니다. 그것은 경건으로 큰 이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자족하는 마음은 자신의 책임과 의무와 희생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자족하는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누가 해 주겠지, 누가 알아서 하겠지, 그러다 안 해주니까, 안 하니까 다투고 싸우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비겁한 마음입니다. 굳어진 마음입니다. 마음이 굳어지면서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납니다. 에베소서 4장 18절이 이것을 증명합니다.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그렇습니다. 굳어진 마음은 결국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게 합니다. 하나님의 생명은 굳어진 마음에서는 살 수 없는 것임을 깊이 명심합시다.
굳어진 마음은 감정이 없습니다. 기쁠 때 기뻐할 줄도 모릅니다. 슬플 때 슬퍼할 줄도 모릅니다. 이런 사람을 보면 상대하고 싶겠습니까? 잠언 15장 13절을 보십시오.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매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삽시다. 굳은 마음, 근심하는 마음은 안 됩니다. 성도는 얼굴이 빛나야 합니다. 심령이 건강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복 받는 마음으로 행복하게 삽시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들은 마음이 즐거울지로다(시 105:3).
우리는 복 있는 마음으로 살 때 행복합니다. 그렇다면 복 있는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먼저는 청결한 마음이 복이 있는 마음입니다(마 5:8). 거짓이 없는 마음입니다. 진실하고 참된 마음입니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시 84:5).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시 32:2).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그의 걸음은 실족함이 없으리로다. 하셨으니 복이 있는 것입니다(시 37:3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가복음 12장 34절에는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고 하셨는데 여러분의 보물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 질문에 정확한 답이 있어야 합니다. 당연히 생명이 보물이시죠? 생명보다 귀한 보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 귀한 생명에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귀한 마음에 성령이 부어져야 합니다.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롬 8:27). 성령의 역사, 성령의 충만한 마음이 우리의 마음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마음을 지켜야 하겠습니까?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엡 3:17).
우선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마음에 계시게 해야 합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온유한 마음, 겸손한 마음을 가지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의 마음입니다. 그 마음이 되어야 지킬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마음에 두고 우리의 생각에 기록하면 모든 죄를 사함 받고 지켜주십니다(히 10:1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음은 이처럼 중요합니다. 세상에 모든 것을 얻고 지켰다 할지라도, 마음을 지키지 못하면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과 같은 것입니다. 마음 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에 아들의 영을 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에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그만큼 마음은 생명같이 귀한 것입니다. 이는 지켜야 합니다. 마음이 상하거나, 마음이 굽거나, 마음이 굳어지면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닙니다. 강퍅한 마음으로, 완악한 마음으로 천년을 살면 무엇 합니까?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마음, 평안한 마음, 온유와 겸손의 마음으로 복되게 삽시다. 이 복된 마음을 마귀에게 빼앗기지 않도록 말씀으로 깨어있어 지킵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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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종 목사 설교집, [거룩한 강단되게 하소서!]